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순대를 먹다니!

[응답한다1988 15] 우리 다시 만나요

등록 2017.03.28 12:36수정 2017.03.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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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사람들도 순대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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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 하비에르가 만들어준 순대 ⓒ 임충만


산토 도밍고 알베르게에서 하비에르, 카일, 플로르 그리고 프랑카를 만났다. 하비에르와 카일은 워낙 체력이 좋은데다 걸음이 빠르고 부지런해 아침에 인사를 하고 나서는 하루 종일 얼굴을 보기가 힘들다. 다음 목적지에 우리보다 훨씬 빨리 도착해있곤 했다.


오늘도 걷는 동안에는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지만 산토 도밍고 알베르게에서 만나게 되었다. 카일은 미국에서 여행 가이드로 일하고 있었다. 하비에르는 스페인에서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몇 년 동안 스페인 군대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둘 다 겉보기에도 강해 보였다. 하비에르는 영어를 하지 못하고 우리는 스페인어에 능숙하지 않아 의사소통이 100%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카일과 우현이가 통역을 해주거나 손 발을 써가며 의사소통하려고 노력했다.

하비에르 : Hola ~ Bueno?~ 안녕 ~ 어떠니?~
충만 : Muy Muy Bien 아주 좋아 아주 좋아
하비에르 : Te gustas Embutidos? 너 순대 좋아해?~
준택 : Claro que si 당연하지

하비에르는 주로 혼자 걸었다.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지 않고 주로 간단한 음식들을 들고 다니며 점심을 해결했다. 저녁에는 알베르게에서 요리를 해서 저녁식사를 했다. 가끔 준택이와 종원이가 요리한 음식을 우리와 함께 먹었는데 오늘은 그가 우리에게 스페인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거기다가 고기라니! 스페인에서도 순대를 먹을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하기만 했다. 축산업으로 유명한 스페인이니 다양한 요리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꼬치니요(새끼 돼지구이), 츌레똔(갈비) 같은 독특한 스페인만 요리 뿐 아니라 초리소(돼지고기 소시지)나 하몽(소금에 절여 건조한 돼지 다리로 만든 햄)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순대는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먹게 되다니 참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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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라도 가는 길 이제야 봄이 오는 것 같다 ⓒ 임충만


순례자 작별인사, Buen Camino


'Buen Camino'라는 말은 순례자들 간의 '작별 인사'다. "좋은 길 되세요" "당신의 길에 행운이 있기를 소망합니다"란 뜻을 담은 작별 인사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순례자나 현지인을 만날 때 Hello도 자주 쓰지만 스페인어로 'Hola'도 자주 쓰인다. 발음하기 쉽고 재밌어 가장 먼저 접하는 스페인어 중 하나다.

순례길에서는 국적 상관없이 순례자라면 대부분 인사를 잘 받아준다. 스페인 사람들도 그냥 마주치거나 지나칠 때 서로 가볍게 'Hola'라고 인사한다. 물론 대도시에서는 갈길 바쁜 사람들이 많기에 장소와 때에 따라 써야 한다.

길 위에서 잠시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갈 길을 갈 때면 남은 여정도 즐겁게 보내라는 뜻이 담긴 'Buen Camino'라는 말을 한다. 조금 친한 사이에서는 "다음에 보자"라는 뜻의 'Hasta luego'라는 말도 사용하곤 한다. 어떨 때는 다시 보지 못하기에 'Buen Camino'라는 말과 함께 작별 인사를 한다.

Donativo, 기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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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함 정가는 없지만 꼭 기부함에 합리적인 금액을 지불 ⓒ 임충만


다음 날 종원이는 우리보다 앞서 걷고 있었다. 뒤를 쫓아 우리는 산토 도밍고를 떠나 벨로라 도로로 가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날씨가 꽤 더운 날이었다. 오후가 되니 땀이 꽤 나기 시작했다. 마침 쉼터가 있어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가판대를 놓고 음료수나 과일을 팔거나 조가비 모형, 산티아고 순례길과 관련된 형상을 물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판대 말고 카페나 바 그리고 집안에서 팔기도 한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카페는 아니었지만 개인이 다과와 음료수를 준비해놓고 자신이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팔고 있었다.

조가비 모형이나 노란 화살표 모형이 있는 배지, 목걸이, 팔찌 등이 있었고 음료수도 있었다. 액세서리는 정가에 팔았지만 음료수 및 다과는 기부로 운영하고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순례자들을 위한 배려이다. 음료수를 마시고 이야기하고 쉬며 재충전하고 또 다른 순례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내키는 대로 돈을 지불하면 된다.

알베르게 또한 공립, 사립 알베르게가 있는데 가끔 공립 알베르게는 기부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기부라는 말은 공짜는 아니다.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많이 내면 좋지만 적어도 5유로 이상은 내는 것이 좋다. 우리는 다들 음료수를 마시며 쉬었다. 수공예로 만든 액세서리를 구경하며 잠시 햇빛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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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모자 누군가 쓰던 중고지만 귀하게 사용했습니다 ⓒ 임충만


새 모자, 필요 없는 물품 나누기

그렇게 쉬다가 눈에 띄는 게 있었는데 여러 물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종이에 영어로 필요 없는 물품은 이 곳에 놓고 가고 이 물품들 중 필요한 것은 가져가도 좋다고 쓰여있었다. 쉽게 말하면 물물교환일 수도 있는 무인 시스템인 것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물건이 막상 걷다보니 필요 없는 경우가 있다. 한 달 넘게 걷다 보니 날씨와 상황이 변해 필요 없어지기도 한다. 또 소모성 물품이나 약품이 갑자기 필요하게 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나처럼 장갑이 필요 없을 줄 알고 버렸다가 다시 구입하는 경우도 있고 해인이처럼 스페인어책, 무거운 침낭 등이 필요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혹시 필요한 물품이 있을까 곰곰히 보다보니 모자 하나가 보였다. 날이 풀리고 따뜻해지면서 오후가 되면 태양빛이 꽤 강했다. 준택이가 모자가 두 개라서 가끔 나에게 모자 하나를 빌려줬었는데 때 마침 모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자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나와 함께 걸었다.

어려운 것은 아닐지 몰라도 누군가가 순례자를 배려하기 위해 만든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날도 따뜻하고 벨로라도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어서 평소보다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틀 전 그리고 어제는 30km 넘게 걸어서 꽤나 지쳐있었는데 오늘은 재충전하기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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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라도 알베르게 1층 준택 프랑카 그리고 라스 ⓒ 임충만


세계 각종 언어의 건배

오늘 묵는 알베르게는 일하시는 분들이 알베르게에서 주무시지 않고 6시에 퇴근했다. 원래 알베르게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기 때문에 서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간단한 룰이 있다. 당연히 깔끔하게 사용해야 하고 너무 시끄러워서는 안되고 10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오늘 알베르게는 신기하게 복층 구조였다. 1층에는 작은 부엌과 거실이 있었고 2층에는 넓은 식탁이 있었다. 마지막 3층에는 순례자들이 잘 수 있는 2층 침대가 있엇다. 이전 알베르게보다는 부엌이 작아 어쩔 수 없이 조리가 편한 음식을 먹기로 했다. 관리자가 없고 식사 공간이 침실과 멀리 떨어져 있어 평소와는 다르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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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라도 알베르게에서 저녁식사 피자파티 마트에서 냉동피자가격은 주로 2~5유로로 매우 저렴하다 ⓒ 임충만


마트에서 한사람에 2.5유로씩 모아서 피자 다섯 판과 햄을 사고 돌아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 알베르게에서는 이제까지 못 보던 다른 순례자들도 많이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마리와 마르코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온 디에고 등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들과 식사하면서 스페인어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다른 언어들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건배였다. 에스뗴야, 산미구엘 등 스페인 맥주를 어디서나 값싸게 먹을 수 있었고 어딜 가나 포도밭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와인이 유명한 스페인에선 식탁에 와인이 없는 날을 찾기가 힘들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많으니 어색함을 풀기 위해, 오늘 하루 노곤함을 달래기 위해 건배할 일이 많은데 오늘은 유난히 와인이 많아 건배가 잦았다.

보통 영어로 Cheers를 하지만 서로의 언어로 건배를 알려주는 경우가 생겼다. 각자 간단한 외국어를 준비해 순례길을 간다면 외국인 친구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다. 독일어는 발음이 어려워서 가르쳐주던 독일인 친구들이 가끔 내 발음을 듣고 웃곤 했다.

프랑카 : 마누엘 ~ 프로스트!~
충만 : 프로스트 ~

프랑카와 플로르는 나에게 독일어 발음을 가르쳐줬는데 내가 프로스트라고 발음할 때마다 웃곤 했다. 강하게 말하며 혀를 말면서 발음해야 했는데 하면서도 이게 맞는 건지 아닌지 나도 웃었고 그들도 웃었다.

한국어 건배
영어     Cheers            
이탈리아어     Cin cin!          
스페인어        Salud         
프랑스어        Santé!        
독일어            Prost!   
일본어           カンペイ  (건배)     
중국어          干杯 (깐뼤이)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르게 다들 '흥'이 폭발했다. 하비에르는 기분이 너무 떠서 갑자기 나가서 춤을 췄다. 한 명씩 나오라고 해서 같이 춤을 췄다. 다른 날과 다르게 오늘은 약간의 일탈을 하는 날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11시까지 신나게 놀았다. 내일 또 걷기 위해 다들 잠자리로 들기 전 성균이 형의 노래를 듣고 잠을 청하러 갔다. 마침 기타가 있었는데 성균이 형이 기타를 집어들고 숨겨져있던 실력을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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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말아요 - 배성균 잠들기 전 성균이 형이 연주를 들려줬다 ⓒ 임충만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다함께 노래 합시다
지나 간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꿨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또 내일은 어떤 길을 걷고 누굴 만날까?
덧붙이는 글 TIP 마트에서 고기를 구입할 때 원하는 부위를 쉽게 고르기 위한 간단 스페인어

목심 - neck - pescuezo
등심 - loin - lomo alto
갈비 - rib - costillar
채끝 - striploin - solomillo
안심 - tenderloin - lomo bajo
우둔 - topside / inside - cadera
설도 - butt & rump - tap contra
양지 - brisket and flank - falda
사태 - shin & shank - brazuelo
앞다리 - blade / cold - paletilla espalda


2016년 3월 12일 산토 도밍고 -> 벨로라도
오늘 예산
콜라 1유로
알베르게 9유로
아이스크림 3유로 저녁 2.50 유로
우유 본드 맥주 물 총 5유로
#산티아고순례길 #소아암 #헌혈 #순대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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