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고 미수금까지 대납... 우유배달원의 눈물

밀린 우윳값 받으려다 고객에 폭행당하고 피해 고스란히 떠안아

등록 2017.04.17 15:06수정 2017.04.1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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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보급소가 배달원에게 고객이 미납한 우유값까지 떠넘겨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 ⓒ 충북인뉴스


2013년 남양유업이 대리점들을 상대로 벌인 갑질이 드러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었다. 당시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퍼붓는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녹취파일이 공개되자 인터넷과 SNS 상에서 거센 비판이 일었다.

논란이 커지자 검찰은 남양유업을 압수수색했고 공정거래위원회도 조사에 나섰다. 시민들 사이에선 남양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남양유업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남양유업은 '갑질', '갑의횡포'의 상징이 됐고 대리점은 갑을관계에서 '을'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그런데 우유업계에서 우유회사와 대리점이라는 갑과 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존재를 드러냈지 못한 영역이 있었다. 그 존재는 바로 우유배달원. 그들은 갑과 을 사이에서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근로기준법도 적용 못 받아

지난달 하순 음성노동인권센터(대표 석응정‧아래 인권센터)에 중년의 남성 A씨가 찾아왔다. A씨의 직업은 우유배달원. 그는 B우유회사 보급소와 위탁판매 계약을 맺고 새벽에 우유를 배달했다.

A씨가 인권센터를 찾은 이유는 미수금 때문. 그는 고객 중 우유대금을 주지 않는 고객에 항의하던 도중 폭행을 당했다. 폭력을 행사한 고객은 5개월치 우유대금 15만여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해 A씨는 목과 어깨 부위 타박상 등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폭행을 가한 고객은 상습적으로 대금을 지불하지 않는 이른바 '진상고객'으로 우유배달원
사이엔 이미 소문난 인물이었다. A씨가 대금 지급을 요구하자 이 고객은 직장일을 핑계로 만남 자체를 기피했다.


휴일에 고객을 찾아간 날, A씨는 폭행을 당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지구대에서 "밀린 우유값을 지급하는 대신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합의했다.

A씨는 당시 입은 상해와 정신적인 충격으로 2~3일은 쉬어야 했지만 쉴 수 없었다. 만약 우유를 배달하지 못해 대리점에 피해에 발생했다면 그만큼 그가 보급소에 배상해야 했다. 더 문제인 것은 폭력을 행사한 그 가정에 여전히 우유를 배달해야 한다는 점.

그는 우유대금을 받지 못했지만 보급소 측에서 계약 해지를 승인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우유를 배달했다.

그렇다면 보급소는 우유대금도 납부하지 않는 악성고객에게 왜 계속 우유를 판매하려 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 가정에서 납부하지 않은 우유값을 배달원 A씨가 내고 있던 것. 결론적으로 보급소는 미납된 우유대금이 하나도 없는 셈이다.

이 같은 일은 A씨와 우유보급소가 맺은 불공정한 위탁판매계약 때문에 가능했다. 이에 따르면 A씨는 판매 즉시 보급소에 우유대금을 입금해야 하고 고객이 내지 않은 외상매출금을 인정하지 않는다. 보급소는 이를 근거로 우유 값 수금 업무를 전가하고 밀린 우유대금까지 A씨가 대신 지불하도록 요구했다.

불공정한 내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마음대로 그만 둘 수가 없었다. A씨와 우유보급소가 체결한 계약에 따르면 자신을 대신해 우유를 배달할 사람을 선정해야 한다. 아무나 선정할 수도 없다. 미혼자는 안되고 무조건 기혼자로 선정해야 한다.

1년 이상 근무하지 않았을 경우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위탁계약서에는 A씨가 일년 이상 운영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만약 일년 미만에 그만둬 피해가 발생할 경우 손해를 배상하도록 했다.

이런 불공정한 계약을 통해 A씨가 벌어들이는 월 소득은 10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A씨에 따르면 밤 11시와 11시 30분 사이에 출근해 배달할 우유를 종류별로 분리한다. 배달은 새벽 1시나 2시에 시작하고 아침 5~6시 정도면 일이 끝난다. 하루 7시간에서 8시간 일하는 동안 200여 가구에 우유를 배달한다. 이렇게 해서 그에게 쥐어지는 돈은 100만 원 정도지만 미납된 우유값을 대신 지급하고 나면 실제 소득은 100만 원 이하로 떨어진다.

A씨는 우유 보급소와 고용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위탁판매계약을 했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니다. 형식상 사업자등록을 한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4대 보험도 안 된다. 당연히 산재처리도 안 된다.

이와 관련해 우유배달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법의 적용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청주노동인권센터 오진숙 변호사는 "우유배달원은 형식상 개인사업자 일뿐 사실상 노동자다"며 "개인사업자라면 자유로이 영업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해당 계약서에는 오직 B회사의 물품만 판매하도록 돼 있다"고 지적했다.

오 변호사는 갑의 지위에 있는 우유보급소가 위험을 외주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유보급소는 위탁계약을 이유로 미납액 등 발생할 수 있는 미래의 위험을 배달원에 전가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위험의 외주화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그는 "우유배달원이 받는 금액은 배달수수료로 되어 있지만 사실상 임금에 해당한다. 고객이 납부하지 않은 미수금을 우유보급소는 사실상 임금인 배달수수료에서 공제하는데도 불구하고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위탁계약서에는 미수금을 우유배달원이 부담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어 법률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데도 우유배달원에게 부가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음성노동인권센터 박윤준 상황실장도 "우유배달원 문제의 핵심은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우유배달원, 야쿠르트 배달원에게 노동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해당 우유보급소는 A씨가 체결한 위탁판매계약과 동일한 내용으로 다른 우유배달원과도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보급소들이 비슷한 내용의 위탁판매계약을 맺는다"며 "A씨 한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우유배달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민권익위는 노동자 인정... 법원은 인정 안 해

우유배달원이 노동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에 정한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법원은 판결에서 우유배달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우유배달원은 법에서 정한 노동자라고 인정한 사례도 있었다. 우유보급소와 배달 위탁판매계약을 체결한 배달원이 기본급·고정급 없이 배달 수량에 따른 수수료만 지급받더라도 근로자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결정은 2010년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아래 행정심판위원회)가 내렸다.

당시 행정심판위원회는 "모 우유보급소와 배달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우유를 배달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홍씨를 근로복지공단이 근로자로 판단해 유족에게 유족급여를 지급한 뒤 보급소 소장에게 고용·산재보험료를 부과한 것은 정당하다"며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대구지방고등법원은 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과 달리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우유배달원 #갑질 #미수금 #충북인뉴스 #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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