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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태어난 후 부쩍 성장한 제 딸 윤별이의 사진입니다. ⓒ 나승완

지난해 5월 태어난 제 딸의 이름은 '윤(贇)별'입니다. 지난 14일 광주가정법원에서 제 딸이 '윤(贇)별'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게 개명을 허가했거든요. 한자인 '贇(빛날 윤, 예쁠 윤)'과 한글 '별'을 혼용한 제 딸의 이름에는 '빛나는 별', '예쁜 별'이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법원 결정문을 받아든 순간, 제가 원했던 이름을 딸에게 선물해줄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겠습니다.

광주가정법원은 결정문에서 '가족관계등록법은 이름에 한글과 한자를 혼합해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는 취지로 개명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1심 결정을 취소하고 개명을 허가했습니다. 또한 '부모양성(兩性)쓰기 방지를 위해 혼용을 금지하는 것은, 한자로만 이루어진 이름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라 굳이 한자·한글 혼용을 제한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예규의 부당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서울동부지법도 "한자+한글 이름 금지한 예규 부당하다" 판결

한연규(44) 변호사는 지난 2005년 태어난 첫째 아이의 성명을 자신의 성(姓) 한(韓)에, 이름은 아내의 한자 성 이(李)와 한글 '새움'을 붙여 '李새움'으로 지었습니다. 결국 '韓李새움'으로 출생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부와 주민등록부에도 '韓李새움'으로 등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위 이름으로 건강보험증도 받고 여권도 발급 받았습니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니는 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한 변호사는 첫째 아이의 경우처럼 둘째 아이의 이름도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여 '韓李새봄'이라고 지었습니다. 당시에는 출생신고가 받아들여졌으나, 2주 뒤 '둘째 아이의 이름이 예규에 맞지 않아 출생신고를 반려하고 주민등록번호도 삭제하겠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결국 한 변호사는 첫째 아이와는 달리 둘째의 출생신고가 거부당하자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항고를 거쳐 15년 7월 서울동부지법으로로부터 예규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냈죠.

서울동부지법 또한 당시 결정문에서 "한글과 한자를 섞어서 이름 짓지 못하도록 한 예규는 합리적인 범위를 넘어 부모의 작명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어 효력이 없으며, 아버지의 성(姓)을 따르게 돼 있는 이상 한글과 한자 혼용을 허용한다고 해서 성이 혼동될 우려도 거의 없다"고 밝혔습니다(관련 기사:<조선일보>2년 분투 끝 딸 이름 지킨 아버지).

광주가정법원·서울동부지법 모두 자녀의 이름에 한자·한글을 혼용 금지한 가족관계등록예규 제109호 5항이 부당하다며 같은 의견을 낸 겁니다.

처음 제 딸의 출생신고가 이름 때문에 거부당했을 때, '아, 내가 몰랐던 규정이 있었구나. 국가에서 정한 규정이니 그대로 따라야겠다'며 한글로만 이름을 지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한 변호사님의 첫째 아이처럼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여 이름을 지었음에도 출생신고가 받아들여진 사례가 꽤 있었고, 심지어 다른 지자체의 주민센터에서는 혼용을 금지한 예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떤 공무원은 출생신고를 받아주고 있더군요.

처음에는 저도 부모의 작명권을 국가가 어느 선까지 규제하느냐에 대한 시각으로만 이 문제를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누구는 허용되고, 누구는 허용 안 되는, 형평성 없는 국가행정이 더 큰 문제라고 바라봤고, 결국 근본적으로 예규를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부당성을 기사로 알린 배경입니다(관련기사:딸아이 때문에 헌법소원 낸 아빠, 저입니다).

지난해 5월 헌법재판소(아래 헌재)에 제기한 헌법소원은 결국 각하됐습니다. 헌재에서는 법의 위헌성만 판단할 뿐, 행정예규의 위헌성은 판단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어렵게 헌법소원을 제기한 건데, 판단조차 못 받게 되어 조금 억울했습니다. 헌재의 각하 이후 저는 예규를 수정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한자·한글 혼용 이름 허용하자... 법률안 국회 계류 중

행정기관의 사무처리 지침인 예규를 수정하기 위한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대법원으로까지 사건을 가지고 올라가 위헌성을 판단 받는 것이고, 둘째는 입법기관에서 예규를 제한할 법률을 만드는 것이죠.

광주가정법원의 2심 판결로 제 딸의 이름을 되찾아 더 없이 기쁘지만, 3심인 대법원까지 가지 않고 사건이 종결되어 아쉬운 마음도 큽니다. 예규를 수정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하나가 사라진 것이니까요.

다행히 언론을 통해 이 일이 이슈화되어 부모의 작명권을 지키기 위한 취지의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2016년 8월 국민의당 정인화 의원(전남 광양·곡성·구례)이 가족관계등록법 44조 3항에 '한글과 한자를 혼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한 이른바 '윤별이법'을 대표 발의하셨죠. 광주가정법원·서울동부지법에서 '출생신고 시 이름에 한자와 한글을 혼용했다는 이유로 출생신고를 반려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 내렸지만, 윤별이법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지난해 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아래 법사위)에서 윤별이법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검토 보고서에는 '혼용 금지는 작명권을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과 '법률이 아닌 예규로 이름의 혼용을 제한하는 것'은 문제라는 점을 들어 개정의 필요성에 수긍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한자와 한글 혼용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저는 최근 광주가정법원·서울동부지법의 판례에 비추어 그 의견을 하나하나 반박해보려 합니다.

한글·한자 혼용은 오히려 국어기본법의 취지를 살리는 길

법원행정처는 '법사위 검토보고서'를 통해 한글·한자의 혼용 이름이 국어기본법의 취지에 반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국어기본법이란 대한민국 공용어로서 한국어인 '국어'의 사용을 촉진하고, 국어를 발전시키자는 취지로 마련된 법입니다. 하지만 검토보고서에는 대체 어떤 면에서 국어기본법의 취지에 반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예시가 전혀 없어 의문입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저는 그 누구보다 우리의 모국어를 사랑하고, 모국어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딸의 이름도 모국어를 사랑한 윤동주 시인의 시에서 뜻을 따왔을 정도니까요. 연구 결과, 오히려 국어기본법의 취지를 살리고 한글의 뜻을 살린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해서라도 이름에 한자·한글 혼용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순우리말로 이름을 짓기에는 조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경우 순우리말과 한자를 조합하면 좋은 이름을 많이 지을 수 있죠. 제 딸아이의 이름 '윤별(贇별)'도 한자와 한글을 조합하여 뜻을 살린 경우입니다.

저는 윤동주 시인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별'이라는 순수 한글 단어와 '빛날, 예쁜'이라는 뜻을 가진 '윤(贇)'이라는 한자어를 조합하여 딸아이에게 '윤별(贇별)'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처럼 이름을 지은 이유는 딸이 '윤동주 시인이 노래한 별처럼 아름답게 자라서 어려운 사람들의 그늘진 삶에 빛이 되어 주라'는 의미에서였습니다.

누군가 '金솔(금솔)', '銀솔(은솔)'이라고 이름을 짓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런 이름을 짓는 이유는 한글과 한자가 조합된 그 뜻뿐만 아니라 어감이 좋고 맥락상 형제간의 이름에 연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한글로만 또는 한자로만'이라며 과도하게 해석을 제한하면 '金松(금송)', '銀松(은송)'이라고 이름을 지어야겠죠. 뜻은 같더라도 '금솔'과 '금송'의 어감에는 큰 차이가 있지 않나요? 예규대로 '금솔'이라고 한글로만 이름을 짓더라도 뜻은 통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분이 계실 듯도 합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비단처럼 아름답다'는 뜻을 담고 있는 한자어인 '錦(금)'자를 써서 '錦솔'이라고 자녀의 이름을 지었다고 해보겠습니다. 한자·한글 병기를 금지하는 예규대로 '금솔'이라고 쓸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이 '錦솔' 아닌 '金솔'을 연상하지 않을까요?

제가 딸아이의 이름을 굳이 '贇별'이라고 한 이유도 역시 이름의 뜻과 어감, 별이라는 한글 단어의 사용 등 모든 요소를 고려해서입니다. 만일 순 한글로만 이름을 짓는다면 '빛난별', '예쁜별'이라고 해야 뜻이 드러나겠지만 처음 의도와는 달리 어감이 달라집니다.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두 글자 이름 짓기도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모두 한자를 사용하여 '贇星(윤성)'이라고 이름을 짓는다면 뜻은 그대로겠지만, 이 역시도 부모에 따라 흔한 이름이라고 생각하거나 어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결코 같은 이름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출생신고가 거부당했을 때, 저는 어쩔 수 없이 딸의 이름을 한글로만 '윤별'이라고 기재하여 어감은 그대로 살렸지만 뜻은 포기한 게 되어 버렸습니다. 가족관계등록부나 주민등록등본, 주민등록증 어디에도 '빛날, 예쁜'이라는 뜻의 한자 '贇'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혼용 이름은 부모양성(兩性)쓰기의 편법과는 무관

법원행정처는 민법 제781조가 부 또는 모 한쪽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하고 있는 만큼, 혼용이 허용될 경우 부모 양성 쓰기의 편법으로 이름에 첫 자만 한자를 쓰고, 나머지는 한글로 사용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광주가정지법과 서울동부지법 두 기관 모두 이름에 한자와 한글을 혼용한다고 하여 성을 혼동할 여지가 크지 않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양성 쓰기의 편법은 지금처럼 한자로만 이루어진 작명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어서, 굳이 한글과 한자 혼용의 경우에만 국한하여 제한할 필요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는 의견을 냈죠.

법원행정처의 말대로라면, 저처럼 딸의 성명을 '羅(나)贇(윤)별'로 지을 경우 사람들이 성을 '羅贇(나윤)'으로, 이름을 '별'이라고 혼동할 우려가 있을 수도 있다는데 과연 그럴까요?

이름에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면 성이 두 글자인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고는 하나 '諸葛(제갈), 南宮(남궁)' 등 두 글자로 이루어진 성의 구성글자가 아닌 '金(김), 李(이), 朴(박)' 등의 성씨 혼합은 성이 두 글자인 것처럼 혼동될 우려가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민법상 성과 본은 원칙적으로 부모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되어 있고 부모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성과 본을 창설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제 딸이 임의로 성을 '羅贇'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고, 주장한다고 해서 '羅贇'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제 딸의 성을 '羅贇'이라고 혼동했다고 해서 그 혼동이 법률관계를 좌우하지도 않고요.

우리나라의 두 글자 성씨 중 '제갈(諸葛), 독고(獨孤), 황보(皇甫)'와 같이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진 성도 있지만 '동방(東方), 망절(網切)'과 같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성도 있습니다. '동방(東方), 망절(網切)'씨 같은 경우 많은 사람들이 성을 '동(東)' 또는 '망(網)'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성과 본이 임의로 창설되는 것도 아니고 공부(公簿)에 의해 확인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성씨 그 자체로 좌우되는 법률관계가 없기 때문에 성씨를 착각한다고 해서 법적 혼란이 야기되지도 않습니다. 다만, 굳이 이야기하자면 당사자가 스스로 설명을 해야 하는 귀찮음이 있을 뿐입니다.

법원행정처에서는 이름의 앞글자는 한자로 하고, 뒷글자는 한글로 하면 성과 이름을 착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만, 굳이 한자·한글 혼용이 아니어도 착각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초등학교 동창 중 '황보연'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저는 그 친구의 성이 '황보'인지, '황'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거든요. 즉, 한글과 한자 혼용의 경우로만 국한하여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게다가 어느 분은 한자·한글의 혼용을 한번 허가하기 시작하면 '金, 李, 朴'등의 성이 계속 붙어 이름이 우스워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우려라면 지금처럼 한자로만 이루어진 작명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요? 게다가 현재도 혼용과는 상관없이 이름의 글자수는 가족관계등록예규 4조로 인해 5글자 이내로 제한되고 있는데 말이죠.

성과 이름의 혼동을 막는 새로운 방법

성의 혼동이 야기되지도 않겠지만, 만약 야기될 우려가 있다면 공부상 성을 쓰는 란과 이름을 쓰는 란을 별도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가족관계증명서를 보면 성명을 동시에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데, 성을 쓰는 란과 이름을 쓰는 란을 별도로 구획하면 공부상 무엇이 성이고 무엇이 이름인지 명확해질 겁니다. 결국 국민의 기본권인 작명권을 제한하지 않고도 성의 혼동방지라는 공익을 달성할 수 있겠죠.

성의 혼동방지라는 공익상의 목적이 만약 인정된다면, 이런 공익을 달성할 수단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수단이 채택되지 않은 걸까요? 한글과 한자의 혼용을 금지하도록 하는 것은 수단도 적절치 않고, 법원의 판단처럼 달성하려는 공익에 비해 과도하게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자녀의 이름을 '개똥'이나 '악마' 또는 '히틀러'라 짓는다 해도 금지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 법률이나 예규에는 비하적 이름이나 악명이 높은 자의 이름을 따르는 것을 금지할 규정이 없기 때문이죠. 결국 현재의 가족관계등록 예규는 실질적으로 규제해야 할 것은 규제하지 않고, 별다른 공익적 유효성이 없는 한자와 한글의 혼용만을 금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자·한글 이름 혼용, 40억 원 예산은 무슨 근거로?

법원행정처에서는 한글·한자 혼용표기를 허용한다 하더라도, 법원의 전산시스템을 수정하기 위해 약 4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검토보고서에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만큼의 예산이 들어가는지에 대한 설명이 단 한 줄도 없습니다. 기사를 쓰기 전 '소요 예산 40억 원에 대한 근거를 밝혀달라'며 법원행정처에 정보공개를 신청했으나 작년 12월 공개를 거부당했습니다.

국민의 세금을 40억 원씩이나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도 이해되질 않았지만, 그 예산 근거를 단 한 줄도 밝히지 않은 것이 더 이상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도 한자와 한글의 혼용 이름표기가 가능하거든요.

만약 이게 불가능했다면, 저와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한연규 변호사님의 첫째 자녀인 '한이새움(韓李새움)'군의 출생신고는 대체 어떻게 이루어진 걸까요? 상식적으로 출생신고 후에도 전산시스템이 갖추어져있지 않았다면 이름 기재가 안 됐겠죠. 한이새움군은 가족관계등록부와 주민등록부에도 '韓李새움'으로 등재가 되었고,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같은 이름으로 된 건강보험증과 외교부 여권도 발급 받았습니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니는 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한 변호사님의 둘째 자녀인 '한이새봄(韓李새봄)'양 또한 서울동부지법의 판결 이후 한자와 한글을 혼용한 지금의 이름을 잘 쓰고 있습니다. 굳이 한 변호사님 자녀들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일부 지자체 주민센터에서는 한자·한글 혼용 표기를 허용해 왔는데 전산시스템이 불가능했다면 이름에 한자·한글을 혼용한 분들은 어떻게 이름 쓰는 게 가능했겠습니까? 이런 분들이 한두 명인 것도 아닌데, 법원행정처에서는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요?

요컨대, 주민등록사무(행정자치부 소관), 가족관계등록사무(법원 소관), 건강보험공단의 사무(보건복지부 소관), 여권사무(외교부 소관), 교육사무(교육부 소관) 등 이름을 기재해야 하는 모든 행정기관에서 지금도 한자·한글 표기가 가능한 만큼, 전산시스템을 굳이 수정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제 딸의 이름이 처음 원했던 윤별(贇별)이로 바뀐 것에 대해, 차후 어떤 행정적인 불편함도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행정상 혼란은 거의 없어

국민의당 정인화 의원이 발의한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은 기존 법률 44조 3항 <자녀의 이름에는 한글 또는 통상 사용되는 한자를 사용하여아 한다>을 <… 한자를 사용하되 한글과 한자를 혼용할 수 있다>로 개정하였습니다. 

이 개정 법률이 통과되면 행정상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는 분들이 계신데요. 잠시 살펴볼까요? 등록부의 기록방법을 규정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규칙 제63조'는 '성명란은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글과 한자를 병기'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 때문에 제가 가진 주민등록증에는 제 성명이 나승완(羅承浣)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자와 한글 혼용이 허용될 경우 예를 들어 성이 한(韓)이고, 이름이 이새봄(李새봄)인 경우 아래처럼 등록부의 성명란에 한이새봄(韓李새봄)으로 기록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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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 나승완

성명에 한자와 한글을 병기하는 지금의 기록 방식과 전혀 다를 게 없기 때문에,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행정상 큰 혼란이 초래될 여지가 전혀 없는 거죠.

윤별이법 통과를 바라며... 시대에 따라 법이나 행정도 변해야

가급적이면 한자보다는 아름다운 한글 이름을 사용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자도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글의 일부가 된 만큼 한글의 뜻을 잘 살릴 수 있다면, 이제는 이름에도 한자와 한글을 병행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 딸의 사연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굳이 자녀의 이름에 한자와 한글을 섞어야 하냐고 비판하는 분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오지랖(?) 부리지 말고 그냥 정부에서 규정한 대로 따르라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기사를 쓰는 동안에도 자신이나 자녀의 이름에 대한 국민의 권리는 과연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는 허용이 되고, 누구는 허용이 안 되는 국가행정의 형평성과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예규를 수정하지 않은 행정편의주의를 모두 비판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정인화 의원께서 윤별이법을 발의하셨지만, 윤별이법이 국회에 계류 중인 현재, 갈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윤별이법이 통과되면 실무를 담당할 법원행정처에서 부정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요예산에 대한 명확한 근거조차 단 한 줄 포함되어 있지 않은 법원행정처의 검토보고서 때문에 정부기관에서는 어떤 근거로 국민의 세금을 쓰고 있는지 의심이 더욱 커지기만 하네요. 

여기서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 이름을 쓰고 계신 분은 누구일까요? 바로 지휘자 '금난새' 선생님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한글 이름을 사용해 왔으나 일제가 강점기에 한글 표기를 못하게 하자 줄곧 한자로만 이름을 표기했었죠. 일제가 식민지 지배자로서 피지배자들의 이름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것이 한국인의 이름은 한자로 써야 한다는 의식의 가장 큰 원인이라 합니다. 하지만 금난새 선생님의 아버지이신 고 금수현 작곡가께서 1947년 각고로 노력하신 끝에 지금은 누구나 한글 이름을 주민등록부에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상관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를 굳이 꺼낸 이유는, 시대에 따라 법이나 행정도 바뀌어야 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바꾸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다는 것도요.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만 따르는 것이 결코 능사는 아닐 테니까요.

다행히 법사위에도 최근 광주가정법원의 판결로 인해 윤별이법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이 상당히 우세해졌다고 하네요. 마침내 저는 1년여의 기다림 끝에 제 딸에게 네 이름의 뜻은 빛나는 별이라고, 빛나는 별처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웃으면서 말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지만, 결국 저는 윤별이법이 혹시라도 불편을 겪을 그 누군가를 위한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윤별이법이 무사히 통과되어 법과 행정 사이의 불합리한 간극이 좁혀지고, 사회의 제도 또한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지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윤별이법이 통과되면 또다시 기사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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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딸의 이름이 출생신고 거부당한 후, 오마이뉴스를 통해 관련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최근 광주가정법원 판결로 처음 제가 원했던 이름을 딸에게 선물해줄 수 있게 됐죠. 오마이뉴스에 썼던 기사들이 이슈화되어 윤별이법도 발의 됐지만, 국회에 여전히 계류 중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광주가정법원의 최근 판결을 알리고, 윤별이법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인 법원행정처의 검토보고서 내용을 반박했습니다. 윤별이법이 하루 빨리 통과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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