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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죽었다, 내가 바람 피던 날

[서평] '아이에서 어른으로' 다시 태어난 남자 둘의 이야기 <아주 긴 변명>

등록 2017.03.17 11:32수정 2017.03.1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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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상이 강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지막에 울림이 있는 사람이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문구로 시작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잔잔한 울림으로 마무리하는 책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후자의 책에 끌림은 어쩔 수 없다.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니시카와 미와의 장편소설 <아주 긴 변명>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눈을 감으며 사색에 잠기게 하는 작품이다. 긴 세월을 산 나이 지긋한 철학자가 쓴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 책은 살면서 누구나 겪어야 할 죽음과 이별 앞에서, 그 가족들이 겪는 소소한 일상을 풀어 나간다. 그 가운데 주인공과 주위 사람들이 겪는 세밀한 감정 변화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 기누가사 사치오는 작가다. '쓰무라 케이'라는 필명으로 방송에도 종종 출연하는 유명작가다. 나름 유명해지기까지는 미용실을 운영하는 아내 나쓰코의 내조가 있었다. 나쓰코는 남편이 소설로 이름을 얻기까지 십 년을 뒷바라지했다.

그런 아내에게 사치오는 내심 자격지심이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유명세를 탈수록 둘은 내외하는 사이가 되었다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여행을 떠났던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는다. 그 순간 사치오는 다른 여자와 섹스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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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저, 김난주 역, 무소의뿔 출판 ⓒ 무소의 뿔

<아주 긴 변명>(니시카와 미와 작가, 영화감독)은 주인공 사치오가 아내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아내를 생각하고 울기까지의 시간을 담고 있다.

여기서 '울기까지'라고 한 이유는 사치오가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철부지 남자였기 때문이다. 주변의 눈을 의식해서 슬픈 척하긴 했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한 남자가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이유다.

"남녀 사이에 활활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은 결혼하기 전 연애 단계에서 다 꺼지는 게 보통이라고 들었지만, 우리의 인연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이 날로 깊어지고, 항아리에 물이 차오르듯 자애로움이 늘어간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 23p.

사치오 부부는 둘이 치고 박고 싸우거나 사이가 나빴던 게 아니었다. 뭔가 이야깃거리를 갖고 풀어놔봐야 어색하고 따분할 뿐이었다. 서로가 하는 말에 완전히 흥미를 잃은 상태였다.

평생 연애하듯이 뜨겁게 사랑할 줄 알았던 부부에게 남은 것은 무관심뿐이었다. 사치오는 부인에게서 관심을 끌만한 대화의 실마리를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반면 알지도 못하는 자신의 팬과는 유전이라도 발굴한 듯 온갖 말을 떠벌려댄다.

작가는 어쩌면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모습을 사치오 부부에게 투영하려 했는지 모른다. 서로 뭔가 이야기하려 해도 통하지 않고, 아이들이 없다면 이야기할 핑계도 찾지 못하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밖에서는 온갖 음담패설과 입담으로 좌중을 이끌면서도 가정에서는 과묵함을 미덕으로 아는 남자들이야말로 사치오가 아닌지 작가는 묻고 있는 셈이다.

남은 사람의 인생에 드리우는 그림자, 죽음

사치오 아내 나츠코가 죽던 날, 함께 여행 갔던 친구 유키도 같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그 죽음에 대해 친구의 남편 요이치는 격렬하게 슬픔을 표현한다. 두 아이를 키우게 된 요이치는 장거리 운전을 하는 직업 특성상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다.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사치오는 요이치의 두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제안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치오와 요이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다.

사치오가 자식을 잃은 것도 아닌데, 작가는 왜 그를 어린아이들에게 마음이 가도록 했을까 궁금해진다. 왜냐하면 사치오는 '이성과 질서 속에서 사는 어른에게 어린아이는 일상의 정연함을 망가뜨리는 통제 불가능한 요물'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아이가 없는 인생을 택했다.

아내와의 사별 후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날 수도 있고, 작가라는 특성상 작품에 매진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아이들에게 마음이 끌렸다는 설정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아내가 사고 당하던 순간 다른 여자랑 섹스 했다는 사치오의 죄책감을 씻어내기에는 순수한 아이들만큼 좋은 장치가 없다고 봤을까? 아니다. 사치오야말로 어린아이 중의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사치오나 두 아이를 두고 떠난 아내를 원망하는 요이치나 어린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죽는 것도 두렵고, 사는 것도 두려워하는 연약한 존재다. 성실하게 살아갈 자신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극과 극의 두 남자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몇 번이나 물으며 구원의 길을 찾는 불쌍한 인생들이다. 남자가 별 볼 일 없음을 둘은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요이치는 유키가 미웠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제멋대로 갑자기 죽어버린 유키가 미웠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되는가. 나 혼자서, 어떻게 하면 좋은가." - 101p.

"나 혼자서, 어떻게 하면 좋은가"라고 반복하는 궁상스런 질문은 사실 요이치가 아니라 사치오가 던졌어야 하는 말이다. 살아생전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아올리기까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홀로 졌던 아내를 배신한 남편이 던져야 마땅한 말이다.

사치오는 자격지심에 아내와 거리를 두었고, 누군가에게 고해성사라도 해야 견딜 수 있을 만큼 의리 없는 짓을 저질렀다. 용서를 구하기에는 너무나 뻔뻔한 일이라 변명할 기회도 갖지 못했다. 아내를 떠나보내면서도 작별의 인사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빵점 남편 그 자체인 사치오는 아이들을 돌봄으로써 용서를 구하기보다 변명을 택한다. 아내에게 했던 말과 아내를 대하던 이러저러한 태도를 떠올리며 둘러대는 사치오는 어린아이다. 그는 아내의 죽음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삶의 의욕마저 빼앗겼다.

만일 그에게 요이치의 두 아이가 없었다면 그는 죽음을 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치오는 뒤늦게 철이 든다. 그는 자신이 죽음을 선택했을 때 아이들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로 말이다.

사치오는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사람'이 아내였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뒤늦게 후회하며 아내를 생각하고 운다.

"기누가사 사치오는 처음으로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또 회한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아내를 생각하고, 울었다." - 329p.

사치오의 눈물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태어남을 뜻한다. 어린아이에게 어울릴 것 같은 눈물은 혼자 잘난 맛에 살아온 남자가 위선과 자책이라는 껍데기를 벗었음을 뜻한다. 평생 통제가 통하지 않는, 더없이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며 위험했던 한 남자가 누군가에게 포기할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나기로 작정한 눈물이다.

누군가의 '그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며 흘리는 남자의 눈물은 말한다. 마음에 두고두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절실한가? '그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있을 때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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