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4년, 사진가로 살기 너무 슬펐던 시간

[대선기획-100인의 편지 19] 젊은 사진가가 보내는 편지

등록 2017.04.10 18:47수정 2017.04.1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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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내가 꿈꾸는 국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권에 하고 싶은 말, 바라는 바에 대해 적어 기사로 보내주세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넘어 '이게 나라다'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습니다. [편집자말]

겨울이 끝났다고들 합니다. 춘분도 지났고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따뜻해져 갑니다. 하지만 아직 겨울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나쁜 대통령이 결국 파면되었고, '겨울 왕국'이 끝났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그 겨울왕국이 준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4년간의 겨울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주문과 함께 끝났지만, 돌이켜 보면 그 4년의(길게는 그 앞의 5년까지도) 겨울은 무척 춥고 무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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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1일, 광화문 광장 북단 세월호 추모행진이 경찰의 펜스와 최루액에 의해 저지된 이후, 세월호 유가족들이 연대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맨 앞으로 나가 있다. ⓒ 장성열


지난 4년은 참 화나고 슬픈 일이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배가 침몰하는 참사가 일어나 수백 명의 생명이 별이 되었고 눈물이 강과 바다를 이뤘습니다. 정리해고 철폐 투쟁을 하던 쌍용자동차의 '철의 노동자'들은 약속을 지키라는 말을 하기 위해 겨울비 내리는 인수위 앞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그것 뿐이던가요, 한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결국 세상을 떠나기도 했고, 경찰은 파업 중인 철도노조 지도부를 잡겠다고 언론사 건물을 쥐잡 듯 뒤졌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졸속으로 이루어지기도 했고, 학생들이 농성 중인 대학교에 수천 명의 경찰 병력이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또 강남역 10번 출구에서는 여성이 혐오범죄 때문에 사망하였지만 '여성 대통령'이라던 박근혜는 아무런 일도 없던 양 행동했습니다. 심지어 임신중단(낙태)을 처벌하고,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박근혜 정부 내에서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사진 하기 힘든, 지독했던 4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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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4일, '페미답게 쭉쭉간다' 3.8 여성의 날을 앞두고 청계광장에서 진행된 '페미답게 쭉쭉간다' 행진에서 한 참가자가 "임신을 중단할 권리" 라고 적혀 있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장성열


돌이켜 보면 지난 겨울은 참 나쁜 겨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게 된 데에는 그 겨울을 녹인 뜨거운 촛불이 참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천만 개가 넘는 촛불을 비롯해 이 길고 지난한 겨울을 끝내기 위해 싸워 온 사람들과 함께, 그 겨울과 해빙기를 그들 옆에서 묵묵히 함께 견디며 그 장면들을 담아내고 또 증언한 저널리스트들과 다큐멘터리, 르포르타주 포토그래퍼와 비디오그래퍼들이 무척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거기 조그만 숟가락이나마 얹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박근혜 정권은 참 사진 하기 힘든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카메라 너머로 많은 사람들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고, 최루액에 눈물을 흘리고, 온몸이 들려 잡혀가기도 했습니다. 사진 찍기 힘든 걸 넘어 트라우마가 생길 만큼 잔인하고 아픈 장면들이 연속되었고, 솔직히 무서울 때도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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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이 최루액(PAVA)이 섞인 물대포를 맞으며 차벽을 밧줄로 끌고 있다. ⓒ 장성열


카메라는 물론 옷과 몸이 차가운 물대포와 매캐한 최루액에 말 그대로 절여진 상태로 집에 돌아와 사진을 리뷰하고 정리하다 보면 머릿속에서 그날의 기억들이 지나갈 때도 많았고, 그 사진들을 인터넷이나 지면에 실을 때면 "내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용하는 것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다가 연행된 적은 없었지만 경찰서에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조사를 받으러 간 적도 있었고, 거기서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법정에서 판사님이 판단하실 것이다"라는 형사의 으름장을 속으로 씹어 삼키기도 하였습니다. 검찰 조사를 받은 적도 있었고 말입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나는 사진가다"라는 (어쩌면 조금은 오글거리는) 사명감 비슷한 것으로 셔터를 누르고 그 현장을 증언하며 지내 왔습니다. 최근 파면의 결정적 계기가 된, 광장에서 타오르는 촛불을 보며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하였지만 희망을 보았고, 겨울이 끝나가는 것을 조금씩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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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6일, 청운동사무소 앞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경찰 병력이 "내려와 박근혜" 피켓을 들고 있는 시민을 고착시키고 있다. ⓒ 장성열


어쨌든 겨울은 끝났고, 대선이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될지, 그 사람이 어떤 계절을 불러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더 혹독한 겨울이 올 수도, 아니면 봄이 완연해져 꽃이 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디 희망합니다. 부당하게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나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사람, 국가에 의해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비극적인 사건을 촬영하는 일이 줄어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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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6일, 서울대병원 국가폭력의 피해자 백남기 농민이 세상을 떠난 다음날인 2016년 9월 26일 새벽, 연대하는 시민들이 경찰의 영안실 침탈을 막기 위해 병원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다. ⓒ 장성열


저는 지난 4년 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이 최루액과 물대포를 온몸으로 막아내던 광화문,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던 날의 종로와 돌아가신 날의 서울대병원,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지켜내려 했고 지금은 꽃밭으로 바뀌어 버린 대한문 분향소, 용산참사 유가족이 겨울비를 맞으며 "진상조사 약속 이행"을 외치던 삼청동 인수위원회 앞, 그리고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핸드폰 플래시를 들고 행진하던 이화여대를 비롯해 박근혜 정부의 국가폭력이 행해지는 곳들에 갔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나마 그 현장의 사진들을 '증언'으로 남기려 했습니다. 그곳에는 늘 다른 사진가들이나 기자들도 함께였고, 저와 그들은 함께 최루액과 물대포를 맞아 가며, 때로는 카메라가 망가지고 몸이 다치면서도 그 장면들을 남겨왔습니다.

'전쟁 사진가(War Photographer)'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보도사진가 제임스 낙트웨이는 "나는 증인으로 존재해왔고, 이 사진들은 내 증언이다. 내가 기록한 이 사건들은 잊혀서는 안 되고, 절대 반복되어서도 안 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 현장의 모두가 그렇겠지만, 현장의 기자, 저널리스트, 다큐멘터리와 르포르타주 작가, 사진가, 비디오그래퍼들은 그 현장의 '증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사와 -사진, 영상, 글 같은- 작업물들은 그 증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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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7일, 날아가는 풍선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이틀 앞둔 2017년 1월 7일,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이 박근혜 퇴진과 세월호 진상규명을 희망하는 의미로 날린 노란색 풍선들이 하늘로 날아가고 있다. ⓒ 장성열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적어도 지난 4년, 그 전의 5년, 또 그 이전의 시대들처럼 슬프고 비극적인, 또 상처로 남는 사건들을 촬영하게 되는 일이 조금씩이나마 줄어들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진가, 기자,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앞으로도 광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그 현장을 증언으로 남기고 있을 것입니다. 동료와 선후배 사진가와 작가 여러분, 그리고 겨울을 함께 견딘 촛불,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의 평화를 빕니다. 함께 봄을 맞는 광장에서 뵙겠습니다.
#사진가 #저널리스트 #대선 #박근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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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글로 기억하는 정치학도, 사진가. 아나키즘과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자리(Frontier) 라는 다큐멘터리/르포르타주 사진가 팀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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