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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한솔제지 이름 지은 배우리씨 "이제는 우리 땅 이름"

한글이름펴기 40여년 "땅이름 찾기 너무 재밌어"

등록 2017.03.23 14:24수정 2017.03.2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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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리선생님 연구실 내부 모습. 가운데 우리땅이름학회에서 받은 표창장이 있다. ⓒ 설혜영


금난새, 강나루, 권시내, 진달래.

서울대 '고운 이름 자랑하기' 대회에서 뽑힌 이름이다. 워낙 한자 이름이 익숙해 순수 한글 이름은 호적에 오를 수 없는 걸로 오해하고 있을 정도로 한글 이름에 대해 무지했던 시절, 호적에 올라 있는 아름다운 한글이름을 뽑아서 한글 이름 펴기 운동을 진행했다.

군사정권에 의해 중단되었던 1980년~81년을 제외하고 86년까지 17차례 개최되었던 행사였다. 이 운동이 시작이 되어 가게이름, 단체이름, 회사이름에도 한글이름 짓기가 유행이 되었다.

배우리 선생님이 바로 이 한글이름펴기 모임 회장을 맡아 한글 이름 보급 운동을 펼쳤던 분이다. 은행 이름 중 가장 처음으로 한글 이름을 지었던 하나은행과 한솔제지를 이분이 지으셨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한글이름쓰기운동에서 시작된 이름에 대한 관심은 우리땅 이름 분야로 넓어졌고 한국땅이름학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하신 선생님은 땅이름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이다. 아직 생소한 분야를 40년간 연구해오신 선생님을 만나 인생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배우리 선생님 인터뷰 모습 ⓒ 설혜영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용산구청에서 삼호정 복원사업을 시작했던 2011년, '한강변 삼호정 일대 옛모습 조명' 학술 세미나에서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시인들이 활동했던 무대가 바로 삼호정이었다는 말씀부터 그 주변 빼어난 경치가 조선시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얘기는 흥미로웠다. 선생님은 달변가다. 말씀을 많이 해 본 관록이 느껴졌다.

- 그 때 추진되었던 삼호정 복원 사업은 잘 마무리 되었나요?
"지역구 의원들이 도와줘서 삼호정 복원사업을 추진했다. 원래 있었던 용산성당 안에 복원을 추진하다가 중단되었었다. 정 안되면 쌈지공원에라도 했으면 했는데 주민들이 쉬는 것은 좋지만 고적을 만들어놓으면 제약을 받는다고 해서 결국 추진되지 못했다. 표석이라도 세워보자고 했는데 고증을 잘못해서 내가 지적을 했다. 호수 호를 좋을 호자로 바꿔써서 표석을 썼다. 옛날에 잘못 쓴 자료를 찾아다가 잘못해놓았다. 언젠가 고쳐야 할 일이다."

이것만이 아닌 것 같다. 혼동을 주는 지명들이 꽤 있다. 같은 것을 지칭하는데 다른 이름들이 있다. 인왕산에서부터 흘러와 한강으로 나간다는 만초천을 욱천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선생님께 여쭈어보았다.

1945년 7살때 원효로로 이사오신 선생님. 100년은 족히 되었다는 선생님의 집 모습. ⓒ 설혜영


- 지명 중에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 많이 있죠?
"욱천이라는 지명이 있어요. 욱천은 일인들이 지은 거예요. 일본식 지명이죠. 욱천복개공사 비석도 지금 남아 있어요. 광복 이후 몇 십 년 동안 계속 써온 거죠. 지금은 욱천교를 만초천교로 고쳤어요. 30년 전인가 일본식 지명을 어느 정도 정리할 때 욱천이 아니고 만초천으로 하기로 했어요.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관공서에서 쓰고 있는 거예요.

답답하기 짝이 없고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얘기 할 수도 없고. 일본말로 아사히가와. 욱이 빛날 욱자로 아사히고, 가와는 일본말로 개천, 내를 말한다. 일본에 욱천이라는 이름이 엄청나게 많아요.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에요. 자기네 나라에 익은 이름을 여기다 갖다 붙인 거예요.

만초천을 지워버리고 예전에는 덩쿨내라고도 불렀다. 인왕산쪽에서 내려오는 내인데 수량이 많지는 않다. 안산 인왕산 사이 계곡이 만초천의 시작이다. 영천을 지나온다. 그리고 와서 한국경제신문 염천교를 지나 약현시장앞을 지나서 청파로를 그냥 계속 달리는 거죠. 남산물, 숙대쪽 물 합쳐서 오는 거죠."

이름 전문가답게 선생님의 이름은 특이했다. 선생님을 만나면 가장 처음 여쭈어 보고 싶었던 것, 배우리라는 이름은 물려받은 것인지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 배우리라는 이름이 심상치 않네요. 선생님 본명인가요?
"방송 출연을 한 40년 했다. 처음에 활동할 때는 배상철이었는데 방송에 워낙 많이 나오다보니 사람들이 나를 많이 찾았다. 그런데 이름이 어려워서 자꾸 까먹었다. 그래서 가장 쉬운 이름으로 바꾸자 해서 개명을 했다.

에피소드가 많다. 그 때 판사가 김용준 판사였다. 가정법원이 덕수궁 뒤에 있었는데 내가 갔을 때 마침 접수창구에 와 있었다. 내가 낸 개명허가 신청서를 보더니 "선생님이 배우리 쇼?" 하더니 "난 배우리가 진짜 이름인 줄 알았어. 가짜 이름을 방송에 내보내고 있었구만. 바꾸고 말고. 이거 바꿔야지. 내가 가정법원 원장 판사요" 했다.

그 때 집사람 이름이 일본식 이름이었는데 집사람 이름을 보고 하는 말이 "아이구 이것도 바꿔야겠다. 오늘 들고 가서 내일 두 명이 같이 바꿔가지고 들고 와." 그때 집사람은 이솔마을로 개명을 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 이름을 바꾸게 된 거다. 82년도에 바꿨다.

연구실 탁자를 장식하고 있는 선생님의 방송 출연 사진들 ⓒ 설혜영


"나는 방송 체질인 것 같아. 방송 출연하고 싶은 마음에 이름을 파기 시작했지"

- 어떻게 땅이름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재밌으니까. 한글이름부터 시작을 했다고 했잖아요. 1980년 엠비씨에 <우리끼리 만나요>라는 프로가 있었다. 전영록, 왕영은이 진행했다. 그 프로에 단골로 나가게 됐다. 처음엔 한글날을 맞이해서 한글이름을 얘기하러 나갔다. 김상옥 피디라고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 한글날 얘기를 들어보니까 재밌거든. 하루 나간게 일주일을 계속 나가게 됐다.

한글 창조과정, 한글의 오묘함, 한글 가지고 이름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길 했다. 나중에 김상옥 피디가 이걸 고정 프로로 만들어야 되겠다고 하면서 이야기거리가 있냐고 물었다. 그 때 방송 나가고 싶은 마음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한글에서 이름이라는 주제로 바뀌었다. "이름의 고향"으로 코너 이름을 만들었다. 과일 이름의 유래, 옷이름, 장롱이름, 나비이름 얘기도 무한정 많더라고. 3개월을 했다. 그러니까 얘깃거리가 없어졌다.

얘깃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바깥으로 나가서 전국을 돌았다. 여기저기 돌다보니까 마을이름이 눈에 띄었다. 차돌박이 밤나무골. 얘깃거리가 되겠다 싶었다. 내 이름, 산 이름이 재미있었다. 그러고나니 자료가 필요했다. 그때 청계천 4, 5, 6가에 헌책방이 쭉 있었다. 엄청나게 옛날 책들이 많이 나왔다. 그 책 일부가 여기 있다. 그런 서점들이 쫙 있었다. 돈만 있으면 책을 다 사들이고 싶었는데. 자료를 모으려고 헌책방을 자주 다녔다.

그리고 자료를 무조건 팠다. 족보, 명단 이런 자료들을 유심히 보았다. 예를 들면 새문안신도 명단에서 이름 주소가 나왔는데 교인 중 부평에 살던 사람 주소가 밤나무골이었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러면 밤나무골 관련 자료들을 모두 모으고 이런 식이었다. 보물이 빠져나오는 것처럼 재밌었다. 쪽쪽 뽑아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료가 축적이 된 거다. 내 이름 골 이름, 마을 이름 주소를 분석하고 그 테두리 속에서 연구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임을 만들었다. 그 모임이 동지들과 함께 만든 땅이름 학회였다.

내고장부터 연구를 해야겠다고 해서 동네연구도 열심히 했다. 용산쪽은 많이 안다. 용산신문에서 계획하다가 말았는데 후암동, 원효로 동별로 하나 하나 해서 연재를 했었다. 재밌는 얘기가 많은데. 오히려 다른 데서는 했는데 우리 동네는 관심이 없다. 예수님과 똑같아. 예수님이 자기 고장에서 대접을 못 받았어."

하루 하루 가는 게 너무도 아깝다

-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서울시 교통연수원에서 20년을 강의했다. 딱 20년 강의하고 물러났다. 초기에는 인터넷이 없을 때니까 칠판강의를 했다. 인터넷 보편화되고 파워포인트가 활용됐다. 스크린 강의를 해달라고 했다. PPT도 할 줄 안다. 플래시도 한다. 용산구청장 상도 받았다. 구청에 가서 3개월을 공부해서 용산구정보화대회에서 으뜸상을 받았다.

나에게 필요한 건 PPT, 인터넷, 포토샵이다. 그러니까 많이 편해졌다. 자료 찾아서 '탁탁' 작성해서 보낸다. 나한테는 편한 세상이 됐다. 요즘은 하루 하루 늙는 게 너무 아깝다. 또 하루를 까먹었구나. 자고 나면 이 생각밖에 안난다. 나이가 많으니까 차츰 방송이 떨어지고, 나도 이제 폐물이 되는구나 생각한다. 옛날 사람들 그 많은 지식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아까웠을까? 나 같은 생각을 하며 죽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지."

연구실을 가득 배운 자료들 ⓒ 설혜영


연구실 자료들이 잘 정리 되어 있다 ⓒ 설혜영


- 선생님께서 평생 해오신 연구 자료들에 대한 정리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요?
"얼마 전 진주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급해서 왔다며 나를 만나고 갔다. 와서 하는 말이 "선생님이 돌아가시더라도 여기 있는 자료들은 전부 그대로 놔두십시오. 할 사람이 없으면 제가 챙기겠습니다"라고 했다. 시각 시대가 돼버렸으니 자서전 대신 옛날에 해왔던 일을 간단히 설명을 붙여서 사진첩을 만들겠다. 자서전보다 몇 배 좋으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더라.

방송하면서 원고지에 썼던 내용. 수기로 했던 것들 전부 챙겨놔달라고. 토박이말바라기 모임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 우리말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며칠전에 저녁 6시에 와서 잠깐 만나고 10시 차로 갔다. 조심스러워서 뭐라도 하나라도 버릴까봐 그걸 부탁하러 왔다고 했다. 그 문제를 상의하자고 다음에 또 방문하겠다고 했다."

배우리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올리신 글 ⓒ 설혜영


선생님 페이스북의 마지막 글은 인사동 이야기이다. 인사동의 토박이 땅이름은 절골, 댓절골, 탑동이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인사동으로 개명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글이다. 마지막 글에 선생님의 작은 바람이 담겨 있다.

"우리식의 내음을 풍기는 곳이니 이곳만큼이라도 우리식의 땅이름으로 불러 주면 안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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