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에 고속도로? 선진국에선 상상도 못 할 일"

대흥주민들이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

등록 2017.03.29 10:21수정 2017.03.29 11:42
0
원고료로 응원
a

대흥면 전경이다. 바로 마을 뒷편 봉수산 자락 아래로 서부내륙고속도로가 통과할 예정이다. ⓒ 이재환


"대흥 향교와 동헌, 임존성 등 대흥 지역 일대의 문화제와 슬로시티를 지켜야 할 의무와 명분이 있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 주민들은 지난 2014년부터 4년간 '서부내륙고속도로 노선 반대 투쟁'을 벌여오고 있다. 주민들이 오랜 기간 국가를 상대로 '투쟁'을 벌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 주민들은 이 지역이 지닌 문화적 자산과 수려한 자연환경을 동력삼아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듯 보였다.     

실제로 충남 예산군 대흥면은 예당저수지와 봉수산 휴양림과 수목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동서리 대흥면사무소 주변에는 동헌(옛 대흥현)과 향교, 임존성 등의 문화재도 산재해 있다. 물론 대흥은 '의좋은 형제 이야기'의 실존 인물이 살았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대흥면은 빼어난 자연환경과 문화재 덕에 지난 2009년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로 인정(인증) 받았다. 서부내륙고속도로는 바로 이 지역을 통과할 예정이다. 하지만 대흥 주민들은 서부내륙고속도로 노선이 문화재에 인접해 지나는 것은 물론이고, 봉수산 휴양림과 수목원 앞을 '무대책'으로 가로 지른다고 성토했다. 

이와 관련해 윤중섭 서부내륙고속도로 노선변경 투쟁위원회 수석위원장은 "고속도로의 노선이 봉수산 휴양림의 주차장을 가로 질러 지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또 서부내륙고속도로가 기존 노선안 대로 착공될 경우, 마을로부터 봉수산 휴양림과 수목원은 분리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종열 대흥면 서부내륙고속도로반대추진위원장은 "봉수산 수목원은 충남에서도 잘 꾸며진 수목원으로 손꼽힌다"며 "그 앞을 고속도로가 막아 서고 있으면 누가 이곳을 보러 오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정 위원장은 이어 "관광객들은 대흥면의 자연환경을 보러 오는 것이지 고속도로나 휴게소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a

대흥면사무소앞에는 '의좋은 형제'를 기념하는 동상이 있다. ⓒ 이재환


a

동화처럼 전해 내려온 '의좋은 형제의 이야기'가 실존 인물을 다룬 역삭적 사실이란 점을 증명하는 기록이 있다. ⓒ 이재환


"슬로시티에 고속도로 내는 건 한국이 유일"


애써 가꾼 슬로시티 마을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윤중섭 수석위원장은 "고속도로 노선이 슬로시티 1.2.3코스 모두를 가로 지르고 있다"며 "마을에서 애써 가꾼 슬로시티 사업도 완전히 망가질 지경"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대흥면 박효신 예산대흥슬로시티 사무국장은 "슬로시티 선정으로 인해 다 죽어가던 마을이 겨우 되살아났다"며 "고속도로가 착공되는 순간 슬로시티 마을도 끝이다"라고 말했다.

박효신 국장은 이어 "슬로시티 본부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슬로시티에 고속도로를 내는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선진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전국의 슬로시티는 전주, 신안, 하동, 예산 등 11곳이다. 예산군 대흥면은 전국에서 여섯 번째로 슬로시티로 인정 받았다. 충남에서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은 예산군 대흥면이 유일하다.   

예당저수지 수몰 피해 겪은 대흥 주민들

a

예당저수지와 봉수산을 끼고 있는 대흥면은 빼어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 이재환


대흥면 주민들이 똘똘 뭉쳐 서부내륙고속도로를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대흥면 주민들은 이미 수십 년 전 이미 마을이 반으로 갈라지는 고통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예당저수지는 지난 1958년 착공해 1964년에 완공됐다.

이 과정에서 7000여 명에 달하는 대흥면 주민들은 터전을 잃고 마을을 떠났다. 한때 만 명 가까운 인구를 보유했던 대흥면은 지금은 인구도 1천8백명으로 크게 줄었다. 

이와 관련해 강보희(88) 옹은 "예당저수지 준공 당시 대흥 주민들은 쥐꼬리만큼의 보상금을 받고 마을을 떠났다"며 "법정리는 아예 지도에서 사라졌다"고 전했다. 대흥 주민들에게 마을이 반으로 갈라진다는 것은 그만큼 '아픈 기억'이다.  

실제로 대흥면 주민들은 예당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양 갈래로 나뉘어 있다. 면소재지가 있는 동서리에서 예당저수지 반대편에 있는 금곡리를 가려면 저수지를 반 바퀴나 돌아서 가야 한다. 참고로 예당저수지의 둘레는 40여 킬로미터나 된다.

때문에 대흥면 주민들은 '마을이 또다시 양분되고, 실익도 없는데다, 자연환경까지 훼손하는 고속도로 건설'에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대흥면 #서부내륙고속도로 #슬로시티 #예산 #예당저수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4. 4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