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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는 실패작이다

[주장] 월드컵예선 중국전 패배 충격... 변화없는 슈틸리케, 과감한 결단 필요

17.03.24 09:46최종업데이트17.03.2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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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창사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축구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6차예선 중국전에서 0대 1로 충격의 패배를 당한 축구국가대표팀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24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선수들과 귀국한 뒤 팀 버스를 기다리다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모두가 피하고 싶었던 결론을 끝내 인정해야 할 때가 됐다. 울리 슈틸리케는 실패작이다.

슈틸리케호가 다시 한번 최악의 상황을 초래했다. 한국은 지난 23일 중국 창사에서 열린 중국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6차전 원정에서 충격의 0-1 패배를 당했다. 3승 1무 2패(승점 10점)를 기록한 한국은, 다행히 같은 날 시리아가 우즈베키스탄을 잡아준 덕에 일단 조 2위 자리는 지켰다. 하지만 우즈벡(9점)-시리아(8점)과 승점차를 벌리지 못해 남은 4경기 일정이 더욱 험난해졌다.

한국은 이번 창사 원정에서 불명예 기록들을 잇달아 수립했다. 일단 40년 가까이 지속되어오던 '공한증' 신화가 깨졌다.

이날 경기 전까지 중국과의 상대 전적에서 18승 12무 1패의 압도적인 우위를 기록하고 있던 한국은, 월드컵 예선과 중국 원정 사상 첫 패배를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2010년 동아시아대회에서 허정무호가 중국에 0-3으로 사상 첫 패배를 당한 일이 있지만 당시는 월드컵 본선을 확정 지은 상황이었고 비중이 낮은 대회에서 결과보다 선수 점검과 전술 실험에 의미를 둔 경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요한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를 당했기에 충격이 훨씬 크다. 이번 최종예선에서 중국이 기록한 득점(3골)과 유일한 1승이 모두 한국이 헌납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하다.

원정 무승과 전반 실점 징크스를 되풀이한 것도 뼈아프다. 슈틸리케호는 이번 최종예선 들어 시리아(0-0), 이란(0-1), 중국전까지 원정 3경기에서 1무 2패에 그치며 아직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홈에서만 3전 전승을 거두며 8골을 넣은 것과 상반되는 행보다.

또한 슈틸리케호는 6경기에 7골을 실점했다. 무승부에 그친 시리아와의 2차전을 제외하면 클린시트로 끝낸 경기가 전무하다. 약체팀들을 주로 상대하던 2차예선까지만 해도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았던 수비는 최종예선에서 '자동문'으로 전락했다. 무려 5골을 전반에 허용했다. 특히 카타르와의 3차전(3-2)부터 최근 4경기 연속으로 전반에 리드를 빼앗기고 끌려가는 경기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이번에도 실패한 슈틸리케의 플랜 A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대표팀과 예선전을 치르는 중국 대표팀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지난 22일 중국 창사 허룽스타디움 보조경기장에서 중국팀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무엇보다 팬들을 화나게 만드는 것은, 이번 중국전이 단순히 불운이나 결과론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완패'였다는 사실이다. 슈틸리케호는 마르첼로 리피 감독 체제로 개편된 중국을 상대로 결과뿐 아니라 전술, 투지, 실리, 매너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완전히 밀렸다. 어쩌면 슈틸리케와 리피라는 두 감독의 극명한 역량 차이가 초래한 결과이기도 하다.

월드컵 우승 경험에 빛나는 명장 리피 감독은 한국전에서도 확실한 콘셉트를 잡고 경기에 나섰다. 수비를 두텁게 세우고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기회가 생기면 기동력이 있는 스리톱을 앞세워 세트피스와 역습으로 끊임없이 한국의 수비 뒷공간을 파고들었다. 최전방에서부터 쉴틈 없는 압박과 활동량으로 한국의 주요 공격 루트였던 후방 빌드업과 측면에서의 크로스를 차단하자 슈틸리케호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5개월밖에 안되 는 짧은 기간이지만 리피 감독 부임 이후 중국 대표팀이 조직적으로 상당히 발전했음을 증명한 경기였다.

이에 비해 슈틸리케호는 이미 드러난 문제점을 또다시 반복했다. 전반 이정협을 플랜A로 내세운 공격전술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며 또다시 실패했다. 5개의 슈팅을 시도했지만 유효슈팅은 전무했고 페널티박스 안에서 중국 수비를 위협할 만한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점유율은 높았지만 패스의 정확도와 템포가 떨어지는 단조로운 공격은 상대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해 실속 없이 골키퍼를 향한 '백패스 돌리기'만 반복됐다. 오히려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수비수들이 중국 선수들의 동선에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다가 허무하게 선제 실점까지 허용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결국 후반 시작과 함께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투입하며 플랜A의 실패를 또 한번 인정했다.

하지만 후반에도 정작 슈틸리케호의 경기력은 전혀 살아나지 못했다. 김신욱의 머리를 활용한 공중전은 이미 상대팀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술이었다. 중국 수비진이 이미 두텁게 정돈된 상태에서 느릿느릿 올라오는 크로스는 아무리 김신욱이라도 살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후반 기성용의 두 차례 중거리슛과, 남태희의 크로스에 이은 지동원의 헤딩슛은 중국 골키퍼 정청의 선방에 막혔다.

지난 23일 중국 후난성 허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축구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6차예선 A조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한국 기성용이 슈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어떤 전술 쓸지 가르쳐 달라? 적반하장 슈틸리케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종료까지 아무런 전술적인 변화도 제시하지 못했다. 김신욱에 이어 두 번째 교체로 투입한 황희찬은 의욕만 앞서서 일분일초가 아쉬운 경기 막판 중국 선수를 가격하는 플레이로 양팀 선수들의 몸싸움을 초래하여 시간만 허비했다. 더구나 마지막 교체카드로 투입한 허용준은 이날이 A매치 데뷔 전인 신예였다. 공격이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중거리슛이나 제공권으로 직선적인 공격루트를 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험이 풍부한 것도 아닌 허용준의 투입은 결과적으로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의미 없는 교체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에도 자신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동문서답만 해대는 모습이었다. 지난 이란전 패배 당시 '소리아 발언' 등 선수 탓과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것을 의식한 듯, 이날은 표면적으로 "선수들을 너무 비난하지 말아달라"로 일단 감싸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전술과 경기운영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바로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술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를 당했음에도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취재진에게 "그럼 어떤 전술을 들고 나왔어야 하는지 가르쳐 달라"며 답을 남에게 미루는 무책임한 모습은, 축구팬들의 마지막 기대감까지 잃게 만들었다.

패배 이후 본인도 감정적으로 격해졌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감독이라면 자신이 선택한 선수와 전술, 결과에 대한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최종예선 들어 반복되고 있는 부진과 대표팀 운영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 대해 아직도 문제점이나 개선 의지를 느끼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종예선은 이제 4경기만이 남았다. 어쩌면 변화를 주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더 이상 슈틸리케 감독으로는 지금의 한국대표팀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슈틸리케를 자른다고 해도 당장 대안이 없다는 변명으로 무마하기에는 상황이 심각하다. 운이 좋아 월드컵 본선에는 나간다고 할지라도 아시아에서도 안 통하는 이런 경기력으로는 1년 뒤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할 수 없다.

한국은 1986년 멕시코 대회를 시작으로 월드컵 본선에 꾸준히 개근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이란전 패배 이후 지난 10여년간 대표팀의 잦은 감독교체 사례를 꼬집으며 한국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정작 그가 간과한 것은 적어도 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한 대표팀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말처럼 본인은 경질되더라도 "그냥 운이 없었다고 치부하고 떠나면 그만"인 외국인 감독이지만, 월드컵 본선에 탈락할 경우 그 상처와 후폭풍은 한국축구가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이 그 무게와 책임감에 대하여 과연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인물일까.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태도와 역량을 감안하면 대답은 '아니올시다'에 가까워 보인다.

지금이라도 한국축구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슈틸리케호는 이미 명백한 최악의 실패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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