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풀어먹이고 나면 좋은 일만 있어야죠"

경기안택굿보존회 봄 맞이굿이 열리던 날

등록 2017.04.04 14:31수정 2017.04.0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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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주 수원 지동에 거주하는 고성주씨가 굿을 하고 있다 ⓒ 하주성


'맞이굿'이란 진적굿이라고도 부른다. 전안(신을 모셔놓은 신당)에 수북하게 쌓아 올린 각종 과일이며 전, 나물, 다식 등 어림잡아 계산해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갔을 듯하다. 거기다가 소갈비며 우족 등 이렇게 큰 굿과 상차림을 보기가 쉽지 않다. 봄, 가을로 만나게 되는 이 굿상의 주인공은 바로 경기안택굿보존회장 고성주(남, 63세)씨이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거주하는 고성주씨는 신내림을 받고 무격(巫覡)이 된 지 44년째이다. 내림을 받고 난 후 이렇게 봄, 가을로 맞이굿을 연지도 벌써 43년이 흘렀다. 고성주씨의 전안은 우리나라 무속인들의 전안 중에서는 가장 넓다고 한다. 그 전안 가득 제물이 쌓이고 양편으로도 쌓았다. 늘 이렇게 많은 재물을 준비하는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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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감굿 초청되어 온 무당이 굿을 하고 있다 ⓒ 하주성


고성주씨는 국내에 몇 명 남지 않은 단골판을 가진 무속인이다. 지금도 어림잡아 200집 정도의 판을 갖고 있다. 처음 이 집을 찾는 사람들은 당황해 하기도 한다. 고성주씨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고성주씨를 보고 '아버지'라는 호칭을 쓰기 때문이다. 고성주씨 역시 남자들은 '아들'이라 부르고 여자들은 '며느리'라 부른다.

이 집을 드나드는 신도들은 대개 대물림 신도들이다, 고성주씨가 내림을 받고 처음으로 무속인의 길을 시작할 때부터 드나든 신도들이 많다. 또 신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신도들까지 있다. 이 집에서는 '아버님'이나 '아버지'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운 것도 고성주씨가 정신적인 부모이기 때문이다. 하기에 고성주씨의 판이 깨지지 않는다.

아침 6시부터 시작한 맞이굿

4월 3일은 음력 3월 7일이다. 고성주씨의 맞이굿은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차례씩 열린다. 봄맞이는 음력 3월 7일, 가을맞이는 음력 10월 7일에 열린다. 하기에 이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그 날이 되면 알아서 찾아온다. 매년 되풀이하는 굿이기 때문에 굳이 연락을 하지 않아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 6시에 마당에 제당맞이 상을 차려놓고 굿이 시작된다. 제당맞이란 천계에 있는 신령들을 맞아들이는 제차이다. 제당맞이를 마치고나면 아침상을 받는다. 흔히 '상다리가 휘어진다'라는 표현이 딱 맞는다. 그럴 정도로 푸짐한 상이 차려진다. 그 많은 찬을 모두 고성주씨가 직접 조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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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대감 쾌자를 걸친 신도들이 모두 마당으로 나와 함께 굿을 한다 ⓒ 하주성


아쟁(해금), 대금, 피리, 장고, 징, 바라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이 한 편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굿이 시작된다. 맞이굿은 천궁맞이로 시작하는데, 이날 고성주씨 집에 초청되어 온 무속인들은 모두 6명이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일을 하며 굿거리에도 참여한다. 천궁맞이를 마치고나면 초청되어 온 무속인들이 돌아가면서 굿을 하는 것이다.

굿은 하루 종일 이어진다. 아침부터 시작한 굿이 끝나는 시간은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계속된다. 예전에는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요즈음은 주변에서 말들이 많아 10시 정도에 맞이굿을 마친다. 맞이굿에서 가장 흥겨운 굿거리 제차는 역시 텃대감굿이다. 텃대감을 놀 때는 마당에 상을 펴고 그 위에 갈비와 우족 등을 진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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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대감 집을 한 바퀴 돌고난 후에는 지하연습실에서 한바탕 춤을 추며 뛰어논더 ⓒ 하주성


흥겨운 굿판, 액은 물리고 복은 받아가고

전안 앞방에는 4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맞이굿을 할 때 사람들은 이른 시간부터 찾아왔다가 돌아가곤 한다. 하기에 하루에 보통 250~300명 정도가 온다고 한다. 음식도 늘 300인분을 준비한다. 그 음식준비를 하는데도 일주일이 걸린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눈다. 음식 또한 정갈한 것이 먹는 사람마다 '맛있다'고 한다.

굿은 쉬엄쉬엄 진행된다. 하루 종일 굿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성주씨의 맞이굿에서 정점은 텃대감굿이다. 마당에 상을 펴고 갈비와 우족을 진설한다. 신도들은 자신의 쾌자를 입고 나와 갈비며 우족을 하나씩 들고 집을 한 바퀴 돈다. 그리고는 지하연습장으로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온통 난리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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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낭굿 고성주씨의 신딸 이유진이 서낭굿을 하고 있다 ⓒ 하주성


얼굴에는 꺼멓게 칠을 하고 장단에 맞춰 늘어지게 춤을 춘다. 고성주씨의 맞이굿이 대단하다는 것은 이런 놀이판에서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굿판을 찾아 온 모든 사람들을 "잘 풀어먹인다는 것"이다, 그래야 굿판을 찾아온 사람들이 복을 듬뿍 받아간다고 한다. 밤 10시가 지나 끝난 맞이굿. 전안 가득히 차려졌던 제물은 모두 봉지에 담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그 음식까지 먹어야 그 해 맞이굿을 잘 치렀다고 한다. 봄맞이가 끝나기도 전에 가을맞이를 기다리는 것은 그렇게 푸짐한 나눔이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e수원뉴스와 티스토리 블로그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맞이굿 #고성주 #수원 지동 #봄맞이 #진적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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