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

1894년 하동, 농민군 186명이 전사했다

하동 고성산성을 찾아서

등록 2017.03.21 14:05수정 2017.03.2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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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 옥종면 북방리에 있는 고성산성 가는 길 ⓒ 김종신


낯설다. 3월 10일 초행길이라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길을 찾지만, 못내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사천 곤명면 곤명중학교 지나 하동 옥종면 쪽으로 향하자 '고성산 동학로'라는 도로명 주소가 곳곳에 나온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동 고성산성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지만 다행히 시멘트 포장길이라 승용차로 갈 수 있다. ⓒ 김종신


 
북방마을 못 미쳐 이정표가 나온다. 가파른 길이지만 다행히 시멘트 포장길이라 승용차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5분 정도 올라가자 우뚝 솟은 탑이 나온다. '동학혁명군 위령탑'이다. 횃불 모양의 탑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나를 내려다본다. 탑 아래에는 천도교의 둥글고 붉은 표시가 새겨져 있다.
 

하동 고성산성 능선에 있는 동학혁명군 위령탑 ⓒ 김종신


 
탑 오른편으로 '이곳은 민족의 얼이 깃든 곳이며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다~'로 시작하는 건립문이 새겨진 석판이 붙어 있다. 탑은 동학 혁명 100주년을 맞아 2014년 건립되었다. 탑 뒤편으로 돌아가자 모양새가 또 다르다. 길쭉하게 혼자 서 있는 탑을 뒤쪽에서 허리춤까지 두툼하게 받치는 형상이다.
 

하동 고성산성 능선에 있는 동학혁명군 위령탑 뒤편으로 돌아가자 모양새가 또 다르다. 길쭉하게 혼자 서 있는 탑을 뒤쪽에서 허리춤까지 두툼하게 받치는 형상이다. ⓒ 김종신


탑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갔다. 소나무 갈비가 푹신푹신하다. 약 100m 가량 거리에 산성 흔적이 나온다. 고성산성(古城山城)은 축조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 후기까지 산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고성산성은 고성산 8~9부 능선 곳곳에 자연 암벽으로 형성되어 있다. 현재는 자연 암벽과 연결해 축조한 엣 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성산성 동학혁명군 위령탑에서 100m 가량 숲으로 들어가면 옛 성터가 나온다. ⓒ 김종신


 
성벽의 흔적을 뒤로 하고 숲 속에서 그날을 떠올렸다. 하동은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일본의 내정 간섭과 국권침탈이 본격화되자 이에 항거하여 봉기한 서부 경남 농민군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고성산 정상부근에는 농민전쟁 당시 농민군 지휘자들이 회의 때 사용한 의자와 탁자 잔해로 보이는 것들이 남아 있다. ⓒ 김종신


 
1894년 전라도에서 농민군의 봉기가 시작되자, 같은 해 7월 하동을 비롯한 서부 경남 농민들도 봉기에 나서 한때 진주성을 함락하기도 했다. 일본군의 반격으로 물러나 이곳 고성산성을 중심으로 항거했다. 10월 14일에 5천여 명으로 구성된 농민군은 이곳으로 출병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농민군 186명이 전사했다.
 

1894년 10월 14일에 5천여 명으로 구성된 농민군은 이곳으로 출병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농민군 186명이 전사했다. ⓒ 김종신


 
돌무더기 하나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산 정상 부근에는 농민전쟁 당시 농민군 지휘자들이 회의 때 사용한 의자와 탁자 잔해로 보이는 것들이 남아 있다. 산 정상에서 까치발을 하고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아쉽게도 사방에 나무들로 둘러싸여 명확하게 하동과 진주, 산청 일대가 보이지 않는다. 산 정상 인근에 전망대를 세우고 인근 진주시 수곡면 진주농민항쟁기념탑 등 농민항쟁지를 둘러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성산성 옛터에 개옻나무 열매들이 마치 넋인 양 매달려 있다. ⓒ 김종신


 
세상을 꺠울 뾰족하게 돋은 새눈이 보인다. 산악회에서 걸어놓은 길 안내 리본이 붉게 그날의 농민군 깃발처럼 펄럭인다. 개옻나무 열매들이 마치 넋인 양 매달려 있다. 근처 청미래덩굴의 붉은 열매는 선열들의 뜨거운 피처럼 느껴진다.
 

하동 고성산성 옛터는 사방에 나무들로 둘러싸여 명확하게 하동과 진주, 산청 일대가 보이지 않는다. 산 정상 인근에 전망대를 세우고 인근 진주시 수곡면 진주농민항쟁기념탑 등 농민항쟁지를 둘러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김종신


 
숲을 나와 탑으로 향했다. 근처 긴 의자에 앉았다. 가져간 물로 목을 축였다. 이맘때면 기억 저편에서 아스라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햇살 쏟아지는 사이로 까마귀들이 진혼곡처럼 "까악까악" 노래한다. 부패한 정권과 일본의 침략에 저항했던 역사 현장에서 피 흘렸던 민중들의 넋을 달래는 듯하다.

하동 고성산성 위렵탑 근처 긴 의자에 앉아 무심코 스쳐왔던 바람조차도 숨죽여 지나는 이곳에서 활활 타오른 그날의 거룩한 분노를 느낀다. ⓒ 김종신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바로 역사의 현장이다. 무심코 스쳐왔던 바람조차도 숨죽여 지나는 이곳에서 활활 타오른 그날의 거룩한 분노를 느낀다.
덧붙이는 글 하동군블로그
진주지역 인터넷언론 <단디뉴스>
<해찬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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