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극우 포퓰리즘, 네덜란드가 제동 걸었다

[해외리포트] '네덜란드 트럼프' 바람은 미풍에 그쳐... 녹색좌파당은 크게 약진

등록 2017.03.17 17:10수정 2017.03.1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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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가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 바람에 제동을 걸었다.

세계의 관심이 되었던 네덜란드 총선 결과가 공개됐다. 2012년 총선이 경제적 난국 타계에 초점을 맞춘 선거였다면 2017년 선거는 새로운 네덜란드를 만들기 위한 최대의 정책 대결 선거였다. 특히 이번 선거는 끝나기 전까지 그 결과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국가주의를 표방하는 극우 정당에 민심이 쏠리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컸었다.

투표율 80.4%... '네덜란드 트럼프'에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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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승리당 결과. 전국적으로 최고 의석수를 차지한 자유민주국민당(VVD)의 색깔이 네덜란드 전역에 표시되어 있다. ⓒ 네덜란드공영방송


지난 15일 오전 7시 30분부터 시작된 투표는 밤 9시까지 진행됐다. 이번 총선은 전체 인구 약 1700만 명 가운데 1300만여 명이 참여했으며, 올해 만 18세가 되어 첫 투표를 한 사람은 80만여 명이다. 전국 투표 장소는 9000개였고 투표율은 지난해보다 약 5%p가 높은 80.4%였다.

순수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네덜란드는 개방 명부제로, 투표용지에는 유권자의 선택을 바라는 정당과 후보 명단이 모두 열거되어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28개 정당의 후보자 1116명의 명단이 전부 나열됐다. 유권자는 그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여 빨간 색연필로 표시된 부분을 색칠하면 된다. 한 의석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6만3000표를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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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투표용지에는 의회 의원 후보들의 이름이 모두 기재되어 있다. 2017년 의원 후보 1,116명이 이름이 적인 투표용지 ⓒ 위키피디아


투표 결과, 제 1당은 2010년 이후 꾸준히 최다수당을 차지한 자유민주국민당(VVD, 총 150석 중 33석)이었다. 선거 기간 동안 극우파인 자유당(PVV)이 제 1당이 될 수도 있다는 예측은 기우에 그쳤다. 자유당은 총 20석으로, 중도우파인 기독민주당(CDA)보다 1석을 더 얻어 제 2당을 차지했다. 자유당은 지난 2012년 총선보다 5석을 많이 얻긴 했지만 다수당의 구조인 네덜란드에서 정책을 이끌어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다.

이번 선거는 몇 가지 특이점이 있다. 우선 네덜란드 시민들이 유럽에 부는 '극우 포퓰리즘' 바람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극우당인 자유당 당수 헤르트 빌더르스(Geert Wilders)는 이번 선거에서 '네덜란드의 트럼프'로 불렸다. 공공연하게 "네덜란드에 이주한 모로코인 다수는 감옥에 있다"라고 말하며 이민자 혐오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네덜란드의 유럽연합 탈퇴(넥시트)와 이슬람 사원 폐쇄, 이슬람국 출신의 이민 금지 등을 주장했다.


노동당(PVDA)이 정당 역사상 가장 적은 의석을 차지했다는 것도 특이점이다. 이 당은 지난 2012년 자유민주국민당 보다 2석 적은 38석으로 제 2당에 올랐다. 이후 제 1당의 연정 파트너가 되어 내각을 구성했다. 하지만 제 1당인 자유민주국민당에 끌려 다니면서 제대로 된 좌파 정책을 펴지 못했다는 질타를 받았다.

이렇게 지지층이 무너지기 시작한 노동당은 이후 지자체 선거를 치르면서 절반의 지지층을 유지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단 9석을 얻어 붕괴 직전까지로 추락했다. 지지층의 이탈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랐다. 정당이 정책 색깔을 잃은 순간, 함께 했던 지지층이 바람과 같이 사라진다는 속설을 그대로 보여준 결과다.

"변화의 시간" 녹색좌파당은 4석→14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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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클라버 녹색좌파당 당수. 젊고 유능하며 언변이 출중하여 녹색좌파당은 지난 선거보다 10석 더 얻을 수 있었다. '클라버 효과'로 불리기도 한다. ⓒ 네덜란드공영방송


반대로 녹색좌파당(Groen Links)의 선전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녹색좌파당이 생긴 이후 가장 많은 의석을 얻은 선거였다. 2010년 10석을 얻으며 성장가도를 달리던 녹색좌파당은 2012년 연정 실패로 다시 치러진 선거에서 4석으로 주저앉았다. 핵심 정당으로 꼽히지 않았던 녹색좌파당의 참패는 그들에게 대단한 시련이었다.

이후 녹색좌파당은 다시 전열을 정비한다. 그리고 예시 클라버(Jesse Feras Klaver)가 당수가 되면서 서서히 '뜨는 정당'이 될 채비를 했다. 그는 21살에 네덜란드 녹색좌파당 청년 정치조직의 의장을 지내면서 정치 세계에서 빠르게 성장한 인물이다. 젊음과 뛰어난 언변으로 젊은 층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올해 서른인 클로버는 중견 정치인들과 각 당의 정책을 두고 치열하게 공방하는 정치토론을 할 때도 단연 돋보였다. 유명한 정치토론 프로그램에서는 유수한 정당 당수들을 제치고 최고 토론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모로코인이며 어머니는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이다. '변화의 시간'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그의 각오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는 게 선거로 증명됐다. 지난 선거보다 10석이 늘어난 총 14석을 얻어 연정 주도권이 있는 제 1당 자유민주국민당의 연정 파트너로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만약이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높았다면 녹색좌파당이 제 2당이 될 수도 있었다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 참여한 18세에서 34세 유권자 중 녹색좌파당을 찍은 사람은 35.04%에 이른다.

신생 정당의 약진도 눈에 띄었다. 신생 정당이 의회에 진출한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터키에서 온 이민자와 그 2세들이 만든 정당인 DENK(네덜란드어로 '생각', 터키어로 '균형'이라는 뜻)당은 이번 선거에서 3석을 얻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현재 네덜란드에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사는 터키인은 약 40만 명이다. 선거 기간 동안 발생한 터키와 네덜란드의 외교 분쟁이 이 신생당에 표를 몰아주는 결과를 낳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 외에 50플러스당(50+ 노인들을 위한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당), 동물당(PVDD), 민주포럼(FVD)당 등 작은 당들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집단을 위해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제 1당 유지 비결은 '먹고사는 문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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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난 뒤 한자리에 모인 각 당 대표들. ⓒ 네덜란드공영방송


한국을 방문한 적 있는 이번 선거의 다수당인 자유민주국민당의 마크 뤼뜨(Mark Rutte) 수상은 이제 3기를 맞이 할 채비를 하고 있다. 2010년부터 제 1당의 위치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 안정과 낮은 실업률을 유지해 우파들이 극우당으로 이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복지 국가에 사는 우파에게도 무척 중요한 일이다.

자유민주국민당은 지난 선거보다 의석 수를 잃긴 했지만 극우파인 자유당을 제외하고 어떤 정당이든 연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중도 보수인 기독민주당과 민주66, 혹은 좌파 정당을 포함한 3~4개의 정당이 연합해 국가주의를 표방하는 극우당의 기승을 한풀 꺾을 것만은 분명하다.

작은 나라 네덜란드의 총선에 세계 언론이 이번 만큼 집중한 적은 드물었다. 심지어 덴마크 공영 방송에서는 선거 결과를 격찬하며 네덜란드 총선 내용을 덴마크 앵커들이 네덜란드어로 방송하기도 했다.

다양한 정당으로 이루어진 네덜란드 의회는 이제 연합정부 구성을 위해 바쁘게 움직일 것이다. 오는 21일 오후 4시에 최종 투표 결과가 발표되지만 의석수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네덜란드 의회는 출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이 시작이 유럽연합국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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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들이 자신의 생각과 가장 부합하는 정당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웹사이트가 있다. 스템바이저(stemwijzer https://www.stemwijzer.nl)는 30개의 문항에 답하고 자신이 가장 핵심적인 쟁점과 관심 정당을 표시하면 관심 정당에 관련된 정책 궁합을 확률로 표시해준다.

30개의 항목 안에는 교육, 안보, 의료, 고령화, 환경, 이민, 유럽연합 등의 각 정당이 추구하고 있는 정책들을 기반으로 한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별히 젊은 유권자들의 삶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책들 위주로 정당을 추천해주는 젊은이들을 위한 웹사이트(https://jongerenkieswijzer.nl)도 특별히 만들어져 있다.

#네덜란드 #녹색좌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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