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아재개그에 '대머리'는 화가 난다

"대머리의 매력?"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외모 차별 발언

등록 2017.04.12 09:46수정 2017.04.1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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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님. 저는 대머리입니다. O자형으로 머리가 빠지고 있는 탈모인입죠. 뜬금없이 웬 대머리 타령이냐고요? 후보님께서 지난 11일 한국유치원 총연합회 사립유치원 교육자대회에서 내뱉은 아재 개그 때문에 제 소개를 '대머리'로 갈음하게 됐습니다.

"제가 가끔씩 아재 개그를 하는데요. 주위 사람들이 자꾸 말립니다. 제가 최근에 들은 게 하나 있습니다. 대머리가 되면 생기는 매력이 있답니다. 아십니까. 그게 헤어날 수 없는 매력이랍니다. 자꾸 제 스태프들이 말리는데 꼭 이렇게 하나씩 하게 됩니다. 하하하." - 4월 11일 한국유치원 총연합회 사립유치원 교육자대회 중 안철수 후보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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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유치원 총연합회 사립유치원 교육자대회에 참석해 발언 중 미소를 짓고 있다. ⓒ 연합뉴스


안철수 후보의 인권 감수성

"헤어(Hair)날 수 없는 매력"이라니요. 망발입니다. 이 이야기를 소셜미디어에서 건네 듣고 깜짝 놀라 관련 영상까지 찾아봤습니다. 두피에서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르더군요. 가뜩이나 뜨거운 두피가 더 달아올랐습니다. 유력 대선후보의 인권 감수성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냥 개그인데 왜 발끈하느냐고요. 후보님께서는 직능단체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분위기 전환용으로 탈모인을 아재 개그 소재로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대머리'는 후보님 생각처럼 "하하하" 웃으면서 소비될 소재는 아닙니다. 탈모인이 개인적·사회적으로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생각한다면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을 계제는 아니었습니다.

지난 1월, 한 노동자가 탈모를 이유로 호텔 연회 아르바이트 채용을 거부당했습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3항에 의거, "외모에 의한 고용상 차별"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인권위는 이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탈모로 인한 대머리의 경우 개인의 선택에 의해 좌우할 수 없는 자연적 현상에 해당하는 신체적 조건... 용모에 대한 기준은 개인의 주관적인 성향은 물론 상황·장소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는 것인데도 탈모 상태인 것만을 고려해 이를 고객서비스에 부적합한 외모로 단정하고 채용을 거부하는 것은 용모 등 신체조건을 이유로 한 차별이다. 채용 거부는 국가인권위원회법상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된다."


탈모를 희화화하는 행위도 문제가 됐습니다.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를 기억하실 겁니다. 차씨가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가발을 벗은 모습을 두고 '대머리'를 제목에 단 언론사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중 TV조선 <윤슬기의 시사Q>는 방송심의소위원회로부터 '방송에서 개인의 특정 부위를 희화화하는 것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고, (방송의) 품격을 떨어트린다'는 결정(주의)을 받았습니다. '매력'이라 포장하면서 발음이 같은 점을 이용해 '헤어(Hair)날 수 없다'고 내뱉은 후보님의 아재 개그는 TV조선의 대머리 조롱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유력 대선후보인 당신은 선거 유세를 하면서 '평등권 침해' 요소가 다분한 '조롱'을 내뱉은 겁니다. 덕분에 죄 없는 대머리들은 연유도 모른 채, 아무 이유 없이 탈모 부위를 한 대 맞은 셈이 돼버렸지요.

800만 탈모인은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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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 pixabay


탈모는 몇몇 소수의 사소한 신체 현상이 아닙니다. 이는 성별과 관계없이, 유아부터 노년까지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증상입니다. 관련 업계는 탈모 인구를 800만으로 잡더군요.

인구수도 수지만, 탈모인들은 오래전부터 사회적 낙인 효과에 힘들어했습니다. 탈모는 '질병'이고, 탈모인들은 병원에 가면 '환자'로 분류되고, '치료'를 받기 때문입니다.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대머리는 놀림의 대상이었습니다. 완전하지 않은 결핍 덩어리들이었습니다.

제 가까운 친구는 탈모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두발 이식의 길을 걸었습니다. 피범벅이 되면서 머리카락을 심었습니다. 듣자 하니 1000만 원가량을 지불했더군요. 한 직장 동료는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 강원도 모처로 원정 치료를 받으러 다닙니다. 제 은사 중 한 분은 항암 치료 때문에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민머리가 됐습니다. 저는 또래에 비해 현저하게 없는 머리숱 덕에 어린이집 학부모 모임에 가면 으레 연장자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한참 어린데도 말이죠.

대머리의 사연은 우리 탈모인이 보내버린 머리카락의 수만큼 많고, 구구절절하고, 때로는 슬프기도 합니다.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이런 대상을 두고 "헤어(Hair)날 수 없는 매력"이라며 웃으셨습니까.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아야 하는데, 누가 혀로 사람을 때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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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개그에 상처받고 잠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 김지현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덤벼드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군요. 네, 그럴 수 있습니다. 후보님께서 하신 말씀이 누군가의 인권을, 누군가의 존엄성을 건드리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아재 개그라고 해서 모든 게 용서되고, 묵인되지 않습니다. 우리 탈모인의 "자연스러운 신체 현상"은 그 어떤 이유에서도 조롱거리로, 웃음거리로 소비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의 '인권감수성 제로' 아재 개그는 무척 불쾌한 외모 차별 행위입니다. 앞으로는 주변 스태프들의 조언을 경청해주세요. 스태프들이 말리면 하지 마시라 이겁니다.
#안철수 #대머리 #탈모 #대선 #국민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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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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