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전 유배로 더 유명해진 섬

[섬 따라 바람 따라] 흑산도, '섬, 보랏빛 설렘'을 찾아가는 필부의 사색여로

등록 2017.03.20 15:49수정 2017.03.2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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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라산 전경 상라산에서 본 열두구비길 ⓒ 나기옥


아침 8시 10분. 부우웅!! 짧은 기적소리를 울리며 목포항을 출발한 배는 흑산도를 향해 힘찬 항해를 시작한다. 시끄러운 엔진소리조차 고깝지 않다. 오히려 가슴에 작은 설렘을 몰고 온다. 언제고 섬을 찾아가는 발길이 설렘으로 시작하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나도 몰래 문득 유행가 가락이 흥얼거려진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 /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 바라보다 검게 타 버린 / 검게 타 버린 흑산도 아가씨 / 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 흘러온 나그넨가 귀양살인가 /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 그리다가 검게 타 버린 / 검게 타 버린 흑산도 아가씨


이미자씨가 불러 유명한 '흑산도 아가씨'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모두 아는 유명한 가요다. 이 노래를 들으면, 뭍을 그리는 마음이 얼마나 애절했으면 사람까지 검게 타버렸을까 궁금해진다.

아가씨의 길을 가로막는 건 무엇이었을까? 섬에서의 삶을 강요하는 제도와 섬을 떠날 수 없게 만드는 경제적 현실일까? 아니면 서울로 가버린 그리운 임에 대한 원망이며 찾아가도 맺어질 수 없다고 여기는 숙명일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사이 배는, 목포 서남방 92.7㎞ 떨어진 목적지에 한 시간 50분만에 도착했다. 검게 보여 흑산도라 이름이 붙었다는 유래와는 달리 섬은 전혀 검게 보이지 않았다.

이 섬은 일제 강점시절 대흑산도로도 불린 적이 있는데, 흑산도가 맞다. 곁가지 하나. 그럼 소흑산도는 당시 어디였을까? 바로 지금의 가거도다.

흑산도 아가씨가 그리 애절하게 그리워한 뭍이라면 섬 또한 외지고 주거환경이 열악하지 않을까 예상을 하지만 실제는 전혀 딴판이다. 섬 전체가 관광지고 더욱이 성수기에는 수천 명이 찾는 명소가 되다보니 예리항은 그야말로 사람과 관광상품이 넘쳐난다. 여관과 민박, 거기에 펜션까지 잘 곳도 넉넉하다.


흑산도는 유명한 홍도를 가는 배들이 기항을 하기 때문에 목포에서 오전에 뜨는 배를 타고 와서 택시나 버스를 이용해 섬을 한바퀴 돌아보고 오후에 홍도로 떠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정상에서 보는 전망 탁월, 걸어서 돌려면 시간 넉넉하게 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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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라고개 전망 상라고개 전망 ⓒ 나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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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형제 바위 7형제 바위 ⓒ 나기옥


흑산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고 면적이 17.75㎢에 이를 정도로 넓다. 더욱이 섬의 최고봉 깃대봉은 높이가 378m에 이르고 동쪽과 남쪽과 북쪽에 각각 칠락산(250m) 선유봉(300m)과 상라산(227m)을 거느리고 있어 섬 전체가 제법 웅장한 맛이 느껴진다.

이 산들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등산길도 제법 잘 나 있다. 봉우리에 오르면 장쾌한 전망과 쪽빛 바다에 동동 떠있는 섬들의 모습이 탁월하다. 이 섬이 홍도·대둔도·영산도·다물도 등의 흑산군도 주도(主島)라는 걸 감안하면 거기에서의 전망이 어렴풋이 그려지리라 믿는다.

정상에 서서 거칠 것 없는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인식의 지평도 넓어지고 삶도 성찰하는 기회도 된다. 거기서 보이는 모두, 아니 보이지 않는 것까지 모두가 함께임을 깨달음은 덤의 행복이다.

산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흑산도는 볼 게 많다. 섬 일주 도로를 이용해 걸어서 섬을 둘러보는 게 제일 좋지만, 시간 여건상 그러려면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야 한다. 걸어서 둘러보기가 만만하지 않아 대부분의 방문객은 섬을 일주하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택시를 타고 현지를 한 바퀴 돈다.

버스든 택시든 기사가 섬의 유래와 유명 명소를 안내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버스는 정해진 곳만 정차를 하기 때문에 섬을 좀더 자유롭게 보길 원하는 사람에게는 택시보다 훨씬 불편하다.

택시는 6만원을 부르는데(2016년 3월 기준) 흥정에 따라 다소 변동이 가능하다. 행여 배를 타고 들어가는 낯선 여행객과 인연이 잘 닿을 경우 4인 1조를 구성해 택시 한 대를 빌리면 1인당 부담액이 작아지는 장점도 있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 2시간 정도 잡으면 넉넉하다. 물론 택시를 탈 때 기사 대기 시간이야 제한이 없다지만, 기사 입장에서는 늦을수록 짜증나는 일일 테니 무한정 붙잡아두고 명소에서 해찰을 부리는 간 큰 여행객은 없으리라.

신들의 정원이라 불린 당집, 고등종교와 과학에 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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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바위 흑산도 지도바위 ⓒ 나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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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작업 흑산도 멸치작업 ⓒ 나기옥


택시를 타고 섬의 일주도로를 따라 가면 우선 우선 진리의 지석묘에 닿는다. 고인돌이라는 이름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지석묘는, 지상에 판석으로 묘실을 만든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북방식과, 지하에 묘실을 만든 뒤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남방식으로 구분한다.

그게 북방식이든 남방식이든 죽음을 대하는 우리 조상들의 의식과 자세를 보는 한 방편이다. 우리 시대에서도 생물학적 죽음을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토속신앙의 삶의 바탕이 되었을 당시에도 죽음은 영원한 삶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고 믿었으리라.

그러지 않고서야 그리 힘들게 그런 무덤을 만들었을 리가 없다. 이웃한 곳에는 연리지(連理枝)가 있다. 두 뿌리의 나무가 허공에서 한 가지로 이어지는 현실이, 지극한 남녀 사랑의 관계를 상징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어찌 그런 현상이 생기는지 참 궁금하다.

이어서 '신들의 정원'이라 이름붙은 당집 주변을 들리게 된다. 여기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진리당과 용왕당이 있는데, 이제 그 당집은 흔히 말하는 고등종교와 과학의 힘에 밀려 관광객의 발길만 머무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함께 동제(洞祭)를 지내며 끈끈한 유대를 강화하던 풍습이 사라짐은 아쉬움이다. 거기에서 가까운 무심사지는 옛 절터인데 말없이 서서 옛 사연을 마음으로 전하는 나무들과 탑의 모습이 왠지 애잔하다.

그런 뒤에 구불구불한 아스팔트길을 오르면 흑산도에서 유명한 상리 고개에 닿는다. 방금 올라온 열두 구비의 길과 포구와 마을, 그리고 푸른 바다가 조화를 이루어 탁월한 전망을 선사한다. 이웃한 상라산 정상을 오르는 길에 보는 모습이 더 좋다. 이 고개에는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큼직하게 서 있고, 일 년 365일 계속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이 고개를 내려 가, 작은 섬 바위에 한반도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지도바위를 보고 나면 바로 하늘도로를 만난다. 하늘도로는 해안 절벽 수직 바위에 'H'빔을 가로로 박은 뒤 그 위에 다리를 만들어 길을 낸, 이른바 켄틸레버 공법으로 시공했다.

25.4㎞의 일주도로 공사 구간 중 가장 난 코스였다. 이 탓에 일주도로가 1984년 임도 형태로 시작하여 27년만에 완공되는, 그야말로 구간 대비 가장 오랜 작업도로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이 벽에는 높이 3.8미터, 길이 480미터의 거대한 벽화도 그려져 있다.

정약전이 유배된 곳, 섬으로 향하던 이들의 마음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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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문화공원 유배문화공원 ⓒ 나기옥


이어서 닿는 유배문화공원. 지금이야 여기에 체험장, 자산어보원, 물고기 솟대, 역대 유배인물 등을 비롯한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 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유배를 당해 흑산도를 향하는 대상자의 마음은 얼마나 애절했을까 상상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이 흑산도 유배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게 바로 정약전(丁若銓:1760∼1816)의 자산어보(玆山魚譜)다. 이 책은, 1801년(순조 1) 신유사옥(辛酉邪獄)으로 유배생활을 하던 중 흑산도 근해의 수산생물을 실지로 조사하고 채집한 기록으로 수산동식물 155종에 대한 각 종류의 명칭·분포·형태·습성 및 이용 등에 관한 사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첫째로 청어(靑魚)와 고등어의 회유(回游)와 분포에 관한 기록이다. 현재 동해와 서해에 회유하는 청어와 고등어의 실태를 그 당시와 비교하는 데 유일한 자료이다.

둘째로 각종 수산동식물의 방언(方言)을 조사하여 기록한 것이며, 셋째는 의약상(醫藥上)의 성능(性能)을 기록하여 이 분야의 연구에 많은 참고가 되고 있다는 점인데, 원본은 사라지고 사본만 있다는 게 너무도 아쉽다.(네이버 제공 '두산백과' 참조)

참으로 본받을 만한 사람들은 그 낙심천만의 아득히 먼 유배지에서조차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음은 우리가 가슴에 새길 일이다.

일주도로를 따르는 택시는 7형제바위, 최익현 선생의 친필이 새겨진 손바닥 바위와 최익현유허지비, 구멍바위 등을 보고 마무리하게 된다.

하지만 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택시를 이용해 주마간산격으로 섬을 한 바퀴 돌면 뭔가 허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석 달 열흘 기다린 정인(情人)과 손 한 번 잡지 못하고 헤어진 느낌이 바로 그러리라. 그런 사람이라면 아예 걸어서 돌아보며 섬을 가슴으로 대할 일이다.

참고로 진리에는, 반월성(半月城)이 있는데, 길이 2300m, 높이 0.5∼2m로, 신라시대 장보고가 왜구들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쌓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그 유명한 홍어요리를 다양한 모습으로 맛볼 수 있음도 장점이다.

지역 주민들은 섬과 육지를 잇는 경비행장 건설이 곧 착수되면 관광객이 더 많아질 거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하였지만, 그로 인해 섬이 얼마나 더 아픔을 겪어야 할까 먼저 생각하게 되는 내게는 비수처럼 아픈 소리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글과 사진은 네이버의 '맑은 강산의 사진일기'블로그에 게재 되었습니다.
#흑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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