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아버지회'는 왜 없는가

아이의 학교활동 참여, 엄마는 필수고 아빠는 선택

등록 2017.03.29 22:04수정 2017.03.29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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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pixabay.com ⓒ pixabay.com


# 상황 1. 초등학교 입학식 날


강당은 아이들과 학부모들로 가득 찼다. 아이의 표정에도, 아이를 첫 입학시킨 부모들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돌았다. 나와 남편도 휴가를 내고 입학식에 참여했다. 애국가 제창과 교장선생님 말씀에 이어 각 반 사진촬영이 이어졌다. 사진촬영은 아이들끼리, 그리고 학부모와 함께 이루어졌다.

"자, 학부모님들 나오셔서 아이들 뒤에 서주세요."

나와 남편은 강당 앞으로 나갔는데, 사진을 찍으러 나오는 학부모 중 아빠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엄마들만 나온 것. 남편은 멋쩍어 하면서 자리에 가 앉았다. 남편이 나중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냥 엄마들만 나오라고 하던가. 학부모 나오라고 해서 나갔다가 괜히 멋쩍게...."


# 상황 2. 녹색어머니회 모집



아이는 3일째 되는 날, 학부모 자원봉사 모집이라는 가정통신문을 들고 왔다. 가정 통신문에는 녹색어머니회와 어머니 폴리스 중 하나는 필수라고 쓰여 있었고, 이외에 선택사항으로 아빠의 재능기부와 급식 감사, 도서관 도우미가 있었다.

남편 : "뭐야, 엄마는 필수고, 아빠는 선택이야?"
나 : "그러게. 나도 재능기부할 수 있는데..."


나는 녹색어머니회에, 남편은 재능기부를 선택했다. 우리 남편이 유별나서가 아니다. 남편은 아빠로서 아이의 학교생활에 1년에 한두 번쯤은 적극 참여해주고 싶어 했다. 나도 재미있는 IT 역사 이야기나 생활 속의 IT 이야기들을 해줄 수 있었는데...

# 상황 3. 학부모 총회

학부모 총회의 날, 다행히 내가 휴가를 낼 수 있었고, 남편은 바빴다. 그리고 아마도, 엄마들이 많이 올 것이라고 생각되었고, 역시나 예상대로 엄마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아빠가 참석한 경우는 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반에 들어온 아빠 1명. 그분은 교실에 앉지도 못하고 뒤에 서서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 정도라면 학부모 총회가 아니라 '엄마 총회'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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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pixabay.com ⓒ pixabay


우리 사회는 여자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던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여자에 대해서 얼마나 관대하지 못한지 말이다. 결혼을 한 뒤에 알게 됐다. 여자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무척 많다는 것을. 시댁 제사에서부터,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것, 아이를 챙기는 것까지... 물론 남편에게도 남편으로서, 아빠로서의 역할이 주어졌지만, 아이 육아에 있어서는 보조적인 역할만 해도 칭찬이 쏟아졌다.

남편과 달리, 같이 일을 하고 가정경제를 같이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가정의 모든 대소사와 아이를 챙기는 것에서 주책임자로 나서야 했기에, 시간에 허덕이며 일과 육아를 오갔다.

직장과 집이 가까운 남편이 아이들을 더 많이 챙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가 유치원 차량 탑승에 늦거나 하면 엄마인 나에게 제일 먼저 전화가 왔다. 그러면 나는 다시 집과 직장이 가까운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분명히 1차 연락처에 아빠를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 각 기관들의 행사 모임에 '아빠'라는 제목 대신 '학부모'라고 적힌 행사엔 반드시 엄마 참석이 필수라는 사실을 아이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물론 아빠가 오는 집도 있지만, 80% 이상이 엄마들이다.

왜 우리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남자보다는 여자, 즉 엄마의 손길을 더 필요로 하는 것일까? 왜일까? 아직도 우리는 예전의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을 주위 워킹맘에게 해보았다.

"주로 선생님들이 여자잖아. 그래서 남자한테 이야기하는 건 불편하니까 엄마를 찾는 거 아닐까?"
"남자들은 이야기해도 잘 안 하려고 하잖아. 반응도 잘 없고..."
"이미 온통 엄마들 뿐인데, 그 가운데서 활동하려는 아빠들이 있겠어? 힘들지..."


아이의 학교생활과 교육은 엄마가 책임져야한다는, 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인식도 한몫했으리라 본다. 이전 사회에서도, 혹은 지금 사회에서도 아이 교육은 엄마 몫이다. 물론 학교측도 나름의 입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녹색어머니와 어머니 폴리스는 필수이고, 아빠의 참여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쉽다. 엄마의 직장은 가정의 보조가 아니다. 많은 엄마들이 전문가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고, 생계형도 있으며, 아빠 참여가 더 쉬운 가정도 있다. 또한 엄마가 없는 한부모 가정도 있다. 이 모든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교육계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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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pixabay.com ⓒ pixabay


엄마도 재능을 지니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엄마에겐 녹색어머니회, 어머니 폴리스같이 시간과 단순노동력을 투입해야 하는 활동을, 아빠에겐 재능기부라는 형태의 지원을 요구한다. 하지만 재능은 아빠만이 아니라 엄마에게도 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엄마들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 엄마의 직업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 아침 등굣길에 횡단보도에서 하는 교통정리는 아빠도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렇게 다양한 시도는 아이들의 양성평등 의식을 높이는데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까칠한 아내와 10년 동안 맞벌이로 살아온 내 남편은 기꺼이 아이의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남편도 아이 둘을 돌보면서 일을 하는 건 힘들다며 불만을 토로하지만, 아내인 내가 하는 일이 가정의 보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남편 덕분에 난 충분히 존중받으면서, 그리고 조율하면서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초등입학하면서 각종 모임과 활동이 엄마 위주로 이루어지는 탓에 시간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학부모의 사전적 의미는 '학생의 아버지나 어머니, 학생의 보호자'다. 더 이상 엄마에게만 의무를 지우지 말자. 온 마을이 아이를 키워냈던 옛날옛적은 아니더라도 부모가 함께 아이를 키워낼 수 있도록 사회의 변화가 필요하다.

학교에서부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시도했으면 좋겠다.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녹색아버지회와 어마니의 재능기부'라는 안내장을 받아보는 것이 희망사항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아 담아내다> (http://blog.naver.com/longmami) 에도 실렸습니다.
#워킹맘에세이 #워킹맘 #이혜선 #녹색어머니회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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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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