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철도기관사 '업무상 재해' 인정받은 까닭은?

[뉴스 속의 노동법⑤] 업무와 재해 상당 인과관계 판단되면 인정

등록 2017.03.22 10:13수정 2017.04.0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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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14일 서울시의회 회의실에서 기관사 자살실태와 해결방안 토론회 ‘그들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나’가 진행되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서울시의회 민생실천위원회에서 주최한 이 토론회에서는 사태 진단, 원인 분석, 대책평가와 조언에 이르기 까지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다. ⓒ 일과건강


9년 전 사망사고를 목격하고 후유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철도기관사가 대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해당 기관사는 2003년 열차 운행 중 선로 안으로 뛰어든 시민을 치어 숨지게 했는데, 이 사고로 인해 지속적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면서 2009년부터는 우울증 치료까지 받다가 결국 2012년 6월에 선로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에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재해 신청과 재심사청구를 하였는데 공단이 받아들이지 않자 2014년 6월 법원에 소송을 낸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무려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유족들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그런데 근로자의 자살로 인한 사망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상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일반상식의 관점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먼저 근로자가 산재보험법상의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업무상 사고나 질병이 산재보험법상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어야 한다. 이때 원칙적으로 근로자의 과실여부는 문제 되지 않지만, 산재보험법에서는 근로자의 면책사유를 광범위하게 인정할 경우 사회 보험제도의 근간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위험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보험법 일반의 원리가 적용되어, '근로자의 고의 등'을 보험관장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다(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다만, 그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써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라고 단서를 붙이고 있는데,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유란 1)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자가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2)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자가 그 업무상의 재해로 말미암은 정신적 이상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3) 그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말미암은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를 의미한다(산재보험법 시행령 제36조).

즉, 근로자의 자살이 고의성이라는 자유로운 의사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업무로 인한 우울증의 병적인 발현에 따른 것이라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 또는 그에 의한 자살의 주요발현원인이 '개인의 정서적 취약성'에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 소극적이며 이를 인정받기는 매우 어렵다. 다시 말해서, 근로복지공단은 '보통평균인'의 입장에서 업무와 우울증, 자살의 인과관계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업무와 자살 사이에 인과관계 있으면 업무상 재해 인정

이와 관련하여 우리 대법원이 재해와 업무 관련성을 판단하는 확립된 기준은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살의 업무 관련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망인이 우울증을 앓게 된 데에 망인의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그에 겹쳐서 우울증이 유발 또는 악화되었다면 업무와 우울증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함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여 근로자의 우울증과 자살로 인한 사망이 인관관계가 있음을 인정하여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바 있다.

즉 대법원은 근로자가 업무로 인해 우울증에 걸렸는지, 그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당해 근로자의 성격·개인적인 취약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 또는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 재해' 불승인 처분을 받게 되면, 심사청구·재심사청구 등의 행정 절차상의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기각이 되면 결국 법원을 통한 소송을 제기 할 수밖에 없는데, 대법원이 확립한 재해와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명확한 법리가 있음에도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노동부는 이에 따른 판단을 하지 않음으로써, 피재 근로자와 유족들이 법원을 통한 소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아 긴 시간 정신적·물질적 고통이라는 2차적 피해에 시달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산재보험법 제1조는 이 법은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는 등으로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그 입법 취지를 명시하고 있다. 입법 취지를 다시 한번 떠올릴 때다.
덧붙이는 글 이후록 시민기자는 공인노무사 입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업무상 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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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노무사로서 '노무법인해결'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노무자문, 급여관리, 근로자들의 부당해고, 체당금 사건 등을 수행하면서 널리 알리면 좋을 유용한 정보를 기사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blog.naver.com/lhr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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