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농부, 도시농부는 파종하고 개구리는 '펄쩍'

[포토뉴스] 은평구 주말농장 '향림도시농업체험원' 개장식 풍경

등록 2017.04.10 14:12수정 2017.04.1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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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림도시농업체험원 개장식은 풍물패 길놀이로 시작됐습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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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패의 뒤를 따르는 도시농부 엄마와 어린이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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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개장식에 참여한 어린농부들은 텃밭 농사보다 노는 게 그저 즐겁습니다. ⓒ 조호진


봄, 봄, 봄이 왔어요. 산과 들뿐 아니라 북한산 큰 숲에 둘러싸인 은평구 '향림도시농업체험원'(이하, 도시농업원)에도 봄이 오면서 텃밭을 분양받은 도시농부들이 기지개를 폈어요. 봄볕에 따뜻해진 땅에선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와 두꺼비들이 흙 밖으로 뛰어 나와 놀란 눈빛으로 펄쩍펄쩍 뛰고 개구쟁이 어린농부들은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봄, 봄, 봄이 왔으니 파종을 해야지요.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 은평경찰서 뒤편 야트막한 동산 아래에 위치한 2만5천m² 규모의 도시농업원이 지난 8일 개장했습니다. 도시농업원은 서울시 땅으로 은평구(구청장 김우영)가 위탁 관리하고 'S&Y도농나눔공동체'(대표 문대상)가 위탁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시농부의 꿈을 키워주는 텃밭 분양은 해가 갈수록 경쟁률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5.5대1이었는데 올해 일반텃밭 경쟁률은 6대1이었다고 합니다.


은평구는 일반텃밭 96두락, 공동체텃밭 30두락, 배려텃밭 84두락 등 모두 210두락을 분양했습니다. 1두락은 10㎡입니다. 일반텃밭은 은평구에 주소가 등록된 개인, 공동체 텃밭은 사회복지시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학교 등의 단체, 배려텃밭은 장애인, 다문화가정, 다둥이, 차상위계층 등에게 분양합니다. 3월 19일부터 11월 30일까지 경작할 수 있고 사용료는 1두락에 3만 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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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농부 아린(3)이가 상추에 물을 뿌리고 있습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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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아어린이집 세 아기농부. ⓒ 조호진


응암동 성아어린이집은 유아반 39명의 몫으로 공동체 텃밭을 분양 받았는데 텃밭 팻말 중에서 성아어린이집 팻말이 가장 예뻤습니다. 민효경 원장은 이날 "아이들의 생태교육을 위해 텃밭을 분양 받았다"면서 "도시농업전문가인 멘토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25회에 걸쳐 텃밭 수업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파종은 아기 농부 아린(3)이 손에서 시작됐습니다. 엄마와 함께 상추 모종을 심은 아린이는 앙증맞은 물뿌리개로 '상추야, 상추야 쑥쑥 자라!'라고 연신 물을 주었습니다. 고성(5)이와 상민(5)이는 상추 모종이 비바람에 뽑히지 말라고 고사리 손으로 흙을 다져주었습니다. 성아어린이집 텃밭에 심긴 상추 등의 야채는 아기 농부들의 정성어린 손길에 쑥쑥 자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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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을 존중해야한다고 강조하는 혜량 스님.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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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의 자연환경에 반했다는 다인(5)이와 다인이 아빠. ⓒ 조호진


"은평구는 자연 속의 도시입니다. 자연환경이 좋다보니 은평 사람들이 부드럽습니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작은공동체가 많은 동네이기도 하고요. 텃밭에 오면 처음 본 사람들이지만 쉽게 말을 걸 수도 있고 관심도 싹트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은평은 희망공동체가 싹트는 동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땅이라고 함부로 파고 심기보다는 땅에게 '상추를 심으려고 하는데 괜찮겠니?'라고 물어봅니다. 땅뿐 아니라 나무도 존경하는 마음, 공손한 자세로 대해야 합니다."

불광동에서 '나루명상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혜량 스님은 '북한산 큰 숲·사람의 마을' 은평을 예찬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의 모든 생명을 공손하게 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솔잎마을' 101호를 분양 받은 스님은 바질(한약명 나륵(羅勒)과 당귀, 상추를 심을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용산에서 살던 다인(5)이 아빠는 은평의 자연환경에 반해 은평뉴타운으로 이사 왔습니다. 도시농업원 텃밭과 아파트의 거리도 아주 가깝습니다. 다인이 아빠는 "은평은 용산에서 볼 수 없는 자연 환경을 갖고 있어서 만족도가 아주 높다"면서 "서울에서 살지만 마치 시골에 사는 느낌이다. 출퇴근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다인이의 아토피 치료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은평을 선택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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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농부, 어린농부들이 텃밭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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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운에 텃밭에서 뛰쳐나온 두꺼비.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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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와 놀고 있는 어린농부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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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멘토인 이경임(55, 맨 오른쪽)씨와 별산솔어린이집 학부모와 어린이들. ⓒ 조호진


"와, 개구리다, 개구리! 개구리가 뛴다!"
"개구리야, 개구리야, 어서 너희 집에 들어가!"

두꺼비와 개구리를 아직 분간하기 힘든 지호(9)와 불광동의 '별산솔어린이집' 아이들은 흙속에서 튀어나온 두꺼비가 신기했습니다. 두꺼비를 개구리라고 부르던 아이들은 두꺼비를 쫓아다니면서 흙속의 집으로 들어가라고 재촉했습니다. 지호는 스마트폰으로 두꺼비를 촬영하고 아이들은 두꺼비와 눈을 맞추었습니다. 도시농업원 논에선 개구리가 개굴개굴 울고 텃밭의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봄을 맞았습니다.

유치원 선생이었던 이경임(55)씨는 별산솔어린이집 텃밭 멘토입니다. 지난해 서울시농업기술센터에서 도시농부 공부를 한 뒤에 이모작 인생으로 텃밭 멘토가 됐다는 이씨는 "봉사를 하면서 위축됐던 마음이 회복됐다"면서 "아이들에게 텃밭 농사를 가르치면서 귀촌을 꿈꾸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도시인의 꿈은 잿빛이 아닙니다. 푸르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도시농부 이씨의 이모작 꿈이 푸르게 푸르게 익다보면 귀촌의 꿈도 이룰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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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에게 봄이 왔습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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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림도시농업체험원은 곳곳에 수도를 설치해 도시농부의 농사를 돕고 있습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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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가 조성우 이사장도 텃밭을 분양받았습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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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우 이사장은 "모든 운동은 지역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조호진


조성우(70)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은 은평의 시민단체 연합회인 '은평상상' 전양수(76) 전 이사장과 텃밭 농사를 지으러 왔습니다. 은평구 갈현동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던 조 이사장은 지난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었습니다. 현재 은평구 신사동에서 살고 있는 조 이사장은 2014년 협동조합 '도시의 농부들'을 만들어 도시농부로서 제2의 인생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조 이사장께 지역은 어떤 의미냐고 질문했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든 운동은 자신이 사는 곳 즉, 지역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지역공동체의 뿌리가 좋아야 부문운동도 튼튼해지는 법인데 험난했던 세상 탓에 밖으로 돌아다니다 이제 내가 사는 지역 은평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시의 농부들 슬로건인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일군다. 1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1인을 위하여'라는 소박한 가치를 내걸고 다시 출발하려고 합니다. 지역에서 함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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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농부 고창댁이 익숙한 솜씨로 괭이질을 하고 있습니다. ⓒ 조호진


고창댁(70)의 괭이질은 도시농부들 틈바구니에서 단연 으뜸입니다. 벼농사와 밭농사로 잔뼈가 굵었다는 고창댁은 상기된 표정입니다. 구슬땀을 훔치면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텃밭을 고릅니다. 은평구 응암동 딸네 집에서 살고 있다는 고창댁은 "3년 동안 텃밭을 신청했는데 올해 겨우 당첨이 됐다"면서 "흙을 만지니까 사람 사는 것 같고 다시 젊어진 것 같다"고 좋아합니다.

평생을 농사꾼으로 살아온 고창댁은 쑥갓과 상추 그리고, 손자들이 좋아하는 방울토마토와 감자를 심을 계획이랍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 돈 주고 사먹는 것보다 직접 심어 먹는 재미가 훨씬 좋다"면서 "올해 수확이 재미질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도시농부가 아무리 용을 쓴들 시골공부를 따를 재간이 있을까요. 시골농부 출신 고창댁의 두럭 '푸른마을 61호'의 풍년은 따 놓은 당상인 듯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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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 출신으로 도시농업원 멘토 김재진(72)씨가 초보 도시농부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 조호진


"고추는 간격을 넓게 해야 해. 처음에 간격을 좁게 하면 고추가 크면서 서로 얽히면 열매가 잘 안 열려. 식물은 그늘이 지면 수확에 지장이 있으니까 고추 모종이 어느 정도 자라면 옮겨 심어야 해!"

은평구 연신내시장에서 주차 관리를 하는 김재진(72)씨는 경북 의성에선 시골농부였습니다. 이북에서 피난 내려와 의성에 정착한 김씨는 소년 시절부터 농사꾼이 되었습니다. 땀 흘려 일하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텃밭 분양자이기도 한 김씨는 이웃 텃밭 도시농부에게 손짓 몸짓까지 하면서 텃밭 농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지치기와 병충해에 대해 설명하고, 지주대를 튼튼히 세워주지 않으면 비바람에 고추대가 부러질 수 있다고 상세히 가르쳐 주었고 김씨의 설명에 귀 기울이는 도시농부의 표정은 특별 과외를 받는 고3 수능생처럼 자못 진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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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림도시농업체험원에서는 미생물과 유기질 비료만 사용한다고 합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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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림도시농업체험원에는 화학비료 사용하지 않기 등 5무(無) 원칙이 있습니다. ⓒ 조호진


개장식에 참석한 도시농부들에게 텃밭 강의를 한 도시농업 전문가 김화정씨는 "서울시농업기술센터에다 도시농업원 토양 검사를 의뢰를 거쳐 유기질 퇴비를 주고, 로타리를 치고, 두럭을 정리하고, 석회로 땅을 소독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석회는 산성화 된 토양을 알칼리로 바꾸는 기능을 한다"면서 "20~30 두럭에 도시농업 전문가 한 명을 배치해 도시농부들의 텃밭 농사를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텃밭 농사는 단순히 농사만 짓도록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전통양식과 공동체의식을 갖도록 하게 하면서 바르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인식을 넓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도시농업원은 친환경 농업을 지향하기 때문에 미생물과 유기질 비료만 사용하고 병충해도 친환경 방제를 직접 만들어 사용합니다. 땅은 우리만 사용하고 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잘 보전해서 사용하다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도시농업원에는 5무(無) 원칙이 있습니다. 화학비료 사용하지 않기, 합성농약 사용하지 않기, 비닐(멀칭) 사용하지 않기, 쓰레기 다시 가져가기, 자가용 가져 오지 않기를 통해 친환경 도시농업원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시농부의 꿈을 키우는 주말농장, 도심 속의 보물 같은 귀중한 공간, 주민들의 공원이자 휴식처, 산책로이기도 한 도시농업원은 도심의 생태 보고입니다.

아, 잿빛 도시가 숨겨 놓은 땅에 씨앗이 뿌려지면서 희망이 재생되고 있습니다. 희망이 재생되면 새들이 날아오고, 푸릇푸릇 푸성귀들이 자라면서 도시농부의 흙 묻은 손은 푸르게 물들 것입니다. 그래서 흙과 함께 자라는 아기농부와 어린농부들의 보드라운 가슴에도 새싹이 자랄 것입니다. 도시의 생명들이 푸르게 숨 쉬면서 사람들의 마음에도 향굿한 봄, 봄, 봄! 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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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텃밭농사로 재생되고 있습니다. 이제 새가 날아올 것입니다. ⓒ 조호진


덧붙이는 글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도시농부 #향림도시농업체험원 #텃밭 #은평구 #생태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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