5년 동안 적자, 그래도 와인사업 계속하는 이유

[최정욱 소믈리에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와인기행] 예산사과와인 ③

등록 2017.03.22 15:38수정 2017.03.2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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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사과와인 ⓒ 정제민


☞이전기사 : 예산사과와인 ② 캐나다에서 만난 와인, 인생을 바꾸다

와이너리에 왔으니 와인 제조장 견학은 빼놓을 수 없지. 예산사과와인 제조장은 구경거리가 많다. 농림부에서 적극 추천하는 6차 산업의 롤 모델이지만, 정 부사장은 예산사과와인은 농가형 와이너리라고 설명한다. 예산사과와인 직원은 전부 7명인데, 대부분 젊다.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발랄하면서 경쾌하다.


발효탱크 2개 가지고 와이너리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어지간한 시설은 다 갖췄다. 발효탱크, 저장탱크, 증류기 등등. 와이너리 건물은 2층으로 구성돼 있다. 1층은 카페테리아와 카페, 판매장이 있고, 2층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그러면 와인제조장은 어디에? 지하에 있다. 앞에서 보면 지하지만 건물 뒤에서 보면 1층이다. 일부러 그런 땅을 골랐단다. 와인 제조장에 들어갔더니 한쪽에서 브랜디 병입 작업이 한창이었다. 조만간 시판될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사과증류주다. 향이 참 좋다. 와인은 마시기 전에 향을 먼저 맡는데, 사과 브랜디도 그런 것 같다.

"사과를 수확해 와이너리로 들여오면 바로 세척기와 파쇄기가 설치돼요. 세척기에 사과를 집어넣으면 닦여서 나오죠. 파쇄기에 들어가면 갈아져서 나오는데 발효탱크에 퍼 올려요. 3주에서 4주 정도 저온에서 발효를 시킵니다. 18도에서 20도 사이죠. 낮은 온도에서 숙성을 하면 향이 덜 날아가거든요. 그렇게 발효를 시키고 거릅니다. 거른 것을 숙성실에서 1년 정도 숙성을 시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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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증류주를 숙성하는 오크통들. ⓒ 유혜준


"와인사업, 10년까지도 보고 시작해야 됩니다"

와인 일부는 증류해서 사과 브랜디로 만든다. 와인은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발효하고 저장하지만, 새로 선보일 사과 브랜디는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다. 와인제조장 한쪽에 쌓여 있는 오크통에서 브랜디가 숨죽인 채 숙성되고 있다. 통 하나에 2천만 원 정도의 브랜디가 들어있다고 하니, 오크통 수를 저절로 세어보게 된다. 저게 대체 얼마야. 억억,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궁금했다. 2010년에 본격적으로 와인사업에 뛰어들 때 성공을 확신했는지?

"처음부터 저는 (와인사업이) 1~2년에 승부를 낼 수 없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었어요. 술은 세월이 만든다잖아요. 외국 와이너리들도 보면 100년, 200년, 다 그렇더라고요. 와인을 만들어 보면, 술이 완성되려면 적어도 1년은 걸려요. 1번 테스트해서 실패하면 2년 걸리는 거고, 두 번 실패하면 3년 걸리는 거죠. 그래서 적어도 5~6년, 조금 길어지면 10년까지도 보고 시작해야 됩니다."

그가 술 제조 컨설팅을 하고, 술 만드는 도구와 재료, 원료를 공급하는 회사를 같이 운영하는 이유다. 와이너리를 하면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벌이가 필요했다. 전국으로 강연도 많이 다닌다. 와인제조 강좌 역시 많이 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술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가 개발해준 와인들도 제법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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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민 부사장이 와이너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유혜준


예산사과와인을 설립하고 5년 동안은 매년 적자였다. 술 사업이 밑 빠진 독에 돈 쏟아 붓기라서 그렇다. 그렇다면 쏟아 부은 돈은 죄다 어디로 갔을까? 바로 오크통 안에서 조용히 숙성을 기다리고 있는 브랜디에 들어가 있고, 와인저장탱크 안에서 와인으로 숙성되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적자를 견뎌야 하나? 그의 표현에 따르면 "2016년에는 겨우 똔똔이 됐다"고 한다. 그래도 정 부사장은 와이너리에서 직원 월급은 주지만, 자신의 월급을 가져가지 못했단다. 올해는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1월과 2월의 상황을 보니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김영란 법 여파로 과일시장과 와인시장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거든요. 와인판매량이 작년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그렇다고 한국와인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 초, 와인수입이 자유화돼 수입와인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국내 와인시장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지만, 한국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미미하기 때문이다. 3~4% 정도 된다고 추정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적다는 게 최정욱 소믈리에의 추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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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사과와인 와인생산설비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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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사과와인 제조설비 ⓒ 유혜준


광명동굴, 

거의 존재감이 없던 한국와인이 조금씩 주목받게 된 것은 광명동굴의 '한국와인동굴' 덕분이다. 추사 사과와인은 한국와인동굴이 문을 열 때부터 와인을 납품했다. 처음에는 정 부사장 역시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추사 사과와인은 한국와인 가운데에서 드물게 백화점에 납품해 팔고 있다. 또 공항면세점에 납품하고 있고, 중국에 수출도 하고 있다. 그만큼 국내에서 인정받는 와인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백화점에서 한 달에 10병이나 팔릴까? 사람들이 백화점에서 수입와인 사지, 한국와인 안사거든요. 최 소믈리에가 납품 제안을 했을 때, 한다고 했지만 기대하지 않았어요. 팔려야 몇 병이나 팔리겠어, 했던 거죠."

추사 사과와인은 광명동굴의 수혜를 가장 많이 본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백화점에서 한 달에 10병도 채 팔리지 않는 와인이 한국와인동굴이 개장한 뒤, 며칠 사이에 몇 백 병씩 팔려나갔으니, 정제민 부사장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도권에서 한국와인이 대량으로 팔릴 수 있다는 사실을 광명동굴이 입증한 것이다. 광명동굴은 한국와인이 잠재적인 시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광명동굴이 굉장히 놀라운 역할을 한 거죠. 한국와인산업에서 광명동굴이 차지하는 비중이 10~20퍼센트는 된다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더 많은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어요."

특히 정 부사장은 "광명동굴 와인레스토랑을 한국와인을 위한 퍼블릭한 공간으로 활용해 그곳에서 광명동굴 관광객들이 한국와인을 즐기게 한다면 한국와인 홍보와 판매에 많은 기여를 할 것 같다"고 제안한다. 광명동굴에서 한국와인을 시음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 부사장은 와인 신제품을 출시하는 경우, 광명동굴에서 출시행사를 주도적으로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최 소믈리에는 한국와인 판매 활성화를 위한 마케팅을 한국와인생산협회와 함께 고민하면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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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민 예산사과와인 부사장 ⓒ 유혜준


요즘 정제민 부사장은 새로운 고민을 하고 있다. 그것은 지역에서 팔리는 와인을 만들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과일시장과 와인시장이 왜곡돼 있어요. 먹어서 소비되는 제품이 아니라 선물로 주고 기념품으로 주기 위한 선물로서의 기능을 가진 제품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거죠. 예쁘게 포장해서 설이나 추석에 선물용으로 소비하는 건데, 상대적으로 단가가 비쌉니다. 그런데 김영란 법으로 직격탄을 맞아서 그런 제품들이 소비가 안 되고 있어요. 사과와 배 같은 게 대표적인데, 팔리지 않은 사과들이 저장고마다 가득 쌓여 있어요. 이제는 식품이고 술이고 다 선물용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먹어서, 마셔서 소비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와인 역시 마찬가지란다. 한국와인 값은 결코 싸지 않다. 그래서 정작 생산되는 지역에서 거의 소비되지 않는 게 현실이란다.

"가격이든 품질이든 지역에서 소비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지역 유통에 사활을 걸고 고민할 때가 됐습니다. 예를 들어서 덕산온천이나 수덕사에 온 관광객들이 사과와인이든 사과술이든 꼭 맛보고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가격도 지역사람들이 지역에서 부담 없이 사서 마실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춰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그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와인기행 #에산사과와인 #정제민 #최정욱 #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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