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다시 돌아온 날은 33주년 결혼기념일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 미수습자 9명과 함께 봄을 기다립니다

등록 2017.03.24 22:12수정 2017.03.2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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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500일 추모국민대회 지난 2015년 8월 2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세월호참사 500일 추모 국민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미수습자 9명을 가족품으로" "세월호특조위 탄압중단"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벌였다. ⓒ 권우성


2014년 4월 16일 오전.

인천항에서 제주도를 향해 출발한 세월호에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일반인 탑승객 104명과 선원 33명 등 47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공기, 기대에 찬 목소리. 그렇게 부푼 마음을 담아 출발한 세월호는, 그러나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짓눌린 채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탑승객 중 172명이 구조되었고, 304명이 사망했습니다. 그중 9명의 시신은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1073일이 지났고, 세월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오랜 시간을 보여주듯 배는 거뭇거뭇해졌고 약해졌습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의 마음은 한 번 더 무너져내렸습니다.

이들은 반잠수선 선박에 실려 마지막 항해를 하는 세월호를 멀리서나마 초조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그리워했던 내 딸, 내 아들, 내 남편과 함께할 수 있는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수습자 단원고 학생 남현철군, 박영인군, 조은화양, 허다윤양, 고창석 선생님, 양승진 선생님, 일반인 탑승객 이영숙씨, 권재근씨, 권혁규군...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합니다.

"세월호 안에 아직 사람이 있습니다."


'아들아, 네가 내 아들이라 자랑스럽다' - 남현철 (단원고 2학년 6반)

"많이 힘든 그대 힘이든 그댈 안아주고 싶어요. 나는 잠도 없이 그대 생각만 하죠. 그대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지만, 항상 마음만은 그대 곁에 있어요" –'사랑하는 그대여' 가사 중

"사랑하는 그대여"의 가사를 쓴 현철군은 평소 음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음악적 재능이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또한, 아빠의 전화기에 '내 심장'이라고 저장되어 있을 만큼 각별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을 그리워하며 아버지는 팽목항에 기타를 사다 두었습니다. 그리고 기타엔 아들을 향한 애틋함이 서려 있습니다. '아들아, 네가 내 아들이라 자랑스럽다. 아빠 엄마는 죽을 때까지 너랑 함께 살아 갈 거야.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아들을 위해 축구화를 사다 두었습니다 - 박영인 (단원고 2학년 6반)

부모님과 다니는 주말여행을 좋아했던 영인군. 엄마의 휴대전화엔 여행지에서 영인군과 함께 찍은 사진이 많습니다. 영인군이 해달라는 것은 뭐든 해주었던 엄마. 평소 축구를 좋아하던 영인군이 축구화를 사달라 했었는데 사주지 못한 것이 엄마는 너무나 미안합니다. 엄마는 아들에게 꼭 신겨주고 싶었던 축구화를 팽목항에 사다 두었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너를 기다리는 모든 이의 따뜻한 품으로 어서 돌아오렴. 사랑한다.'

내 딸은 구조된 줄 알았는데... - 조은화 (단원고 2학년 1반)

아침에 엄마에게 뽀뽀를 하고 하루에도 몇 통씩 문자를 보낸 은화양. 다정한 딸 은화양은 수학여행 비용이 32만7000원인 것을 미안해하는 속 깊은 딸이기도 했습니다. 수학을 좋아했고 전교 1등을 도맡아 했던 은화양. 전원 구조 소식을 들은 은화양의 엄마는 사고에 놀랐을 은화양을 데리러 4월 16일 진도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은화양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퇴근하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딸은 이제 없다 - 허다윤 (단원고 2학년 2반)

퇴근하는 아버지를 거의 매일같이 전철역으로 마중 나갔던 다윤양. 평소 소박한 성격의 다윤양은 또래와 달리 외모를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다윤이에게 아버지는 화장품을 사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윤양은 화장품을 한 통도 다 쓰지 못했습니다. 어릴 적 물놀이 사고를 당해 물을 무서워하던 딸을 잘 알기에, 차디찬 물에서 아직 나오지 못하는 딸을 생각하면 어머니는 마음이 아픕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을 구했습니다 - 고창석 (단원고 선생님)

머리가 고슴도치처럼 짧아 "또치쌤"으로 불렸던 고창석 선생님. 고 선생님의 제자들은 평소 자상하고 따뜻한 성품의 고 선생님을 많이 그리워합니다. 인명구조 자격증이 있고 수영을 잘했던 체육 선생님. 9년 전 근무지였던 중학교에서 불이나 아이들을 대피시킨 뒤 혼자서 소화기를 들고 화재를 진압했던 고 선생님은 3년 전 그날도 학생들에게 "빨리 배에서 탈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배에 남아 아이들을 구조했던 고 선생님은 아직 배에 있습니다.

세월호가 다시 돌아온 날은 33주년 결혼기념일 - 양승진 (단원고 선생님)

학창 시절 씨름 선수로 활동했던 양승진 선생님. 듬직한 겉모습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버팀목 같은 존재였습니다. 학교 뒤에 각종 채소를 심어 동료, 제자들과 나누어 먹고 배추와 무를 심어 결손가정과 독거노인에게 김치를 담가주려는 계획을 세운 그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3월 23일은 양 선생님의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그리고 3월 24일은 양 선생님의 생일입니다. 양 선생님의 부인 유백형씨는 바다 위에서 33주년 결혼기념일을 보냈습니다. 유씨의 소망은 단 하나, '9명 미수습자 모두가 가족 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같이 살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 이영숙씨

일찍 남편을 잃은 이영숙씨는 생계를 위해 하나뿐인 아들을 어릴 적부터 시댁에 맡기고 따로 살아야 했습니다. "2015년엔 같이 살자"는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씨는 제주도로 이사를 가는 길이었습니다. 인천에 남아있던 이삿짐을 제주로 옮기던 날 이씨는 가라앉은 이삿짐과 함께 제주도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지영양은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 아빠 권재근씨· 아들 권혁규군(실종 당시 만 6세)

그날은 아빠가 힘들게 일해 모은 돈으로 제주도에 집을 지어 네 가족이 이사하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6살로 네 가족 중 막내딸이었던 지영양만 단원고 학생들과 일반 승객들에게 구조되어 유일하게 생존했습니다. 지영양은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힘든 삶을 살다가 제주도로 귀농을 하던 가족의 희망은 세월호에 잠들었습니다. 권재근씨의 형 권오복씨는 "어서 빨리 저 어둠 속에서 무서움에 떨었을 동생과 조카를 안아주고 싶다"며 가족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9명의 미수습자 사연은 다음 스토리펀딩 ‘작은 도서관에 띄우는 304개의 별’, ‘4.16 가족 협의회’ 사이트 등을 참고했습니다.
#세월호 #세월호 인양 #미수습자 #단원고 #팽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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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인턴기자 김도희입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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