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된 누드사진 올린 '조중동', 이것은 성범죄다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당한 디지털 성범죄, 2차 가해자가 된 '조중동'

등록 2017.03.17 12:26수정 2017.03.17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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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15 15:49'
'최종수정 2017.03.16 11:53'

'아만다 사이프리드 누드, 유사성행위 사진 확산... 엠마 왓슨도 포함'이라는 기사가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게재된 지 꼬박 20시간 만에, 기사는 비로소 '완성'되었다. 인터넷 언론의 특성상, 최초 기사 입력 시간과 최종 수정 완료의 시간은 다를 수 있다. 페이지에 표출한 뒤에 오타를 발견한다거나, 독자에게 피드백이 온다면 반나절 이내로 수정을 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사를 입력한 뒤 스무 시간 동안 <조선일보>에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수정이 그리 오래 걸렸을까?

유출된 8장의 사진을 기사에 넣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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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출된 8장의 사진을 넣었다가 뒤늦게 노출이 없는 3장의 사진으로 수정한 조선일보 ⓒ 네이버 뉴스 갈무리


나는 가히 이 일을 '<조선일보> 사건' 혹은 '<조선일보> 대참사' 등으로 명명할 것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15일, 할리우드 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누드 사진 8장을 기사에 실었다. 그 사진들은 누군가가 불법적으로 인터넷에 배포한 사진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나체 사진과 유사 성행위 사진 등이 포함되었다는 점을 미루어보아 '디지털 성범죄'에 해당하는 악독한 행위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 중 하나인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한순간에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

현재(3월 17일 오전 3시)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의 사진을 수정했다. 수위 높은 8장의 사진 중 5장을 지우고, 노출이 없는 3장의 사진만 게재했다. 20시간 동안 수정한 결과가 이렇다.

피해자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입장에서 <조선일보>는, 태평양 너머 먼 나라의 신문사 중 하나쯤으로 인식될 것이다. '인식'조차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조선일보> 사건의 주체인 <조선일보>가 잘못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조선일보>는, 성범죄에 활용되고 성범죄의 증거가 되는 사진들을 모조리 옮겨다가 기사화했다.

심지어, 사진 속 피해자의 노출된 신체 부위를 '재미난' 스티커로 가려주는 친절함까지 베풀면서 말이다. <조선일보> 페이스북 관리자, 이른바 '조페지기'는 "오늘은 침팬빌런(침팬치)이 수고해주셨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상냥한 멘트까지 덧붙이며, 피해자에 대한 값싼 은혜를 베풀었다고 자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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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 페이스북 캡처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역시 같은 잘못을, 아니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그들은 각각 '아만다 사이프리드 나체 사진 다수 유출, 유사 성행위 장면도...'와 '엠마왓슨·아만다 사이프리드 누드 사진 유출... 유사 성행위까지'라는 기사를 작성했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친절하게도 범행에 사용된 누드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이들도 '가릴 곳은 가려주는' 상냥함(?)을 잃지 않았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기사 수정 없이 아직도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조중동'은 흔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 성향의 신문사를 한데 묶어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들의 공통점은 '보수'가 아니다. '성범죄 2차 가해자'라는 공통점을 기반으로, 그들을 '조중동'이라 부르겠다.

앞서, <조선일보>의 사례를 가장 크게 다루고 '<조선일보> 사건'이라 명명한 이유가 있다. <조선일보>는 유출된 사진 8장을 모두 기사에 사용해 가해에 앞장섰으며, 페이스북 관리자는 황당한 코멘트를 덧붙여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중동 중에서도 단연 2차 가해의 정도가 심하다. 그 잘못의 무게와 충격의 정도가 더욱 크다.

이번 '<조선일보> 사건'은, 1차적으로 발생한 성폭력에 대한 분명한 2차 가해이며, 그 폭력의 재생산 과정에 언론 권력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추악하다. <조선일보>의 오랜 독자인 나는 그 폭력의 현장을 목도했으며,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가담하는 우리 언론의 모습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들은 왜 '2차 가해'를 저질렀을까

우선, <조선일보>가 성범죄 2차 가해자가 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조선일보>의 잘못을 구조적 문제로 치환한다는 점에서 그들에 대한 알량한 변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1, 2, 3등(판매부수 기준) 신문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범죄를 저지른 상황에는 분명한 맥락이 존재한다. 이 범죄의 현장은 어디로부터 연원한 것일까.

세 언론사는 모두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해당 기사를 올렸다. 매체의 영향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온 지금, 언론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클릭수'다. 과거 신문 인쇄 부수로 언론의 영향력을 측정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시시각각 기록되는 클릭수(조회수)가 그들의 영향력을 결정한다. 이는 곧 언론사 운영의 원동력인 광고 수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데스크는 이 클릭수에 사활을 건다.

현실이 그렇다. 수일을 취재해 공들여 작성한 기사 하나 보다, '설리 인스타그램' 사진 하나를 가져와 짧게 쓴 기사의 조회 수가 더 높다. 사람들은 pc보다는 스마트폰으로, 또 언론사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기 보다는 포털사이트나 SNS 등의 플랫폼을 통해 기사를 본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짧고, 간단하고, 자극적인 기사가 먹힌다.

카카오톡의 뉴스 코너에 올라오는 기사들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이 글을 쓰는 17일 오전 3시 현재, 해당 코너에 올라온 기사 제목의 면면을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김태희 曰 "임신하고 싶어서..."'(한국경제), '부모님 몰래 11살 연상 여친과 혼인신고한 아이돌'(중앙일보), '"룸살롱에서 독립선언"...설민석...'(중앙일보). 독자의 야릇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아주 조악한 방식의 관객몰이이다.

물론, 연예인 가십을 소비하고 생산하는 대중과 언론이 무지몽매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척이나 엘리트주의적인 생각일 수 있다. 우리는 분명 그러한 가십에 흥미를 느끼고, 어느 순간 클릭한다. 그 호기심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단순한 호기심이, 조회수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는 온라인 언론이 처한 구조적 문제와 성범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기반으로 한 '발작적 관음증 문화'와 결합하는 순간, 그것은 폭력이 된다. <조선일보>의 폭력은 이 세 가지 톱니바퀴가 맞물려 극화된 것이다. 이제는 <조선일보>에 대한 알량한 변호를 거두고, 우리 개개인이 먹혀버린 관음증 문화의 징후를 살펴보겠다.

이것은 '천박한 순환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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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증'을 부추기는 언론. ⓒ 영화 <싸이코>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에 따르면, '관음증'이란 성과 연관된 행위를 관찰함으로써 비정상적인 성적 만족을 느끼는 성적 도착증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관음증은 단순히 개인이 앓는 정신질환이 아니라, '문화화'되었다. 이 문화를 형성하고 향유하는 주체는 남성이며, 이 문화에 속박받고 대상화되는 성별은 여성이다. 여성의 성적 행위는 남성을 통해 관음당하고, 남성들은 관음의 쾌락을 공유하며 호모소셜을 이룬다.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몰카 범죄나, 그것으로 유포되는 섹스 동영상 등의 존재가 이를 방증한다.

언론이 이러한 관음증 문화를 생산하는 것이냐, 아니면 문화에 먹혀버린 것이냐의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의다. 이번 사건에서도, "<조선일보>가 관음증 문화 속에 있기 때문에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누드 사진을 기사화 한 것"인지, "<조선일보>가 게재한 누드 사진을 우리가 관음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아마 관음증 문화와 언론은 저열한 상부상조를 이루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론은 대중에 관음의 기회를 제공하고, 대중은 관음의 쾌락을 공유한다. 그 쾌락은 언론에 대한 심리적 지지로 이어지며, 이것은 언론 권력에 힘을 보탠다. 참으로 천박한 순환 체계다.

이 사이클 속에서 몸집이 커지는 언론 권력은, 결국 인간의 존엄 위에 섰다. 그리고 이러한 위계는 그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성폭력 2차 가해를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언론의 선정적인 표현으로 사건 자체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것은 대표적인 2차 가해의 사례이며, 대한민국 1, 2, 3등 신문은 이를 몸소 실천하는 것에 이르렀다. 

혹여, 그들이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누드 사진 유출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을 대중과 공유하고 디지털 성범죄의 추악함을 알리기 위해 해당 기사를 작성할 의도였다면, 범죄에 사용된 사진을 올려서는 안 됐다. 무려 스무 시간 동안이나 잘못을 인지하지 못했고, 스무 시간 뒤 '마지못해' 공들여 모자이크한 8장의 사진을 내렸다. 이 지점에서 <조선일보>는 변명의 여지를 완전히 잃어버렸으며, 명백한 성폭력 2차 가해자가 되었다.

저널리즘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기를

'조중동'이라는 거대한 언론사에 국민들이 보내온 믿음의 시간과 깊이는 대단한 수준이다. 그들은 이 믿음에 착실히 보답하기는커녕 독자의 믿음을 기반으로 한 언론 권력을 가장 추악한 방식으로 사용했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앞에 나란히 도착해있다. 그들은 지구 반대편 한 여성이 겪은 끔찍한 성범죄에 동조했으며 심지어는 2차 가해를 가함으로써 저널리즘의 가치를 완전히 배반했다. 이는 독자에 대한 조소이며 윤리, 정의, 존경과 같은 인류의 가치에 대한 조롱이다. '권력화 된 관음증'이라는 이름 아래, 옳은 편에 서야만 하는 언론의 책임은 부지불식간에 뒷전으로 밀려났다.

뉴스는 '사실로 의견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조중동은 한 여성의 나체 사진이 유출되었다는 '사실'을 대단히 성실하고 박진하게 전달하기 위해 그 사진을 재배포했다. 그 행위는 그들 자신의 '의견'을 드러낸 것과 다름이 없다.

'저 문란한 여성은 스스로의 성적 방종으로 인해 사진이 유출된 것일 뿐, 성범죄의 피해자가 아니다.'

부디, 그들의 '의견'이 이것이 아니길 희구한다. 이 시대가 부여한 저널리즘의 가치를 결코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도덕적인 핵심과 끊임없이 맞부딪치며 치열하게 고민하는 언론으로 나아가기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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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 stargazer@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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