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시민은 당신들을 끝까지 지켜볼 겁니다

[대선기획-100인의 편지 ⑥] 어느 역사학도의 소망

등록 2017.03.21 10:58수정 2017.03.2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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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내가 꿈꾸는 국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권에 하고 싶은 말, 바라는 바에 대해 적어 기사로 보내주세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넘어 '이게 나라다'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3월 10일, 마침내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박근혜 탄핵안이 인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박근혜 파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잠시 시간을 2016년 12월 9일 오후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이날은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안이 통과된 날이었습니다. 당시 탄핵안 통과가 선포된 순간, 방청석에 앉아 있던 세월호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렸고, TV 화면을 통해 전해진 그 장면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이 함께 눈시울을 붉히거나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 흘렸던 '눈물'에서 박근혜 파면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집권 기간 동안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 평범한 시민들, 사회적 약자들을 '삶과 죽음의 경계'로 몰아넣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이명박의 이른바 '밥줄공안'부터 시작해 용산, 밀양, 강정, 쌍용차, 노무현 전 대통령,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그리고 각종 간첩조작사건 및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과 같은 시국사건, 재벌 위주의 경제 정책, 블랙리스트 등으로 인해 신체적 생명, 정치적 생명, 생계 수단을 상실한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빈발했습니다.

남은 우리는 어쩌면 모두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만일 우리 역시 2014년 4월 16일 당시 세월호에 탑승했더라면, 그리고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적극 참여했었더라면 무사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든,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든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는 불시에 '나의 문제'로 닥칠 수 있는 사안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지배·억압방식과 무능, 사익추구는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요소였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촛불 항쟁과 박근혜 파면의 의미는, 지난 10년간 '떠나간 이'들의 넋을 달래주고, 우리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촛불을 들고 '살아남은 자로서 해야 할 도리'를 나름 해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요. 국회 탄핵안 통과 당시 세월호 유가족들이 흘린 눈물 역시 같은 맥락이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진짜 싸움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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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산 자로서의 몫'을 다해내려면, 아직 갈 길이 멀고도 험난하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입니다. 3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광주학살의 진상이 다 밝혀지지 않은 것처럼, '우리 시대의 광주'인 '세월호 참사' 역시 진상규명의 시작조차 제대로 못 한 상황이 아닙니까. 탄핵 인용과 정권 교체는 첫걸음일 뿐, 진짜 싸움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부정, 부패, 비리, 독재가 워낙 광범위하고 교묘한 탓에 어느 것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내란을 선동하는 안하무인격의 친박집회와 박근혜 변호인단의 모습은, 그들의 심성과 타락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지만, 오히려 앞으로가 더 험난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단적으로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전 의원의 경우 내란음모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징역 9년 형을 선고(내란 선동·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만 유죄 판결 - 편집자 말)받았고 통합진보당이 해산됐지만, 아직 저들은 '내란선동죄'의 적용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이라고는 아예 모르는 자들이 살기 위해, 부활하기 위해 막장 수준의 수단과 방법까지 동원할 것인 이상, 낙관은 금물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은 우선 '인적 청산'과 '제도 개혁'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각각의 개혁과제를 개별적으로 수행하기보다 정부수립 직후의 '반민특위'처럼 특수 기구를 설치하고, '사건'별로 접근하는 방법이 훨씬 긴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예컨대 검찰개혁이라는 개별 과제에만 집중하다 보면, 제도개혁은 어느 정도 달성될지 몰라도 기존의 정치검사들은 그대로 남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구마 줄기 따라 고구마가 나오듯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세월호 참사',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비리' 등 특정 사건들에 대한 진상규명 과정을 통한 관련자 처벌 및 제도개혁이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컨대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경우 세월호의 침몰 원인, 구조가 늦어진 원인 사건 자체에 대한 진상 규명과 함께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방해·차단·왜곡했거나, 유가족을 공격했거나, 여론조작에 가담한 정치인, 언론인, 공무원, 지식인, 종교인들이 있다면 조사하고 죄질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1960년 4월혁명 직후의 '혁명 입법' 과정을 참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시 장면 민주당 정부는 3·15부정선거 관련자와 부정축재를 일삼은 재벌을 처벌하기 위해 국회에서 헌법을 개정하고,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특별재판소 및 특별검찰부 조직법', '부정축재처리 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물론 이후 장면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경찰 숙청을 제외한 이승만·자유당 정권 및 재벌 단죄는 미흡한 수준에 그쳤지만, 이때의 법안 마련과 실패의 경험은 차기 정부에 자극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기 정부는 오로지 '개혁'과 '변화'를 향한 촛불 시민들의 열망을 받아 안고, 그것을 제대로 실현하는 데 몰입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2의 장면 정권' 평가를 들을 것이 뻔합니다. 아울러 최근 운위되는 '개헌' 역시 '권력분점'이 아닌, 우선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부정한 재벌권력의 처벌·청산을 목표로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청산 작업을 통해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를 짓눌러 온 '냉전'과 '식민'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돌아보는 김수영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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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심판 선고 전야인 지난 9일 오후 서울 공화문 광장에서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헌재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1960년 5월, 그러니까 4월혁명이 일어나고 한 달 쯤 지났을 때 시인 김수영은 '육법전서(六法全書)와 혁명'이라는 시에서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혁명을 바라보는 자는 바보다/혁명이란/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 최소한도로/자유당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을/혁명정부가 구육법전서(舊六法全書)를 떠나서/합법적으로 불법을 해도 될까 말까한/혁명을 … 아아 새까맣게 손때묻은 육법전서가/표준이 되는 한/나의 손등에 장을 지져라"라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혁명은 방법부터 혁명적이어야 하며 기존의 질서와 관성, 경계를 넘어서는 데서 시작됩니다. 촛불의 힘으로 박근혜를 파면한 것은 엄연하지만, 한편으로는 헌법재판소라고 하는 법 또는 제도의 손을 빌렸다는 점에서 아직 우리는 김수영이 말한 '방법적 혁명'의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승만의 하야가 4월 혁명의 완성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박근혜 파면이 촛불 혁명의 완수에 이르려면 기성의 질서와 패러다임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 촛불 시민들은 끝까지 주시할 것입니다. 단순히 일회성으로 나선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로서의 몫과 도리를 다하기 위해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번만큼은 촛불 시민들의 열망과 소망이 배반당하는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박근혜 파면 #세월호 #촛불 #김수영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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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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