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만큼 열정적이었던 정약용 형제의 논쟁

3월 흑산도는 동백꽃으로 붉다

등록 2017.03.19 10:38수정 2017.03.1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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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동백꽃 ⓒ 이주빈


3월의 흑산도는, 붉다. 동백꽃 때문이다. 푸르다 못해 검은 바다를 배경으로 동백숲마다 동백꽃 지천으로, 붉다. 아직 입 다문 꽃망울부터 줄기를 벗어나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만개한 꽃은 물론 모가지째 통으로 뚝 떨어진 꽃마저, 붉다. 김영랑의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이 절로 읊조려진다. 

"내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혀 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듯 눈엔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일제가 강권하는 창씨개명을 거부한 채 고향 강진에서 극진한 모국어로 남도를 노래하던 시인. 영랑의 강진 생가 주변은 흑산도처럼 동백꽃 지천이었다.

강진 역시 흑산도와 같은 동백의 고향이니 영랑이 자신의 순정을 동백에 비유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강진 백련사는 동백숲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넘어가는 오솔한 길의 동백은 단아하기 그지없다. 

그러고 보면 흑산도와 강진은 통하는 것이 많다. 흑산도와 강진은 고대 항로에서 동아시아 교류의 플랫폼이자 거점이었다. 흑산도는 일본의 큐슈와 한반도, 중국 상하이, 닝보를 연결하는 해양 플랫폼 역할을 하였다. 강진은 당시 첨단산업이었던 청자를 생산하는 기지로, 이 청자는 동아시아 최고의 교류품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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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동백꽃 ⓒ 이주빈


또 흑산도와 강진은 유배지였다. 이 아득하게 먼 두 유배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연결한 이들이 있으니 다산 정약용·손암 정약전 형제다. 동생 약용은 강진에서, 둘째형 약전은 흑산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다산과 손암은 매우 특별한 관계였다. 우선 두 사람은 핏줄로서 연이 애틋했다. 그리고 학문을 교호함에 있어 막힘이 없는 든든한 동반자였다. 다산은 이런 둘째형 손암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따랐다. 다산이 먼저 간 형의 묘비에 "우리 형은 누구보다 영민했으나 천성이 게을러서 책을 많이 쓰지는 않았다"라고 적을 정도로 막역했고 친근한 사이였다.

어느 날 다산은 손암에게 1801년 11월 22일, 전남 나주 율정의 주막집에서 각자의 유배지로 떠나던 날을 회상하는 슬픈 시를 보낸다.

"가장 미운 것은 율정 주막집의/ 문 앞 길이 두 갈래로 난 것이지요/ 원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지는 꽃처럼 흩날리다니....(하략)...."

슬퍼하는 동생에게 손암은 답시를 보내 위로한다.

"남쪽으로 오던 길 아직도 사랑하는 것은/ 율정의 갈래 길로 이어지기 때문이네/ 갈기 늘어진 말 함께 타고 열흘 올 때에/ 우리는 참으로 한 송이 꽃이었지....(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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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동백꽃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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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동백꽃 ⓒ 이주빈


형제지간으로서 애틋한 정은 논쟁을 할 때는 얼음처럼 변했다. 두 사람은 유배지에서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해류, 천기, 지구의 자전 등과 관련한 수많은 논쟁과 토론을 벌인다. 논쟁은 주로 손암 특유의 어법 즉 "이런 말이 있다는데 혹 동생은 아는가?"로부터 촉발됐다.

그럼 다산은 "내가 저번에 읽은 책에 보면...."으로 대구를 시작해서 "어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단 말이요?"로 끝나는 답을 보내기 일쑤였다. 그럼 또다시 형의 답이 오고, 동생은 아예 논쟁 주제를 연구주제로 삼아버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다산 정약용이 1813년에 완성한 <해조론(海潮論)>이다. 1805년 무렵 손암은 다산에게 "바다의 조수 간만 차이가 달의 인력 때문이 아닌가"하고 지그시 질문을 던진다. 다산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시작한 이후 8년 동안이나 바다의 조류 원인을 연구한다. 그 연구의 결과물이 <해조론>이다.

형제는 지구의 자전설을 두고 한바탕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손암 정약전은 나무를 깎아서 지구본을 만들 정도로 천문에 박식한 학자였다. 전주대 서종태 교수와 정약전 연구자 임송은 "우리나라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은 최한기가 아니라 손암 정약전"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손암과 다산이 유배지에서 주고받은 편지 논쟁이다.

손암은 다산에게 "혜성(彗星)은 지구가 도는 확실한 증거"라고 편지를 보낸다. 이에 대해 다산은 역시 7, 8월에 관찰한 혜성을 예로 들며 "붙박이면 붙박이고 떨어지면 떨어질 일이지, 어떻게 돌 수가 있고 옮길 수가 있단 말입니까?"하고 반박한다.

그러자 손암은 다시 또 혜성을 예로 들며 "혜성이 처음에는 서쪽에 있다가 점점 동쪽으로 향했는데 지금은 북두성 동쪽 5, 6도 쯤에 있으니 이는 지구가 운행하는 분명한 증거"라고 논박한다.

형제지간에 나눈 우정과 교류가 동백꽃처럼 붉다. 한 치 뒤끝을 남기지 않고 통째로 교호하는 형제의 마음은 동백꽃의 순정을 닮았다. 순정이 손가락질 당하는 시절, 혈관을 드러내며 통으로 적멸(寂滅)하는 동백꽃 맞으러 지금은 남쪽으로 가야할 때. 저기 수평선 너머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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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동백꽃 ⓒ 이주빈


덧붙이는 글 다산 정약용과 손암 정약전의 과학 논쟁은 정약전 연구자 임송 선생의 '손암 정약전의 과학탐구'가 귀중한 참고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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