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마음사전, 기획의도는 좋지만

우리말 국어사전 내는 이가 본 <아홉 살 마음 사전>... 그림은 곱지만 내용은 아쉬워

등록 2017.04.04 17:23수정 2017.04.0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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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시인이 아홉 살 어린이한테 '마음을 나타내는 말'을 찬찬히 알려주고 싶은 뜻으로 <아홉 살 마음 사전>(창비 펴냄)을 써냅니다.

이 책은 모두 여든 가지 낱말을 놓고서 그림 한 점을 붙이고, 그림에 맞는 이야기를 가볍게 한두 줄 붙입니다. 이런 뒤 낱말뜻을 박성우 시인 나름대로 붙이고는, 이 낱말뜻을 한결 쉽고 부드러이 헤아려 볼 만한 이야기를 세 가지씩 더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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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창비

'마음 사전'이라는 이름으로 엿볼 수 있듯이, 동시를 쓰는 어른이 어린이 마음결을 살피면서 엮은 사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걱정스럽다] 노래를 못하는데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할 때 드는 마음
[고맙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나도 빌려줄게." 짝꿍이 지우개를 빌려줄 때 드는 마음
[궁금하다] 아빠가 싼 여행 가방을 열어 보고 싶은 마음
[사랑하다] 동생에게 내 목도리를 벗어 둘러 주는 마음. "괜찮아. 형은 별로 안 추워."

여느 사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이야기를 그림하고 잘 맞물려 놓은 <아홉 살 마음 사전>이지 싶어요. 아마 아홉 살 어린이는 이 책에 깃든 그림만 보면서도 '마음말(마음을 밝히는 말)'을 환하게 알아채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때에 어느 낱말을 쓰면 좋을는지 이끌어 주고, 아이들이 학교 안팎에서 겪는 여러 가지 일을 차근차근 보여주어요.

[서럽다] 언니가 말하는 것은 다 사 주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하나도 사 주지 않아
[조마조마하다] 오빠가 풍선을 크게 불었어. "그만 불어. 터질 것 같아서 못 보겠어."
[좋다] 아빠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듣다 보면 스르륵 잠이 잘 와
[찡하다] 잃어버린 강아지를 이틀 만에 찾았어

잠자리에서 아버지가 아이한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면 '좋다'고 하는 모습이라든지, 풍선을 불면 터질 듯해 '조마조마하다'고 하는 모습이라든지, 잃은 줄 알던 강아지를 이틀 만에 찾아 '찡하다'고 하는 모습은 여러모로 애틋합니다.

그런데 이 <아홉 살 마음 사전>은 그림으로만 이쁘장하게 보여주는 '마음말 사전'이지 않아요. 그림을 시원시원 집어넣고 말을 줄이면서 한결 돋보이는 엮음새입니다만, 바로 '말'을 다루는 '사전'이기 때문에, 말을 제대로 밝히고 엮어내어야 비로소 제값을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여든 가지 낱말을 가볍게 다룬 자그마한 사전인데, 이 작은 사전은 매우 안타깝게도 숱한 올림말이 서로 겹치거나 엉키는 '돌림풀이·겹말풀이'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낱말 하나를 그냥 따로 보려고 하더라도 뭔가 아리송한 대목이 자꾸 불거져요. 낱말을 놓고 세 가지씩 붙이는 보기글은 나쁘지 않습니다만, 무엇보다 낱말풀이가 뒤죽박죽입니다. 가장 뒤죽박죽인 대목은 '고맙다·기쁘다·좋다·반갑다' 같은 낱말 꾸러미입니다.

[고맙다] 남이 친절하게 대해 주거나 도움을 주어서 흐뭇하고 즐겁다
[기쁘다] 바라는 일이 이루어져 기분이 좋고 즐겁다
[신나다] 재미있고 즐거운 기분이 들다
[유쾌하다] 즐겁고 상쾌하다
[좋다] 즐겁고 유쾌하다
[즐겁다] 흐뭇하고 기분이 좋다
[통쾌하다] 일이 뜻대로 이루어져 즐겁고 유쾌하다
[행복하다]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다
[흐뭇하다] 마음에 들어 기분이 좋다
[반갑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거나 바라던 일을 이루어 즐겁고 기쁘다

'고맙다'를 "흐뭇하고 즐겁다"로 풀이하는데, '흐뭇하다 = 기분이 좋다'요, '즐겁다 = 흐뭇하고 기분이 좋다'로 풀이합니다. 서로 엉키는 돌림풀이가 되면서 겹말풀이입니다. 여기에 '기쁘다'를 "좋고 즐겁다"로 풀이하면서 또 엉키지요. '신나다'도 '재미'하고 '즐거운'으로 풀이하니, 이 대목에서도 엉키고요. 그리고 '유쾌·통쾌' 같은 한자말을 보면, '유쾌하다 = 즐겁고 상쾌하다'인데, '통쾌하다 = 즐겁고 유쾌하다'로 풀이해서 서로 얽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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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창비


[미안하다] 마음이 편하지 않고 부끄럽다
[부끄럽다] 잘못을 저질러서 창피하거나 용기가 없어 수줍다
[창피하다] 떳떳하지 못한 일로 몹시 부끄럽다

'미안하다'는 '부끄럽다'로 풀이하고, '부끄럽다'는 '창피하다 + 수줍다'로 풀이하며, '창피하다'는 '부끄럽다'로 풀이합니다. <아홉 살 마음 사전>에서는 '수줍다'를 안 다룹니다만, 이 세 낱말은 서로 얽히는 돌림풀이입니다.

[쓸쓸하다] 외롭고 슬프다
[외롭다] 혼자 있거나 기댈 곳이 없어 허전하고 쓸쓸하다

'쓸쓸하다'를 '외롭다'로 풀이하다가, '외롭다'를 '쓸쓸하다'로 풀이하면 어찌해야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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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창비


[설레다] 마음이 들떠서 두근거리다
[철렁하다] 크게 놀라 가슴이 설레다

'설레다·두근거리다'는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낱말입니다. '두근거리다'가 어떤 마음인가를 다루든지 말풀이를 고쳐야지 싶어요. 그리고 '철렁하다'를 풀이하면서 '설레다'라는 낱말을 쓰면 또 엉켜 버립니다.

<아홉 살 마음 사전>이라는 작은 어린이 사전을 놓고서 아쉬운 대목을 따져 보았습니다. 상냥하고 살가운 그림이 보기 좋은 책이요, 쉽고 푸근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하는 얼거리가 반가운 책입니다. 그런데 그림이나 얼거리가 좋더라도, '말을 다루는 책'인 사전인 터라, 무엇보다 말을 슬기롭고 알맞으면서 똑똑히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여든 가지 낱말을 다룬 조그마한 어린이 사전인데, 막상 이 여든 가지 가운데 거의 모든 낱말이 서로 얽히거나 겹치거나 빙글빙글 뜻풀이가 돌고 도는 얼거리라 한다면, 사전으로서 제구실을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부디 글쓴이하고 엮은이 모두 다시금 머리를 맞대고 슬기를 가다듬어서 어린이 눈높이와 살림살이에 걸맞게 튼튼하고 알찬 이야기를 새롭게 꾸며 주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덧붙이는 글 <아홉 살 마음 사전>(박성우 글 / 김효은 그림 / 창비 펴냄 / 2017.3.10. / 11000원)

아홉 살 마음 사전

박성우 지음, 김효은 그림,
창비, 2017


#아홉 살 마음 사전 #박성우 #김효은 #한국말사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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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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