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일엔 편지를 받고 싶어"

[부모님의 뒷모습]

등록 2017.04.06 14:33수정 2017.04.06 14:3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생일을 하루 앞두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을 꺼냈다.


"엄마 생일 때 너희들이 끓여준 미역국 먹고 싶어."

a

아이들이 보낸 편지 ⓒ 강정민


올해는 마침 내 생일이 토요일이었기에 가능할 듯싶었다. 1번 대학생, 2번 고등학생, 3번 초등학생을 두었지만 이런 말을 꺼낸 건 올해가 처음이다. 

다 저녁때 외출한 1번에게 전화가 왔다. 국거리를 얼마나 사야 하는지 묻는다. 국거리를 사 온 1번이 다시 묻는다.

"엄마, 미역국 어떻게 끓여?"
"참기름에 고기를 볶다가 익으면 미역도 넣어 볶아. 그리고 물 넣으면 돼. 잘 모르면 인터넷 찾아보고."

잠자리에 들면서도 과연 1번이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 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다음날 저녁에 1번은 해외로 출국하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해외봉사 활동을 열흘 일정으로 갈 예정이었다. 가방 싸느라 바쁠 1번이 과연 미역국을 끓일 수 있을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1번이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는 것 같다. 내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기특한 녀석! 20년간 키운 보람이 있다. 나와보니 1번 얼굴이 벌겋고 이마엔 땀방울이 배어있다.

"엄마 생각보다 맛있게 끓여진 거 같아요. 드셔 보세요. 아무래도 난 요리에 재능이 있나 봐요."

평소와 달리 1번이 호들갑스럽다. 간을 보았다. 맛나다. 하긴 자식이 처음으로 끓여 준 미역국인데 어찌 맛이 없겠나? 식구들과 1번이 끓여준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써 준 편지를 받았다. 이렇게 내 생일에 편지를 받는 것은 작년부터 시작된 일이다.

작년 내 생일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생일 선물 대신 편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엄만 편지를 받고 싶어. 선물은 됐고. 돈 안 들고 얼마나 좋냐?"
"그렇긴 하지."

아이들도 선물 대신 편지 주는 게 더 좋다고 했다. 물론 내 생일이 한 달이 남짓 남았을 때 한 말이다. 내 생일이 가까워지자 아이들이 조금씩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생일 당일이 되자 아이들은 편지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1번은 편지 대신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난 거절했다. 둘째도 계획 수정을 요구했다.

"엄마, 편지 꼭 써야 돼? 카드는 안 돼? 아~ 몰라 나 너무 바빠 편지 쓸 시간 없어."
"엄마는 편지가 받고 싶어. 그리고 선물 대신 편지 주는 건 너희들도 분명히 동의했어."

나는 꼭 편지가 받고 싶었다. 돌이켜보니 두고두고 마음에 깊이 남는 건 아이들이 써 준 편지였기 때문이다. 생일 저녁이 되도록 아이들이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내가 너희 셋 키우느라 20년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거 하나를 못 써주냐?"

협박도 했다가 회유도 했다.

"편지 한 장 써주면 일 년을 편하게 지내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니?"

아이들과 편지 한 통을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펼치는 내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남편이 나섰다.

"당신은 그렇게까지 하면서 편지를 받고 싶어? 치사하게 굴지 말고 애들 그만 괴롭혀."

옆에 있던 아이들은 남편의 말을 듣고 반가워했다. 그날 결국 난 편지 한 장도 받지 못했다.

다음 날은 엄마들 저녁 모임이 있었다. 맥주 한잔하면서 속상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12시쯤 귀가했더니 집 안 청소가 다 되어 있었다. 1번이 주방에서 나온다. 부엌 정리까지 싹 했다.

"엄마 편지 여기 있어요."

편지 못 받을 줄 알았는데 1번이 편지를 건넸다. 생일이 하루 지났지만 그래도 기뻤다.  3번 편지부터 읽었다.

"엄마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 돈이 많이 없어 선물은 못 샀어요. 죄송해요. 엄마가 집에 없으면 심심해요."

1번 편지도 있는데 2번 편지만 없었다. 왜 2번 편지가 없냐 물었다. 2번이 답했다.

"엄마, 내가 썼는데 형이 다시 쓰라고 하잖아. 그래서 버렸어."

웃음이 나왔다. 언제나 정석대로 하려는 1번과 그걸 답답해하는 2번.

2번 방에 들어가니 바닥에 구겨진 종이가 있었다. 내게 주려고 쓴 편지가 맞았다. 손으로 정성껏 폈다. 아무래도 1번이 동생들을 편지를 쓰라고 닦달을 한 모양이었다. 남편이 아이들이 보낸 편지를 읽었다. 남편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야 너희들 아빠 생일 때도 편지로 줘. 알았지?"
"흥 당신 뭐야? 왜 나 따라 해. 언제는 나더러 애들 괴롭힌다고 하더니."
"좋네. 생일 선물로 편지로 받는 게."

올해도 아이들에게 편지 선물을 받았다. 아이들이 써 준 편지를 읽고 나선 친정에 전화를 걸었다. 친정 부모님 모두 팔순이 넘으셨다. 아버지가 받으신다.

"아버지 오늘 제 생일이에요."
"그래? 정민이 오늘 생일인데 그것도 몰랐네?"
"낳아주시고 길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쑥스럽지만 준비한 말을 했다. 엄마에게도 쑥스러운 그 말 하나를 건네는데 괜히 목구멍이 콱 막힌다. 단 한 문장 안에는 길고 긴 부모님의 젊음이 세월이 녹아있다. 후루룩 머릿속에 어릴 적 일들이 무성영화 화면처럼 빠르게 지난다. 엄마도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말을 잇지 못하시더니 간신히 "고맙다"는 한마디를 건네신다.

그러고 보니 내 자식들에게는 악착같이 받아 낸 그 귀한 편지를 성인이 되고선 부모님께는 참 안 써 드렸다는 생각이 난다. 환갑 때, 칠순 때 딱 두 번 써 드렸을 뿐이다. 이번 부모님 생신부터는 현금 말고도 편지도 꼭 드려야겠다. 난 내 자식들보다 철이 늦게 드는 자식이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부모님 #편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특혜 의심' 해병대 전 사단장, 사령관으로 영전하나
  2. 2 "윤 대통령, 달라지지 않을 것... 한동훈은 곧 돌아온다"
  3. 3 왜 유독 부산·경남 1위 예측 조사, 안 맞았나
  4. 4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5. 5 창녀에서 루이15세의 여자가 된 여인... 끝은 잔혹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