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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항쟁의 요구, 투표함 속으로 봉인?

'민주주의 여신과의 가상 대화'로 재구성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등록 2017.03.19 11:17수정 2017.03.1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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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고병권 지음)를 읽고 '민주주의 여신과의 가상 대화'로 꾸며 본 것이다. 민주주의 담론의 대중적 접근을 위해, 책의 핵심 내용을 '민주주의 여신'과 '참된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시민'의 대화로 구성했다. 이 글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는 논의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 기자말

최근 대한민국 국민은 촛불 항쟁을 통해 불의한 대통령을 내쫓는 큰일을 이루었다. 이는 민주주의 역사의 쾌거이다. 그렇지만 오래 묵은 적폐를 청산하는 일이 남아 있다. 그리고 험난한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이는 정치 개혁, 재벌 개혁, 언론 개혁 등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길도 뚝벅뚜벅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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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집회에서 한 장면3월 11일(토) 광화문 광장 촛불 집회에서 담벼락에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고 빛 글씨를 새겼다. '꺼지지 않는 촛불'은 대의제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 서상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이후,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찬사가 넘쳐나는 요즘이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로,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면 주권자인 국민이 바라는 행복한 세상은 오는 것일까? 무엇보다 '헬조선'의 현실은 그대로다. 대통령은 탄핵되었지만, 내 삶은 좋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국회는 여전히 민심과는 매우 거리가 먼 권력 추구 행태만 보이고 있다. 자기들끼리 '권력 나눠먹기 개헌'에 합의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다음은 국회 탄핵'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과연 대의 민주주의와 정당 정치의 정상화가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그것이 우리의 삶을 좋게 만들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 광장의 열기와 요구를 '투표함 속으로 넣어 닫아 버리려는' 움직임도 커질 것이다. 광장의 요구가 단지 투표함 속으로 봉인된다면, 우리가 어렵사리 지켜낸 민주주의는 제자리에 멈추고 그와 함께 삶이 나아지는 일도 없을지 모른다.

이에 다시 진지하게 민주주의가 대체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에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여신'에게 신탁을 내려 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고, 민주주의 여신은 아래와 같은 답변을 주었다. 여기, 민주주의 여신이 내려 준 소중한 신탁을 기록으로 남긴다.

민주주의자라면 민주주의에 대한 통념을 다시 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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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고병권 지음, 그린비 출간 ⓒ 그린비

- 존경하는 민주주의 여신님, 우리는 당신을 위해 민주주의 제단에 몇 차례나 피를 흘렸습니다. 최근에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수많은 시민이 광화문 광장에서 추운 겨울을 버티며 4개월이나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에게 행복한 삶이 다가올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고백하자면, 한때는 민주주의 때문에 오히려 더 불행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 따위는 외면하고 일신의 안녕만이라도 챙기는 비겁한 삶을 마다하지 않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소리 높여 부르짖지만, 이번에도 민주주의가 과연 우리의 삶을 더욱 좋게 만드는 지렛대가 될 수 있는지 의심이 듭니다. 특히 민의를 대변해야 하는 국회를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심지어 국회야말로 민주주의 성장 발전의 걸림돌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민주주의 여신이여, 우리의 부름에 응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의문과 의심이 반갑군요. 나는 변하지 않는 사랑과 열정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열정은 계속 변하면서 갱신됩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사랑 또한 그렇습니다. '철학자가 진리를 의심함으로써 진리에 대한 사랑을 표하듯이',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간구하다가 실망하고 원망하고 비판하고 다시 넘어서면서 민주주의는 끝없이 갱신되어 갑니다.

"민주주의가 더 이상 사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했을 때, 민주주의자는 민주주의와 대결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구해야 합니다."(5쪽) 그렇게 하기 위해서 민주주의에 대한 그간의 통념을 다시 묻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민주주의는 당신이 열망하거나 절망했던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었다"(6쪽)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종종 다수결과 같은 것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입니까?
"민주주의를 다수결로 등치시키는 것은 천박한 이해입니다. 다수결은 수단의 하나일 뿐입니다. 다수결 이전에 꾸준한 소통‧토론‧합의 과정이야말로 진정 민주주의에 가까우며, 소통‧토론‧합의 과정이 없는 다수결은 폭력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겨우 다수결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통념은 잘못이며, 그것은 민주주의를 하기 싫어하는 이들이 만들어 낸 단순화일 수 있습니다."

- 다수결과 비슷한 맥락에서,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라고 말하곤 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입니까?
"민주주의가 다수의 지배라는 것은 제한된 소수의 사람만이 참여하는 정치 체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다수가 참여할 수 있도록 열린 체제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왜곡하거나 천박하게 이해하면, 다수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간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자들은 민주주의가 수적 우위를 앞세운 결정인 것처럼 비아냥댔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수적인 다수로 모든 걸 결정하는 정치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부른다면, 민주의의 이념이란 기껏해야 한 사회를 지배하는 상식과 통념 이상이 아닐 것입니다. 이 경우 통념에 맞선 소수적 투쟁이야말로 민주화 투쟁에 합당한 이름이지, 다수 의견을 이유로 그것을 제압하는 게 민주주의가 아닙니다."(41쪽)

만약 다수라는 이유로 소수에게 입 다물고 따를 것을 강요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입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는 "소수성의 문제"(41쪽)입니다. 민주주의는 특히 소수자들에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란 "말할 권리를 갖지 않은 자가 말을 하는 것"(38쪽)이며, 말할 권리를 갖지 않은 자가 주체가 되어 소통하는 것입니다."

말할 권리를 빼앗긴 이들을 위해, 시민의 재구성 필요

- 민주주의가 다수결도 아니고, 단순히 지배자의 수의 문제도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이끄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는 '데모스'를 새롭게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democracy)라는 말은 '데모스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민주주의를 꾸려가는 이들 데모스(시민, 민중, 다중)는 "통치자이자 피치자입니다. 즉 다스리는 사람들이 또한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지켜야 할 규범이나 법규는 그들이 만든 것이고 다시 바꿀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복종은 그들의 자유가 결정한 것입니다. 지배자인 데모스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데모스 자신입니다."(13쪽) 이렇듯 데모스는 통치자이면서 피치자이고, 자유롭게 결정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복종하며, 주체와 객체가 한데 어우러진 역설적인 존재입니다.

더 나아가 데모스(시민, 민중, 다중)는 "특정한 형상을 갖지 않는, 표상 불가능한 존재"(32쪽)입니다. 그것은 "플라톤이 비난한 반인반수의 존재, '사티로스'나 '켄타우로스'"(34쪽)와 같습니다. 데모스는 특정한 형상이 없고 표상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겸허한 자세로 데모스를 끊임없이 재구성해야 합니다.

"데모스를 구성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힘이고 능력입니다. 다양한 형상들이 번역 가능하고 소통 가능하며 연대 가능한 신체를 만들 수 있는가. 민주주의의 과제는 데모스가 어떻게 권력을 차지해야 하는가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데모스를 이룰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34쪽)

그러니까 누가 권력을 차지하느냐 하는 것보다 말할 권리를 빼앗긴 노동자, 비정규직, 자영업자, 소비자, 취업준비생, 백수, 여성, 아동, 장애인, 이주민 등의 소통과 연대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이런 주체화에 얼마나 성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34쪽)"

민주주의는 고정된 제도가 아니라 스스로 발명해야 하는 것

- 데모스의 주체화에 성공한다고 하더라고, 결국 소통과 연대가 지속 가능한 여러 제도를 비롯한 올바른 정치 체제가 성립해야 하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특정 제도나 절차 등 정치 체제의 마련으로 민주주의의 목표가 달성되었다거나 완성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위태로워집니다.

민주주의란 "고유의 근거를 갖는 정체가 아니라 '근거 없음'의 정체"입니다. 그것은 "정체를 규정하는 특정한 근거를 갖지 않으며, 오히려 그 근거가 한계를 드러내는 곳, 그것이 비판에 직면한 곳에서 제기됩니다."(36쪽) 결국, "민주주의란 특정한 근거 위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 이전에 자기 근거 자체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정체"(28쪽)를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은 (…) 비판의 심연에 기꺼이 자신을 개방하며, 그런 개방을 통해 정체 갱신의 힘을 얻겠다는 의지를 표출하는 것"(28쪽)이어야 합니다. 또한 "민주주의는 세계의 생성과 변화, 다양성을 긍정하며 '차이화'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30쪽)여야 합니다. 결국, 끊임없는 비판과 재구성의 길에 민주주의의 밝은 미래가 놓여 있습니다."

- 앞에서 특정 정치 체제의 마련으로 민주주의의 목표가 달성되었다거나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이상이 있다면, 길을 가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민주주의의 모델'을 제시해 주십시오. 우리가 어떤 정치 체제를 갖추면 민주주의가 도래하는 조건이 됩니까?
""민주주의란 (…) 특정한 지배 체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20쪽) 또한 "민주주의는 따라야 할 본 같은 것이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발명해야 합니다!"(31쪽) 현실에서 드러나는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정체이지만 동시에 '정체들의 잡화점', 다시 말해 정체들의 전체 집합입니다."(15쪽) "모든 정체들은 자신의 한계 혹은 외부로서 민주주의를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16쪽) 그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명하며 나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어느 정체에서나 오직 집합적 신체로서 데모스가 가진 능력만큼 존재합니다."(20쪽) 따라서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특정 모델을 따라하는 것보다 스스로 데모스의 힘을 키우는 것이 더욱 바람직합니다. 그 능력만큼 스스로 민주주의를 발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의제는 신비로 가득 찬 근대 민주주의의 신화

- 커다란 국가를 이룬 오늘날에는 옛날처럼 직접 민주주의를 할 수 없으니 대표를 뽑아 그들이 대신하는 정치 체제, 즉 대의제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현실을 인정하다고 해도 대의제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으니, 그것을 보완하는 노력이 다양하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대의제의 한계를 근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의 개념이 민주주의에 대한 근대적 이해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대의제는 "신비로 가득 찬 제도"(47쪽)입니다. "이 신비, 이 불확실성을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여기에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갱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47~48쪽)

대의제와 짝을 이루는 국민 주권이라는 개념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근대 정치는 인민을 전제하지만 그것은 구성된 것입니다."(58쪽) "표상(대의)될 수 없는 한에서는 근대 인민(국민) 관념도 생겨날 수 없습니다."(47쪽) 그러니까 근대 국민이라는 것은 대의제 아래의 국민으로 표상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구성된 "주권자로서 인민은 참으로 신성하고 전능하지만 개별적으로 참으로 무기력하고 무능합니다."(68쪽)

- 대의제에 대한 비판과 극복은 그와 짝이 되는 국민 개념과 근대 민주주의에 대한 극복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들립니다.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한국보다 민주주의가 발전했다고 하는 서구에서도 빈민 소요, 대규모 이민자 시위,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대학 점거 등이 늘상 벌어집니다. "게다가 논란이 된 대부분의 문제들에 대해 현재의 대의 시스템, 특히 지배 정당들은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습니다."(94쪽)

철학자 데리다는 "이러한 실패, 이러한 간격은 선험적으로 그리고 정의상, 이른바 서양의 민주주의 국가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를 포함하는 모든 민주주의를 특징짓는 것"(94쪽)이라고 말합니다."

대의 민주주의 정상화, 정당 정치 정상화만으로는 해법이 될 수 없어

-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어 주네요. 그렇다면 대의 민주주의 정상화, 정당 정치 정상화는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의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힌트라도 제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몇 가지 차원에서 근대 민주주의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벌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새로운 민주주의는 주권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물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특히 주권으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 속에서 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새로운 민주주의는 국민의 통일성이 깨지는 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새로운 민주주의는 지금 현재 '대의되지 않는 존재들로부터 나올 것'입니다.(77쪽) "주권의 저편에서, 인민의 저편에서, 그리고 표상의 저편에서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하는 삶을 시도할 때, 민주주의는 삶의 그 공통 평면이 가질 수 있는 마땅한 이름이 될 것입니다."(78쪽)"

- 니체 전문가인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니체라는 철학자가 "그의 비난자들보다 훨씬 더 민주주의에 다가간 인물"(26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사실, 니체는 민주주의에 날선 독설을 내뱉은 철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 비판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근대적 이해를 비판했다고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니체의 철학은 민주주의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이를 테면, '영원 회귀'는 대의제 극복의 대안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니체가 말한 영원 회귀 사상처럼, 나는 늘 도래합니다. 니체의 사상이 민주주의 실천의 힌트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는 영원히 어린아이의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민주주의란 언제나 처음 질문, 즉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반복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97쪽) 이 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지금 대선 후보들이 제각기 자신이 이 시대의 개혁을 이룰 적임자라며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의 투표함 속으로 봉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후보를 지지할 것이냐가 아니라 정책의 내용마다 질문을 제기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더 큰 시야로 민주주의를 진정 새롭게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대의되지 않는 존재들부터 나오는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해 얘기 나누게 되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에는 대의제로 상징되는 근대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상상하는 글이 이어집니다. <추첨 민주주의 강의>(이지문 지음)를 ‘민주주의 여신과의 가상 대화’로 재구성해 다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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