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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인이 순교한 교회도...개신교 최대 순교지 영광

교회도, 마을도 불에 타... 신안엔 '섬교회 어머니' 문준경 전도사 있어

등록 2017.03.20 16:34수정 2017.03.2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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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염산교회의 77인 순교 기념비. 한국전쟁 때 전 교인의 4분의 3인 77명이 순교, 한국 개신교의 최대 순교지로 남아있다. ⓒ 이돈삼


남도에는 개신교 순교지가 부지기수다. 여수와 순천, 영광과 신안·목포·영암이 중심이다. 여수는 두 아들을 죽인 원수까지도 사랑한 손양원 목사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영광군 염산면은 한국 개신교의 최대 순교지로 꼽힌다.

영광군 염산면에 있는 염산교회는 1939년 설립됐다. 한국전쟁 때 77명, 전 교인의 4분의 3이 순교했다. 한국 개신교의 최대 순교지로 남아있다. 죽창에 찔려서, 교회 옆 설도 수문에 무거운 돌멩이를 매단 채 바다에 빠뜨려져 죽었다. 교인들은 죽는 순간까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다.

염산교회에는 예배당 앞에 순교공원이 조성돼 있다. 순교 기념비가 있고, 순교자 합장묘가 있다. 설도항 수문 앞에 순교탑도 있다. 순교자료 전시관, 순교체험관, 시비 '우리는 천국 간다'도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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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염산교회의 77인 순교기념비와 순교자 합장묘. 염산교회는 한국 개신교의 최대 순교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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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설도항 수문 앞에 세워진 기독교인 순교탑. 탑 뒤로 염산교회 예배당이 보인다. ⓒ 이돈삼


교인 전체가 순교한 교회도 영광에 있다. 염산면 야월리에 있는 야월교회다. 1950년 가을 전 교인 65명이 순교하는 참상이 벌어졌던 곳이다. 염산교회에서처럼 돌멩이를 함께 매달아 설도 앞바다에 던져졌다. 산 채로 땅속 구덩이에 묻히기도 했다.

텅 빈 교회와 성도들의 집도 불에 탔다. 한 동안 교회도, 교인도 없는 마을이 됐다. 옆 마을 염산교회 청년들이 들어와 복음의 씨앗을 다시 뿌렸다.

야월교회에 순교기념관이 있다. 2009년 문을 열었다. 한국선교와 호남의 기독교 역사, 일제의 탄압과 한국교회, 한국전쟁과 야월교회에 대한 자료들을 볼 수 있다. 한국전쟁 전후의 성경책 등 기독교 고서를 모아놓은 자료실도 있다. 전시물이 알차다.

추모관에서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순교자들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기념관의 상징조형물인 '맞잡은 손'도 애틋하다. 십자가 조각공원도 잘 꾸며져 있다. 1990년에 세워진 순교기념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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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염산 야월교회의 순교 기념공원과 기념관. 야월교회는 1950년 가을 전 교인 65명이 순교하는 참상이 벌어졌던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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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야월교회 심재태 목사가 순교기념관에서 야월교회 교인들의 순교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야월교회에서는 전 교인 65명이 순교했다. ⓒ 이돈삼


신안에는 '고무신 선교'로 알려진 문준경 전도사가 있다. 한 해에 아홉 켤레의 고무신이 닳을 정도로 선교를 했다. 문 전도사는 100여 곳의 교회를 개척하고, 240명을 교회 지도자의 길로 인도했다. '섬 교회의 어머니'로 불린다.

문 전도사가 1932년 처음 개척한 교회가 임자도 진리교회다. 임자도는 이혼한 남편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예수를 만나기 전, 자신이 가장 미워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사역자의 길을 가려면 그를 용서해야 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품으로 인도하고 싶었다. 임자도를 첫 개척지로 선택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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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증도 증동리교회 전경. '고무신 선교'로 알려진 문준경 전도사가 1933년 개척한 교회다. 교회에 문준경 전도사 순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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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증도에 들어선 문준경 전도사 순교 기념관. 문준경 전도사는 한 해에 아홉 결레의 고무신이 닳을 정도로 열심히 선교해 ‘고무신 선교’로 알려져 있다. ⓒ 이돈삼


증도의 교회는 모두 문 전도사가 개척했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교회가 1933년 개척한 증동리교회다. 문준경 전도사 순교 기념비가 여기에 세워져 있다. 증도면사무소 옆에 있다. 교회에서 가까운 데에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도 들어섰다.

증도엔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외에도 가볼만한 데가 많다. 해변과 어우러진 갯벌 위를 걸을 수 있는 짱뚱어다리와 우전해변이 있다. 태평염전과 소금박물관, 소금전망대도 있다. 증동리교회 뒷산에서 내려다보이는 한반도 지형을 닮은 우전해변 풍경도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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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증도 소금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태평염전. 드넓은 염전은 바닷물이 햇볕과 바람을 만나 천일염으로 만들어지는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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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증도를 찾은 여행객들이 한반도 지형을 닮은 우전해변을 내려다보고 있다. 증동리교회 뒷산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 이돈삼


목포에는 '거지대장' 윤치호 전도사와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여사의 위대한 여정이 배어있는 공생원이 있다. 윤치호는 가난 때문에 정규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 14살 때 소년가장이 됐다. 미국인 선교사 덕에 피어선성경학교를 졸업하고 목포 양동교회 전도사가 됐다.

당시 목포에는 걸인과 고아가 넘쳐났다. 윤치호는 이들을 데려다 키우면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 공생원을 세웠다. 1928년, 당시 그의 나이 19살이었다. 윤치호는 1938년 선교사들이 세운 목포정명여학교 음악교사였던 일본인 다우치 치즈코(윤학자)와 결혼을 했다.

윤학자는 일본인에 가해지던 편견을 참으며 남편을 도왔다. 한국전쟁 때도 고아들을 두고 도망갈 수 없다며 공생원을 지켰다. 윤치호가 행방불명된 뒤에도 공생원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1968년 5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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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공생원에 세워진 윤치호 전도사와 윤학자 여사 흉상. 공생원은 윤치호 전도사가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면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란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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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공생원에 있는 윤치호 전도사와 윤학자 여사 기념관. 윤치호와 윤학자의 삶과 생애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 이돈삼


목포에서 눈여겨볼 개신교 성지가 또 있다. 양동교회다. 1898년 세워진 옛 목포교회다. 미국인 선교사가 신앙의 씨앗을 뿌리고, 한국인 목사와 신도들이 키운 호남지역 최초의 자립교회다. 일제강점기 3·1만세운동으로 많은 신도들이 구속됐다. 1942년 부임한 박연세 목사는 반일운동을 이끌다가 형무소에서 순교했다.

윤학자 여사가 근무했던 정명여학교(현 정명여중)는 1903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에서 세웠다. 옛 목포교회 주일학교에서 출발한 전남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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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정명여중에 세워진 독립기념비. 일제강점기 정명여학교는 목포 만세운동의 진원지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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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정명여중에 남아있는 옛 선교사 사택. 현재 100주년 기념관과 음악홀로 쓰이고 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 이돈삼


정명여학교는 목포 만세운동의 진원지였다. 일제의 신사참배 압박에 맞서 자진 폐교했다가 광복 이후 다시 문을 열기도 했다. 학교 입구에 독립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연유다. 당시 선교사 사택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영암의 개신교 순교자도 많았다. 한국전쟁 당시 순교자가 영광 다음으로 많은 지역이다. 24명이 순교한 영암읍교회를 비롯 학산면 상월교회 35명, 군서면 구림교회 18명 등 모두 87명에 이른다. 왕인박사유적지 맞은편에 영암 기독교인 합장묘와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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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군 학산면 상월교회의 순교자 기념비. 영암은 한국전쟁 당시 순교자가 영광 다음으로 많은 지역이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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