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그녀, 경찰차에 오르다

[응답한다1988 14] 인생에도 노란 화살표가 있다면

등록 2017.03.27 14:23수정 2017.03.2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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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페라다에서, 요코 순례길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 ⓒ 임충만


경찰차를 탄 순례자
 
한동안 같이 걷던 그녀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됐다. 일본에서 온 요코의 직업은 수의사였다. 왜 산티아고를 걷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2년 동안 사귄 남자 친구와 이별하고 머리를 식히러 여행을 왔단다. 여행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직장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지 둘째 날 '라라소나'로 가는 길부터 보기 시작해 그 날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었고 그 후에도 자주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곤 했는데 그녀를 못 본 지 꽤 긴 시간이 지났다. 워낙 활발한 성격에 체력도 좋고 웬만한 순례자들보다 잘 걸어서 놀랐다. 지금은 어디쯤 걷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던 차에 알베르게에서 어떤 순례자가 요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순례자1 : 어떤 일본 여자분이 순례길을 걷다가 경찰차를 탔다는 거야~
순례자2 : 진짜?~무슨 일인데?~
순례자1 : 밤늦게 길을 걷다가 순례길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갔데. 길 잃었다가 현지인이 경찰에 연락해서 경찰차가 다음 목적지까지 데려다줬대~
 
이야기를 듣자마자 '요코'가 떠올랐다. 요새는 꼭 종교 목적이 아니라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아시아 순례자가 많아졌는데 그래도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 수가 적은 일본이나 중국은 많지 않았고 이 시기에 길을 걷는 자는 요코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걱정은 됐지만 당장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 길을 잃었지만 다행히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경찰차를 타고 다음 마을까지 이동했다는 소식에 조금 안도가 됐다.  
 

아홉째날 목적지, 산토 도밍고 순례길에서 본 가장 큰 화살표 ⓒ 임충만




노란 화살표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지리다. 산티아고 순례길 가운데 프랑스길은 800km에 이른다.  단 스페인어나 영어를 못해도 다른 여행지보다 쉽게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는 길이다. 정말 단순한데 그저 노란 화살표와 조가비 모양의 표식을 따라 하루하루를 걸으면 된다.
 
이 길은 프랑스 St.Jean pied de port부터 스페인 Santiago Compostela까지 걸어가는 최단 거리는 아니다. 다음 도시를 향해 있어 어쩔 때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가기도 한다. 길을 걷다 보면 산길을 걷기도 하고 차량들이 지나는 길도 걷곤 하는데 어떤 때는 도로로 걷는 것이 더 빠른 경우도 있고 산을 넘어가는 길로 걷는 것이 더욱 빠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순례자의 안전을 위해 대부분 루트는 도로를 향하지 않는다. 산길이나 흙길이 더욱 경치가 좋다. 가끔은 일부러 작은 마을을 지나가게 하기 위해 돌아가게 만든 느낌도 받곤 한다. 분명 순례자들이 그 마을을 지나치면서 그 마을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도 있다고 본다.
 
이유야 어쨌든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면 다음 마을까지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간혹 비나 눈이 많이 와서 시야에 가려졌거나 그냥 노란 화살표를 못 보고 길을 잃었다면 잠시 다른 순례자를 기다리거나 현지인에게 길을 꼭 물어보는 것이 좋다.
 
주위에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핸드폰 지도 애플리케이션 사용을 추천한다. 또한 높은 산을 넘어야 하는 날이면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산길보다 도로를 걷는 편이 안전할 때도 있다. 이후 포르투갈길을 걸을 때 큰 비로 산에 홍수가 나서 어쩔 수 없이 도로를 걸은 경험도 있다. 도로를 따라 걷는 것이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을 때보다 거리가 짧다.
     

산토 도밍고 가는 길 산티아고까지 580km ⓒ 임충만


Concha, 조가비의 유래
 
노란 화살표와 더불어 순례길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는 조가비다. 전설에 따르면 성 야고보 시신을 실은 배가 갈리시아 바닷가를 지날 때 한 기사의 결혼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기사에게 갑자기 높은 파도가 덮치고 잠잠해졌다. 그에게는 온통 가리비 조개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가리비 조개는 순례의 상징이 되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조가비를 하나씩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알베르게에나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하기도 한다. 단순히 순례자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노란 화살표와 같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조개 껍데기 모향은 방향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가끔 화살표 없이 조가비 모양만 있는데 모양 때문에 헷갈리는 지역도 있다. 어느 부분으로 향하는지 알쏭달쏭하게 순례자를 헷갈리게 만드는 곳이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란다.
   

벨로라도 가는 길 노란화살표와 조가비 모양이 같이 있는 표지판 가끔 조가비 방향이 반대인 경우도 있으니 유의할것 ⓒ 임충만



  


화살표야 어딨니?~
 
순례길은 노란 화살표 찾기 게임이다. 물론 노란 화살표가 없어도 가이드북,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어디로 갈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면 지나가던 스페인 사람이 길을 알려주기도 한다. 빨래를 널다가 베란다에서 손가락으로 길을 가리키거나 창문을 열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아주 큰 소리로 알려주기도 한다.
 
성수기 때는 정말 많은 사람이 줄지어 가는 경우가 많아 앞사람 뒤통수만 보고 따라가도 길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처음부터 이 길에 사람이 많았거나 노란 화살표와 조가비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약 1000년이라는 역사 동안 순례자가 하나둘씩 그 길을 가면서 지금의 길이 만들어졌을 것이고 노란 화살표와 조가비로 길을 표시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스페인 현지 사람들도 한 명 두 명 순례자들을 보면서 길의 방향을 다 외울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노란 화살표 길을 잃었을 때 주위에 노란화살표가 있는지 찾아보세요 ⓒ 임충만


우리의 인생에도 노란 화살표가 있다면?~
 
이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 달 여가 넘는 기간 동안 800km를 걷기 때문에 쉽지는 않지만 '노란 화살표'만 따라가면 되는 아주 쉬운 길이기도 하다. 단지 비행기로는 1, 2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오랜 시간 걸리는 길이다.
 
길을 걸으면서 인생에도 "노란 화살표가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한국 청소년들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라는 고민보다는 눈앞의 삶에 직면해 있다. 한 초등학생들에게 어떤 직업을 원하는지 설문을 했을 때 1위가 건물주 2위가 공무원이라는 결과는 이런 점을 더 잘 보여준다.
 
자신이 누구인지 잘하는 게 무엇인지 한 번뿐인 삶에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보다 현재는 안정적이고 나 자신보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며 하고 싶은 것보다는 좋은 학교에 더 초점을 맞추고 때가 되면 좋아하는 것이 없어도 취업을 준비하고 또 나이가 차면 결혼을 압박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나 또한 별 다르지 않았다. 그저 말 잘 듣고 순응하는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보니 20살 법적 나이로 성인이라는 무거운 짐이 나를 억눌렀다. 어른이 되었지만 어떤 삶을 살고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데 대학 입학시험 '수능' 점수는 말이 아니었다.
 
그나마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어 음악에 관심은 있었으나 남자가 음악 하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에 포기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피아노는 취미 생활로 즐기려고 했다. 돌이켜보니 주위에 음악 하는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살았다. 혹여나 금전적으로 힘들게 살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20대라는 길을 걷다 막바지에 뒤돌아보니 하루하루 열심을 다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쉬웠다. 괜한 걱정으로 인해 낭비한 시간보다 그냥 부딪혀보고 그 길을 갔다가 아니다 싶으면 다시 되돌아왔을 텐데. 또 그 길을 갔다가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그런 아쉬움... 순례길처럼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나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참 많이 돌아왔다.
 
인생은 순례길과 비슷하면서 참 어렵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방향은 맞는지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아닌지 알려주지 않으니까 그리고 순례길은 천년의 역사 동안 수많은 순례자들이 걸어온 길이지만 내 인생이란 길은 내가 지금 처음으로 가는 길이니까
 
 

순례길에서 만난 형 동생 소중한 사람들을 스페인에서 만났다 ⓒ 임충만


 
인생에도 노란 화살표가 있다
 
삼수 편입 그렇게 남들보다 느릴지 모르지만 나는 나만의 목적지를 찾아 헤매고 노란 화살표를 찾기 시작했다. 방황하고 헤매던 나에게 길을 알려주는 이는 없었고 나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봉사활동, 학교 활동 및 대외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 사람들과 교제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헌혈과 봉사활동을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을 알았고 해외봉사팀에서 사진, 영상 팀에서 활동하며 소중한 사람들을 촬영하고 선물할 때 기쁨을 느끼는 것도 알았다. 28살 처음으로 자유 여행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고 하루에 12시간 동안 50km를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배우려고 노력하자 조언을 해주고 응원해주는 멘토들도 생겼다. 항상 멋지고 큰 영감 주는 선규형, 동생이지만 항상 남을 배려하고 멋진 태훈이 우석이. 3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200회 넘는 헌혈을 한 한빛 선배, 소아암 환우들뿐만 아니라 보호자께도 진심을 다하는 이유진 간호사님 등 나에게 노란 화살표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생기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동생들을 잘 챙겨주고 깊은 학살은 갖춘 성균이형, 외국어에 능숙하고 친화력 강한 우현이, 에너지 넘치는 종원이, 어린 나이에도 도전의식을 가지고 창업에 도전하는 준택이, 첫 해외여행을 순례길에 도전한 해인이를 만나고 같이 걸으면서 많이 배웠다.
 
내 주변에 배울 점 많은 사람들이 내게는 인생의 '노란 화살표'가 아닐까?~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인생의 방향에 대해 헤매는 청년들에게 그들에게 나도 하나의 노란 화살표가 되고 싶다. 물론 지금 가는 길도 돌이켜 보면 되돌아가거나 또 다른 길로 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걷고 있다.
 
여러분에게도 인생의 노란화살표가 있나요?~돌아가더라도 헤맬지라도 우리 용기내서 가봐요

산토 도밍고 작은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주로 성당이다 ⓒ 임충만


사리아 사는길 산티아고에서 130km 떨어진 곳 산실과 사모스 두 곳 중 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 임충만


덧붙이는 글 어플리케이션 구글맵과 maps.me 를 추천합니다. maps.me는 데이터가 없어도 사용이 간으해 유용합니다
되도록 혼자서는 늦은 밤까지 걷는 것은 자제하시고 만약 길을 잃었을 경우에는 주위에 노란화살표가 있는지 먼저 찾아보세요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어디서부터 길을 잃었는지 잘 생각하시고 그 곳으로 돌아가셔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다리시는 걸 추천합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핸드폰 배터리를 꽉 채워주세요 보조배터리도 준비하세요
#산티아고 #순례길 #순례자 #노란화살표 #조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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