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

대마도의 놀라운 화장실, 또 한 번 감탄하다

백제유민들이 쌓은 가네다성 유적지를 둘러보다

등록 2017.03.21 12:20수정 2017.03.2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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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우선은 D호텔로 가서 오전 이즈하라항구에서 셔틀카에 맡겨둔 짐을 챙겼다. 숙소가 있는 북섬의 사스나항까지 다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텔의 넓은 마당에 앉아서 커피를 한잔씩 한 다음, 사진도 찍고 바다도 보고 잠시 산책을 했다. 쉬었으니 이제 출발이다.

호텔에서 차 한잔일본 쓰시마 ⓒ 김수종


오후 가이드를 자청한 사스나의 작은 펜션 주인인 최용오 사장은, "개인적으로 쓰시마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유적지인 백제산성"이라며 남섬 북부에 위치한 '가네다성(金田城)유적'을 보러 가자고 했다.

이곳은 조야마(城山)라고 불리는 276M 정도의 야산에 아소만의 일부인 '마구와지마(馬耙島)해상공원'의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무척 전망이 좋은 백제산성이다. 백제부흥군과 일본군이 나당연합군과 마지막으로 벌인 '백강 전투(白江 戰鬪, 白村江の戦い)'는 663년 8월에 백강(금강)하구 및 그 부근에서 벌어진 싸움이었다. 이 전투에서 나당연합군은 승리했다.

일본 쓰시마가네다성유적, 백제의 성이다 ⓒ 김수종


이 전투 이후 중국대륙에는 당나라가 맹주가 되어 동아시아의 세력 판도가 새롭게 바뀌었고, 일본의 경우는 영토는 빼앗기지 않았지만 국방 및 정치제제의 변혁이 일어났으며, 백제부흥군의 활동은 끝이 났다.

일본 쓰시마가네다성 유적 ⓒ 김수종


가네다성은 백제부흥군들이 이곳 쓰시마로 피난을 와서 쌓은 산성으로, 667년 백제인들이 쌓았다고 하여 백제산성이라고도 불리는 방어용 성이다. 성터는 지난 1982년 일본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당시 백제의 유민들이 대거 몰려온 쓰시마는 나당연합군에 맞서는 군사거점으로 최전선에 있는 섬이 되었다. 조야마(城山)의 북쪽과 서쪽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접근이 힘든 지형이고,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남동쪽은 3개의 성문이 있었다. 그 중에 제2성문과 제3성문은 아직도 일부 흔적이 남아 있다.

일본 쓰시마가네다성 ⓒ 김수종


당시 백제의 유민들은 산꼭대기에 돌로 석루를 만들었고, 산 둘레를 따라 감싸듯이 성벽을 쌓았다. 남동쪽 기슭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면으로, 성벽에는 수문과 성문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성의 중앙부에는 많은 건물터가 발굴되었으며, 병사들의 숙영지 등 중추기능을 하는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000년 넘도록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성이었던 이곳은 에도시대에, 쓰시마의 성인으로 칭송받는 '스야마 도츠안(陶山訥庵, 1657년~1732년, 유학자, 의사, 중농학자)'선생이 본격적인 조사와 연구를 시작하여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러일전쟁 당시에는 산기슭을 개발하여 군사용 도로가 만들어졌고, 태평양전쟁 때 사용되었던 일본군 포대 터가 남아 있기도 하다. 현재는 일부를 등산로로 개방하여 이용하고 있다.

재미난 것은 이곳 성벽에 사용된 석재는 주로 석영반암과 사암 두 종류이다. 대부분은 석영반암을 사용하여 가공하지 않고 크게 부수어 쌓아 올렸다. 사암은 주로 빈 공간을 채우는 역할을 했으며, 성벽 상부에 올려 가로의 결을 맞추는데 사용했다. 사실 쓰시마에 많지 않은 석영반암을 쌓아 올린 것이 특이한 점이다.

석벽은 대부분 붕괴되어 이제는 거의 원형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직 2.6KM정도가 남아서 흔적을 유지하고 있으며, 높이는 6M가 넘은 곳도 있어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들은 입구에 차를 주차하고는 천천히 등산로를 겸한 임도를 따라 올랐다. 좌우에 삼나무와 동백나무 등이 무척 좋은 곳이다.

산 중턱에 오르니, 바로 성의 흔적이 보인다. 정말 보기에 좋은 성의 모습이지만, 사실은 조망이 더 좋다. 방어용 성이라서 그런가 보다. 바다의 풍광이 마치 잔잔한 호수를 보는 듯하다.

이런 곳에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대비하여 숙영을 하던 백제부흥군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성벽을 따라 바다를 보면서 크게 20분 정도를 걸어본다. 중간 중간에 성문의 흔적도 보이고, 건물터나 망루 터로 추정되는 곳도 보인다.

지금은 아무도 없고, 그저 옛 성터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니 별별 상상이 다 든다. 생각보다 높고 험한 구간도 있고, 그저 평탄한 구간도 있다. 위로 조금 더 올라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깊은 숲 속이라 어둑어둑하고 음침하여 하산한다.

일본 쓰시마가네다성 입구의 등산로 지팡이, 안종천 지리학 박사와 양인수 공학박사가 재미나다고 인증사진을 한장 부탁했다 ⓒ 김수종


다시 천천히 걸어서 주차장에 돌아오니,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던 나무지팡이 함이 있다. 그냥 한번 쓰고 버리고 마는 나무지팡이를 이곳에 모아두고, 나중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잘 모아두고 정리해 두라는 글귀도 보인다. 일본인들의 작은 배려를 다시 배우는 것 같다. 기념으로 함 사진도 한 장 찍고, 사람들의 얼굴도 한 장씩 담는다. 아무튼 1350년 전 백제인의 기억을 다시 회상하면서 걸었던 행복한 산책이었다. 

이제 슈퍼로 가서 오늘 저녁으로 먹고 마실 요깃거리와 술과 음료를 조금씩 샀다. 도시락과 횟감, 문어를 샀고, 술은 쓰시마에서 유일하게 생산되는 청주인 '시라다케(白嶽)'를 큰 병으로 한 병 구매했다.

일본 쓰시마백악이라는 이름의 청주 ⓒ 김수종


어두운 밤길을 한 시간 가량 달려 숙소가 있는 사스나로 갔다. 점심 초밥을 너무 많이들 먹어서 저녁은 간단하게 술과 안주를 겸한 약간의 요리로 하기로 했다. 나는 삶은 문어와 함께 청주를 한잔 했다.

일본 쓰시마저녁은 술안주로 도시락과 주로 ⓒ 김수종


술을 살 때는 무심결에 쓰시마에서 유일한 청주인데다 지난번에 2번 마신 경험이 있어서 사 왔는데, 유심히 상표를 보니 시라다케(白嶽)를 우리말로 읽으면 백악이다. 대통령 탄핵인용이 된 날, 우리들은 청와대 이야기를 하면서 청와대의 뒷산이며 한양도성의 주산인 백악산(白岳山)과 발음이 같은 술을 탄핵주로 마시게 된 것이다. 참 특별한 인연이다.

늦은 시간까지 술과 안주로 배를 채우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영화평론가인 강익모 선생은 "많은 사람들이 별로 볼 것이 없다고 말하는 쓰시마를 재발견하는 여행이 될 것 같다"라고 오후의 지나간 일정만 두고도 놀라워했다. 그리고 커피도 한 잔하면서 차에 대한 이야기며, 연극, 영화와 일본의 기독교, 사진, 그림, 공학, 지리학 이야기 등 각자의 전공과 관련된 담화로 밤은 깊어갔다.

11일(토) 아침이 밝았다. 부지런한 몇몇 사람들은 벌써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왔다. 나는 늦잠을 자고는 8시에 겨우 일어났다. 급히 세수를 하고는 아침식사를 위해 1층 식당으로 갔다. 역시 아침은 간단한 일본식이다. 오늘은 우리 일행과 주인장 및 손님이 있을 때만 방문하여 아침 식사를 준비해주시는 와다나베(渡辺)아주머님까지 9명이 식사를 했다.

일본 쓰시마간단한 아침 식사 ⓒ 김수종


나는 언제나처럼 밥에 낫토를 조금 올려 비비고는 된장국을 마시면서 식사를 했다. 잠시 한국 소식이라도 알 겸 TV를 틀었더니, 역시나 일본도 빠르다. 어제 탄핵을 당한 사람인데, 바로 "박씨(パク氏)"라고 칭하며, "실각되었고 이후 체포나 구속의 가능성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일본 쓰시마박씨의 탄핵을 알리는 일본 뉴스 ⓒ 김수종


식사 도중에 와다나베 씨에게 "박씨와 동갑인데,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고 농담을 했더니, "저 사람은 성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젊어 보인다. 일본인들 전부가 안다"고 웃으며 말을 하신다. 아무튼 재미난 세상이다.

식사를 마친 일행들이 잠시 쉬는 사이 고 선배와 나는 오늘과 내일 쓸 자동차를 두 대 빌려왔다. 이제 서서히 차를 몰아서 히타카츠항구 방향으로 가다가 좌측에 있는 '가와치(河內)' 옆 산인 '유이시야마(結石山)삼림공원'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지금은 그냥 바다가 보이는 평범한 공원이고, 입구에 조생종 벚꽃이 있어 산책과 운동을 위해 찾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 쓰시마조생종 벚꽃이 피다 ⓒ 김수종


그러나 사실 이곳의 정상부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직접 올라 조선 침략을 위한 관측용 산성인 '유이시야마(結石山)성'을 쌓은 곳이다. 우리식으로 보자면 서울 한강변에 있는 아차산 보루(堡壘)와 비슷한 작은 규모의 산성이다.

일본 쓰시마풍신수길이 직접 와서 산성 쌓기를 지시했다고 한다 ⓒ 김수종


그리고 만의 건너편 우츠가타야마(擊方山)에는 공격용의 진지를 쌓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그 곳에는 해상자위대가 주둔하고 있다. 바로 두 산의 가운데 있는 '오우라(大浦)'에서는 임진왜란 때 선발 대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전함 700척이 집결하여 대기했던 곳이다.

일본 쓰시마반대편 해상자위대 막사가 보인다 ⓒ 김수종


이제 이해가 된다. 오우라의 전함들을 보호하고 지휘 통제하기 위해서 좌우측 산에 산성을 쌓고는 관측하고 지시도 했을 것이다. 이런 곳에 올라보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은 산 중턱의 주차장에 올라 소화(昭和) 61년 지역의 단체에서 대한해협을 건넜다는 표지석도 보고, 작은 화장실도 있다. 그리고는 정상에 올라 산성의 흔적을 본다. 주변에 나무가 상당히 많아서 이제는 아래가 잘 보이지 않지만, 예전에는 이곳에서 멀리 조선을 지켜보면서 작전을 세웠을 것으로 보인다. 정말 무서운 곳에 올랐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쓰시마임진왜란 당시의 공격용 산성 ⓒ 김수종


건너편 산 정상에 있는 해상자위대 막사들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이제 다시 천천히 내려와서 주차장의 화장실을 보다가 공학박사인 양인수 이사가 이곳 시설물의 정밀함에 놀라서 한마디 했다. 

나무로 된 화장실 건물은 우선 하단에는 30CM 정도의 콘크리트와 철판을 지붕모양으로 설치하여 물이 뛰어 오르는 것도 방지했고 나무의 부패도 막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설치한 나무들은 방부목이다. 비가 와도 일단은 안심이다. 그리고 상단의 나무들은 일반목이다. 지붕이 있어서 비가 와도 걱정이 없다. 이렇게 3단 구조에 지붕은 철판으로 되어 있다.

외부의 나무를 고정하는 못은 철 못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습기가 많은 화장실 내부는 청동 못으로 전부 박았다. 건물의 설계 시 기본대로 충실하게 이 시골의 공원 산언덕에 있는 작은 화장실에도 내실 있게 원칙을 적용하여 시공하고 감리한 것이다. 양 박사의 설명을 듣고 보니 너무 놀라웠다. 이래서 일본은 나에게 배울 것이 많은 곳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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