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 위에다가 성을 짓고 사무실을?

[이란 역사문화기행 ⑨] 수사의 문화유적

등록 2017.03.23 11:59수정 2017.03.2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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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의 아크로폴리스

수사의 아크로폴리스 ⓒ 이상기


아케메네스시대 수사의 문화유적을 보기 위해서는 박물관에서 동쪽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 언덕 위는 남쪽의 아크로폴리스 지역과 북쪽의 궁전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아크로폴리스 지역은 상대적으로 높아 다시 올라가야 한다. 아크로폴리스는 수사의 높고 신성한 지역으로 조로아스터교 신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곳에는 현재 수사 성(The Castle of Susa)이 있다.

이 건물은 사실 고대 문화유산이 아니고, 1897년 프랑스 고고학 발굴팀이 이곳에 와 숙소 겸 연구소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중세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 성은 벽돌로 만들어졌으며, 그 벽돌은 주변에 있던 것을 재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유적 훼손이고 파괴다. 1912년 완성되었고, 현재도 연구원들이 고고학적 연구와 발굴을 계속하고 있다. 

거의 폐허로 남아 있는 아파다나 궁전의 유적

아케메네스제국 시기 수사 ⓒ 이상기


아케메네스제국 시기 수사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져 있었다. 성벽 안에 아크로폴리스, 다리우스 궁전, 관리와 시종 등 상류층이 사는 왕도(王都: Royal City)가 있었다. 그리고 성벽 밖에 일반 시민들이 사는 주거와 생활공간이 있었다. 성벽 안은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일반 시민이 사는 생활공간은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는 성벽 안을 자세히 살펴보고, 성벽 밖은 조망하는 정도로 답사를 마치려고 한다. 답사는 성벽 서문 쪽에서 시작해 아파다나 궁전을 살펴본 다음 제3의 안뜰을 지나 동문으로 나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핵심 유물은 성 안에서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기둥 뿌리, 기둥머리, 주초석, 점토문자판, 다리우스 상, 채석 타일 그림판이다. 그런데 이들 중 멀쩡한 것은 대부분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가 있다.

수사 현장에 남아 있는 황소 주두 ⓒ 이상기


발굴이라는 이름으로 다 가지고 간 것이다. 그래서 현장에는 껍데기만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찾는 이유는, 그곳에 가야만 과거 역사를 제대로 알고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벽돌로 쌓은 토성의 흔적이다. 벽돌로 쌓은 다음 볏집 넣은 진흙으로 겉을 싸 발랐다. 사실 이것은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복원해 놓은 것 같다.

조금 더 북쪽으로 가면 아파다나궁이 나온다. 아파다나에 이르러서야 주초석과 깨진 기둥 뿌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장은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다. 이곳에는 깨진 기둥 뿌리와 기둥머리, 주초석 만이 나뒹굴고 있다. 그들 돌에서 황소의 눈망울와 고삐, 꽃장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궁전의 크기와 내부 구성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벽체의 장식과 채색 등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수사의 아파다나 궁전 ⓒ 이상기


연구 자료와 박물관 전시물을 통해 아파다나 궁전의 크기와 모양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발굴과 연구 결과 아파다나 궁전은 벽 안쪽으로 가로 세로 6개씩 모두 36개의 기둥이 있다. 이곳이 바로 알현실이다. 알현실의 크기는 가로×세로가 58m×58m이다. 알현실 남쪽 편으로 다리우스 황제의 옥좌가 있다.

벽 바깥에는 동쪽 서쪽 북쪽으로 6개씩 두 줄의 회랑이 있다. 남쪽 현관으로는 기둥이 없이 탁 트이게 해서, 상대적으로 길이가 길다. 그러므로 아파다나 궁전 전체의 가로와 세로 길이는 각각 109m이다. 아파다나 궁전 기둥에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가 새긴 명문이 있다. 이 명문을 통해 이 궁전이 다리우스 1세에 의해 세워졌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때 불탔으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때 다시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제3의 안뜰: 연병장 ⓒ 이상기


궁전 앞쪽으로는 세 개의 안뜰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주변에 타차라 등 또 다른 궁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구조는 페르세폴리스에 세운 여름궁전과 비슷하다. 궁전 동쪽에는 발굴 후 만든 철제기둥과 함석지붕이 있고, 그곳에 기둥과 주초석 등 석재들이 모아져 보관되고 있다. 이들 석재 모두 성한 것이 없다. 그나마 성한 것이 아파다나궁 북쪽에 별도로 보관되고 있는 기둥과 주두다.

궁전 남쪽 제3의 안뜰과 다리우스 석상 그리고 동문

아파다나궁으로 통하는 북쪽 벽 모형도 ⓒ 이상기


아파다나궁을 보고 나면 길은 제2 안뜰과 제3 안뜰 사이를 지나 동문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우리는 잠시 움푹 파인 제3 안뜰을 살펴본다. 이곳은 황제가 군인들을 사열하는 일종의 연병장 개념으로 사용되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아파다나궁으로 통하는 북쪽 벽에 채색해 구운 타일로 친위대(하단부)와 사자상(상단부)을 만들어 붙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깃발을 걸기 위한 목제 깃대용 기단석 모양이 8개나 남아있기 때문이다.

연병장의 길이는 가로가 55m 세로가 60m 정도 된다. 연병장 남쪽으로 촘촘하게 쌓아올린 벽돌이 보인다. 이곳 벽에도 채색 타일이 붙어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이제 연병장 남쪽을 지나 동문으로 향한다. 동문은 아파다나로 들어가는 가장 큰 문이어서 동궁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동궁은 가로가 30m, 세로가 30m 되는 직사각형 형태였다고 한다.

수사에서 발견된 다리우스 석상 ⓒ 이상기


동궁으로 가기 전 약간 높은 언덕에 태양신전이 있고, 그곳에서 유명한 다리우스 석상이 발견되었다. 이 석상은 크세르크세스 1세 시절 이집트의 와디 하마마트(Hammamat)에서 만들어져 수사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석상은 현재 테헤란의 이란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우리는 테헤란의 국립박물관에서 그 석상을 보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자세히 살펴본 바 있다.      

동쪽 성문을 지나 로얄 시티로

아파다나궁 외곽 서민 거주지역 ⓒ 이상기


동문을 지나 왕도로 가기 위해서는 발굴하면서 만들어놓은 철제 다리를 지나야 한다. 그런데 다리 밑을 살펴보니 이곳이 과거에 해자였을 것 같다. 물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해자는 왕궁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다. 이곳을 나가면 하디쉬 궁전터가 있다. 가로 세로 각각 24m의 정사각형으로, 남쪽과 북쪽에 주랑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궁전 기둥 명문에 다리우스가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성벽을 따라 동쪽으로 더 가면, 낭떠러지 아래로 시민들이 살던 주거지역을 볼 수 있다. 시민 주거지역을 발굴한 프랑스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기원전 1900년경 엘람시대부터 이슬람시대까지 15개 층위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한다. 시민 주거지역은 로얄 시티와 외곽 성벽으로 나누어져 있다. 성벽 동쪽에 성문이 있어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었다.

수사 유적에서 만난 여우 ⓒ 이상기


우리는 시민 주거구역을 멀리서 조망한 다음, 발길을 처음 출발한 아크로폴리스 쪽으로 옮긴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황토언덕 사이에서 여우를 만날 수 있었다. 여우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유 있게 궁전 쪽으로 사라진다. 왕궁 테라스 벽 앞쪽으로 벽돌을 만드는 작업장이 있다. 이 벽돌은 왕궁을 복원하는데 사용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유적지의 상당부분이 벽돌로 복원되고 있다. 그러나 원형이 아닐진대, 그 복원은 별 가치가 없어 보인다.
 
하긴 유적지 위에다가 성을 짓고 사무실을 만드는 수준의 고고학자들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들이 발굴한 성과는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그동안 해온 행태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유물을 반출하고, 유적지를 파괴하고, 물러가지도 않고, 전형적인 문화제국주의다. 하늘을 가린 황사 때문에 수사 성이 뿌옇게 보인다. 더 이상 문화유산의 훼손과 파괴가 없었으면 좋겠다.

수사 유적 ⓒ 이상기


수사에서는 기원전 5000년경부터 13세기까지 문화유적이 발견되었다. 발굴 결과 엘람시대, 페르시아시대, 파르티아시대 문화유산 다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페르시아 다리우스 대제가 세운 궁전 유적에서 가장 많은 유물이 나왔고,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수사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등록 이유는 다음 네 가지다.

첫째 수사는 중동의 몇 안 되는 고대유적으로, 도시화와 초기 국가의 발전 양상을 잘 보여준다. 둘째 수사는 유목민족과 정착민족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어, 다른 문화 또는 문명권 사이의 교류와 교역 등을 파악하게 해 준다. 셋째 수사에서는 6000년 이상 동안 전개된 27개 층위의 역사유적이 발견되었다. 그 중 엘람시대와 아케메네스시대 제국의 수도로 도심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넷째 수사는 이란의 평지 지역에 건설된 왕궁 건축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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