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박근혜', 소신을 기대한다

[게릴라칼럼] 지지자들에게 "앞으로 열심히 활동해 달라"던 박근혜, 끝까지 당당하시길

등록 2017.03.30 15:30수정 2017.03.3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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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사상 처음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뇌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아무 말이 없었다. 특유의 환한 웃음기도 사라졌다. 삼성동 자택을 나서며 차에 올라타기 직전, 지지자들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어 보인 순간은 고작 몇 초였다. 윤상현‧이완영 의원 등 배웅을 한 '친박'들의 얼굴도 굳어 있긴 마찬가지였다.

법원으로 들어서는 얼굴은 한층 더 굳어졌다. 역시나 아무 말이 없었다. 포토라인도 무시했다. 어김없이 '과잉 경호' 지적이 일었다. 청와대 경호원들을 향한 기자들의 원성이 빗발쳤다. 이 일련의 상황에 대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역시 굳게 입을 닫았다. 소란을 피운 이들은 수천여 명의 경찰을 동원시킨 삼성동 자택 앞 열성 '박근혜 지지자'들 뿐이었다. 

'피의자 박근혜'씨가 예정대로 3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출두했다. 검찰 출석 때보다 훨씬 더 어두운 표정이었다. "송구스럽다"와 같은 짧은 소감조차 생략했다. 긴장했음이 얼굴에 역력했다. 구속 여부를 결정 짓는 법원 출두를 맞아서야 자신에게 닥친 상황의 긴급성을 제대로 인식한 걸까. 분명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이 며칠 전까지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여유(?)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끝까지 지지자들 격려했던 전직 대통령 박근혜와 '친박'의 로맨스

'보내주신 편지와 선물 잘 받았고 감사하다.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해주시길 바란다.'

지난 28일, 박 전 대통령의 팬클럽 '근혜동산'의 김주복 회장은 공식 커뮤니티 카페에 "대통령님께서 감사의 말씀을 전해 오셨습니다"란 제목을 글을 올렸다. 김 회장은 이 글에서 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청구된 27일 오후 위와 같은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 받았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해 주시길 바란다"는 표현을 두고 소셜미디어와 포털 댓글엔 비난 섞인 해석이 분분했다.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박 전 대통령이 아직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반응부터 연일 삼성동 자택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지지자들을 독려하는 것이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김주복 회장은 이에 아랑곳없이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시각 대통령님 삼성동 사저"라고 밝힌 게시물을 올리며 "엄청난 애국국민들께서 모여들고 있다, 힘이 난다"고 적었다. 그는 앞선 게시물에서 "지난 2월 2일 대통령님의 65회 생신 때 전국의 회원 가족들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축하 꽃바구니를 청와대로 전달했는데 당시 사회비서관을 통해서 전화로 감사의 말씀을 전해 오셨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 정국에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는 애정을 표현하고 꾸준하게 관리해 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직후 '친박' 지지자들이 벌인 '탄핵 불복' 집회 도중에 세 명이 사망한 불상사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은 오늘까지 일언반구도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이 '무시'로 일관 중인 다수 국민들은 구속 수사를 촉구하면서도 어떤 허탈감을 맛보는 중이다.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하는 전직 대통령, 국정 혼란과 경제안보외교 등 나라꼴을 망쳐 놓은 무책임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죄송하다"도 아닌 "송구하다"로 일관하는 전직 대통령의 무책임에 허탈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 와중에, 기어코 자유한국당 의원 80명과 무소속 2명은 29일 법원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를 주도한 자유한국당 조원진 의원은 불구속 수사가 필요한 사유로 "전직 대통령 구속이 불러올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파장을 감안"하고 "국민 대통합"과 "무리한 형평성",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 없음"을 들었다. 박 대통령의 바람대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환영한다. 이들이 벌이는 소란과 말의 성찬은 결국 다수 국민들의 반감을 높이고, 스스로 좌초를 앞당기는 행위일 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피의자 박근혜'씨는 국민들을 향해 침묵을 지켰다. 그 침묵은 이제껏 '혐의 전면 부인'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것 역시 환영한다. 부디 검찰의 A4용지 92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적시된 13가지 범죄 혐의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하시라.

구속 여부와 관계 없이, 끝까지 소신 펼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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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집 앞에 일찌감치 지지자들이 모여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김성욱


"1. 무죄판결 또는 친박결집·재기를 기대하면서 범죄를 전면 부인하면, 구속된다. 구속이 이루어지면 관련 공범들이 자포자기하여 더 많이 분다. 그리하여 1년 안에 유죄판결이 확정되고 중형이 내려진다.
2. 혐의를 상당 부분 인정하고 반성하면, 구속을 피할 수도 있다. 그러면 정치적으로 끝이 나고, 불구속재판이라 재판이 지연될 수 있으나 결국은 유죄 판결이 난다. 형은 상대적으로 가벼워진다.

진정 피의자를 위하는 변호인이라면 2.를 택해야 한다. 무죄판결이라는 법적 목표도 친박결집·재기라는 정치적 목표도 달성하기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1.을 선택하는 것은 피의자에게 최고의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피의자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사로잡혀 있고 캐릭터도 매우 특이하며, 변호인들이 골수친박 '(준)정치인'인지라, 합리적 선택이 이루어질지 모르겠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피의자 박근혜'씨가 법원에 출두하던 30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은 '피의자 박근혜의 딜레마'란 글이다. 영장실질심사를 벌이는 판사 앞에서 범죄를 전면 부인할 수도, 인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을 쉽게 풀어 설명한 것이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인 손범규 변호사는 어제(29일)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윤준호입니다>에 출연해 "구속은 어디까지나 원칙이 아니다"라며 '불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강제 수사나 압수수색, 구속을 시켜야만 범죄 입증이 가능토록 하기 위해(가능할 때) 극히 예외적으로 구속을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범죄) 증거가 차고도 넘치는데 무슨 구속을 할 필요가 있는가. 증거가 차고 넘치는 게 맞다면 구속의 필요성은 그만큼 없다"고 주장했다.

손 변호사의 이 같은 주장은 검찰의 구속영장 발부의 부당함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나온 발언이다. 꽤나 흥미롭다. 그의 주장은, 검찰은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다수 제시했고, 그러니 구속까진 불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논리는 자가당착에 가까워 보인다. 법원이 그의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피의자 박근혜'씨는 불구속 상태로 풀려날 순 있다. 그러나 그것은 법원이 검찰 측이 제출한 증거들이 증거 능력을 대다수 인정받았을 때야 가능한 얘기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조국 교수가 언급한 '피의자 박근혜의 딜레마' 중 2번의 경우를 상정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이제껏 혐의를 강하게 부인해 왔던 박 전 대통령과 변호인단은 일단 구속을 피하기 위해 혐의를 상당 부분 인정할 것인가.

아니다. 지지자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종교와도 같은 믿음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검찰과 언론 등에 "엮였다"던 자신의 평소 소신을 끝까지 펼쳐야 할 때다. 비록 국민들에게 무책임했던 전직 대통령이었을지언정 지지자들에게는 일관성을 지닌 '정치인 박근혜'로 남아야 옳다. 31일 자정 이후 결정될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여부에 쏠린 국민적 관심에 부응(?)하는 유일한 길이 바로 그것이다.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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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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