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기찻길의 변신은 무죄

공원부터 '또 다른 교통로'까지, 폐선의 재발견

등록 2017.06.15 10:57수정 2017.06.1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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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칭 '교통 오타쿠',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가 연재합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그런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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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철로가 폐선되었다가 다시 개통하고, 다시 폐선된다. ⓒ 박장식


기차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칙칙폭폭' 기차이지만, 현대에는 증기기관차가 멸종한 지 오래.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철길도 속속 멸종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최근 단선철도를 복선화하고, 전철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철도에 전기 가선을 부설하고, 굽은 철길을 쭉 펴는 공사가 속속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

철도여행 자체의 '덜컹덜컹' 한 특유의 맛이 사라진다거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복선(전철)화, 직선화 공사로 인한 이설을 꺼리는 시민들도 아직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이용객들이 소요시간의 대폭 감소, 편의시설이 확충된다는 장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복선화와 직선화를 환영한다.

그런데 그러면 새 철길 위로 다니는 열차 아래 헌 철길이 남는다. 철도가 포함하고 있는 면적이 넓지 않거나,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잊혀진 땅으로 남기면 좋겠지만, 알다시피 철도는 토목기술의 집합체라고 불릴 정도로 터널, 교량, 대지 등에 소모되는 토지와 기술이 엄청나다.

그 철길을 사용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는 지자체가 현재도 많다. 특히 시내에 있던 철길이 이설되는 경우, 이들 철길을 '어떻게 하면 잘 썼다고 소문이 나나' 하는 고민에 휩싸이기 마련. 실제로 철길을 잘 써서 소문이 난 관광지와 지자체가 많기 때문인데, 그래서 '폐선의 활용법'에 대해 다뤄본다. 각양각색의 철도 사용법, 그리고 그 철도사용법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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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신촌연결선 일대는 골목길로 재정비되었다. 1970년대에 폐선되어 당시의 흔적은 '나무계단' 외에 찾기 어렵다. ⓒ 박장식


도로의 '옛길'처럼, 화물열차 경유지로 쓰이는 함백선

도로가 낡고 위험해 신도로를 개통하면 구도로는 보통 '옛길' 내지는 우회도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대표적인 예로 정상의 미시령휴게소가 유명했던 미시령 옛길과 신너릿재터널 개통 이후 병주터널이 된 화순의 너릿재터널을 들 수 있겠다. 이들 '옛길'은 본래의 국도, 지방도가 행하던 기능에서 벗어나지만, 멋진 풍광으로 많은 드라이버들이 즐겨 찾는 코스로 변모한다.


그런데 철도에도 이렇게 '옛길'로 쓰이는 철도가 있다. 바로 강원도 정선군에서 영월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함백선, 본래 함백선은 함백역까지만 이어진 옛 태백선의 본선이었다. 하지만 예미에서 바로 태백으로 넘어가는 태백선 본선이 새로 개통되자, 함백역에서 열차를 돌리기에는 태백으로의 수요를 무시할 수 없었고, 함백역을 폐역하자니 탄광에서의 화물·여객 수요가 많았다.

그래서 함백역에서 조동역까지 잇는 터널을 뚫어, 함백역과 예미역, 그리고 조동역을 잇는 철길은 태백선의 지선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또 2006년 여객열차의 무정차 통과 이후 함백역이 철거되었을 때에는 지역의 역사를 없앤다는 주민들의 큰 반발로 정선군과 코레일이 역을 다시 짓기에 이르렀고, 지역 역사 관리에 헌신적이었던 점을 인정받아 함백역 일대가 국가기록원에 의해 "기록사랑마을 1호"로 지정되어 있다.

함백역 내부는 국가기록원의 도움을 받아 지역 기록 전시관 겸 함백역과 지역의 역사관으로 꾸며져 있다. 또 이따금 마주 보는 열차를 피하기 위해, 큰 경사를 극복하기 위해 지나는 화물열차의 소리가 이따금씩 지나가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사랑으로 관리되는 철길과 역사로 거듭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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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민들이 유흥을 위해 찾는 홍대거리도 오래 전 철도였다. 당시의 흔적이 어렴풋이 남은 서교동 365번지 일대. ⓒ 박장식


도로로 포장되는 폐선, '셀 수 없이 많네'

폐철도의 선형은 도로로 쓰기에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보통 산과 강을 그대로 돌파하기 때문에 원래의 길에서 직통하는 형태로 쓰기에도 좋고, 더욱이 건널목이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에 건널목을 조금만 손보면 교차로로 재탄생한다. 더욱이 주택가를 그대로 지나는 철도는 폐선과 동시에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도로로 다시금 재탄생한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지금의 서울 2호선과 비슷한 순환열차인 '경성순환선'이 있었다. 용산역에서 효창역, 공덕리, 서강을 거쳐 '신촌연결선'을 타고 신촌역으로 올라간 뒤, 신촌역에서 다시 경성역을 거쳐 용산역으로 돌아가는 노선이었다. 이 노선은 현재의 경의중앙선과 경의선 노선을 이용했는데, 1944년 일제의 선로 공출로 인해 운행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신촌연결선 역시 1960년 사라졌는데, 지금의 신촌기차역과 서강대역을 잇는 골목길로 흔적이 남아있다. 신촌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하는 철길은 골목길을 둥글게 휘감고 나가다가 공씨책방과 마주치고, 다시 서강역 앞으로 둥글게 나갔다. 폐선된 지 무려 60년이 다 되어 많은 흔적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골목길에 들어서면 마치 철길을 거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폐철도가 도로로 쓰이는 또 다른 대표적인 예가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찾는 홍대거리이다. '홍대 걷고싶은 거리'와 '홍대 예술의 거리'는 본래 서강대역에서 출발해 윗잔다리를 거쳐 서울화력발전소까지 향하던 석탄운반노선인 당인리선이 그 모태였다. 지금은 많은 시민들이 찾는 홍대 거리가 1970년대까지는 석탄을 가득 실은 열차가 굉음을 내며 지났던 철로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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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소앞역 플랫폼의 흔적은 지금도 어렴풋이 남아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계속되는 재개발에 가려 흔적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 박장식


윗잔다리 일대에는 서교시장(현재의 서교프라자)이 있었고, 서교동 365번지의 건물들은 서교시장 방향을 주 출입구로 낸 채 영업을 했다. 뒤편은 철도가 이따금 석탄을 지고 달렸기 때문에 큰 출입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서교동 365번지 일대의 건물들은 서교프라자 쪽을 바라보고 있다.

또 흔적이 이곳저곳에 남는 경우도 많다. 당인리선의 경우 방송소앞역의 승강장이 갈림길에 그대로 남겨져있다. 지속되는 리모델링 공사 탓에 묻혀지기 일보 직전이지만, 자세히 살피다 보면 승강장에 썼던 벽돌의 형태가 이곳저곳에 드러나 있을 정도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폐침목 등이 남아있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고, 도로로 인해 새로 뚫린 길의 계단을 만들기도 한다.

철길 위에 생명을 얹으면 공원이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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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화된 폐선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경의선공원을 들 수 있다. 책거리, 연트럴파크 등 다양한 컨셉으로 재개장한 경의선공원. ⓒ 박장식


도심 한가운데를 비집고 다니는 철도는 최근 '도시하천'과 비슷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좁은 길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도심 사이를 비집으며 도시를 양분했던 이전의 도시하천 말이다. 도시하천이 악취를 냈다면 철도는 큰 소음으로 생활편의를 떨어뜨렸다. 자연히 인근의 지가는 떨어지고, 혐오시설이 되었다.

그런데 도시하천이 꾸준한 정화사업을 통해 시민들이 찾는 공원으로 재정비되어 다시 시민이 찾는 시설이 되었다면 철도는 꾸준한 외곽지역으로의 이설, 지하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이들 이설로 인해 남은 자리에는 공원이 들어선다. 그 효과가 극대화된 것이 서울의 '연트럴파크'로 위시되는 경의선 공원과 구 광주선의 광주-효천 구간의 노반을 이용한 푸른길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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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남광주역 '푸른길공원'. 지역상생과 미관확보라는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았다. ⓒ 박장식


경의선 공원은 그간 녹지지대가 부족했던 공덕동, 효창동, 서강동, 연남동 일대에 '초록빛 핏줄'을 만들었다. 연남동의 경우 그간 침체되었던 연남동을 '핫 플레이스'로 바꿔놓은 일등공신이 되었을 정도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방치되었던 폐선 부지를 매입해 공원 등의 공공용지로 바꾸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정도.

푸른길 공원 역시 광주의 원도심과 남광주 일대를 잇는 원도심의 숨통을 터 주었다. 푸른길공원 자체도 원도심 관광코스로 활용되고 있고, 남광주야시장 역시 열리고 있다. 다만 이들 공원 역시 수요예측을 잘못해 시민들이 잘 찾지 않는 곳에 생뚱맞게 세워진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어, 공원 역시 수요예측이 꽤나 중요하다.

이 풍경, 버리기 아깝다면 레일바이크 같은 리조트 시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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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기차공원으로 재개장된 옛 전라선 구간. 증기기관차가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 박장식


폐선 활용법 중 가장 성공한 사례를 들자면 레일바이크를 꼽을 수 있다. 정선군에서 첫 시작을 한 레일바이크는 이미 많은 시민들이 자연풍광을 즐기고, 철길 위도 달릴 겸 찾는 대표적인 명소가 되었다. 이미 주요한 레저시설로 활용되고 있는 레일바이크는 정선, 곡성을 시작으로 양평, 춘천, 진주 등 다양한 곳에서 어트랙션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간 큰 사용방안을 찾지 못했던 철도시설에 대한 활용방안 중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최대의 편익을 낼 수 있고, 시민들이 이용하기에도 편리해 여러 지역에서 도입되었다. 일례로 곡성의 경우 구 곡성역과 압록역 사이 노반을 활용해 증기기관차 등을 운행하는 곡성 기차마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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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바이크의 '선구자'는 정선 레일바이크가 아닐까. 현재도 '레일바이크'의 큰 형님 격이다. ⓒ 박장식


아예 철도를 이용한 테마파크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영동선의 통리-도계 간 터널과 스위치백, 인클라인 시설을 이용하여 레일바이크 폐역을 활용한 미술관, 증기기관차 체험, 수직 열차, 어린이 열차 등의 체험시설을 만든 하이원추추파크가 그 예. 이렇듯 철도를 이용한 리조트 시설까지 보급되고 있다.

다만 문제는 레일바이크가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가 적합할 정도로 난립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심지어는 폐선부지의 활성화를 지어진 레일바이크가 철도가 전혀 없던 지역에 철로를 구태여 깔아가면서까지 생기는 경우가 있을 정도, 이로 인해 레일바이크 등 철도 레저시설이 '공급과잉'이 되고 있어, 새로운 레저시설을 찾는 논의가 필요하다.

문화재로 지정되는 철길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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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철도역사나, 철도선로는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된다. ⓒ 박장식


철도 자체가 문화재로 지정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운행하고 있는 철도인 한강철교 등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있고, 사용하지 않는 원주역의 증기기관차 급수탑, 서울역의 옛 역사(驛舍) 역시 각각 등록문화재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폐선 역시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으로 왜관의 철교와 철도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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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역은 2018년 폐역되지만 역사나 주변시설은 계속 보존될 예정이다. ⓒ 박장식


왜관철교와 왜관터널은 1905년 경부선의 시작과 함께 만들어진 철교와 터널이다. 1941년 경부선이 복선화되면서부터는 사용되지 못하고 있지만, 당시의 토목건설 기법이 담겨진 왜관터널과 왜관철교의 상징성 때문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같은 이유로 밀양 상동터널, 옛 만경강철도 역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상태.

다만 등록문화재의 공통적인 문제이지만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흉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왜관철교의 경우 홍수에 일부 구간이 유실되었던 전례가 있고, 왜관터널 역시 주변 정비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접근이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철도시설물이 100년을 넘는 시설이 됨에 따라 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기에 관심이 필요한 대목이다.

폐철길에 철도를 깔아서 다시 운행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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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포의 동해남부선이 폐선되기 직전의 모습. 현재는 공원과 트램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 박장식


폐철길에 철도를 다시 깔아서 운행하는 경우도 있다. 불가피한 이유로 폐선되었거나, 운행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유가 있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철도들이 다시 운행을 시작한다는 이야기이다. 가장 큰 이유는 수요가 적어져 폐선되었던 노선의 주변에 수요처가 생기거나, 특수한 이유로 다시 열차가 운행하는 것. 대표적인 예로 수인선과 경의선, 경원선을 들 수 있다.

인천의 바닷바람과 소래의 비릿한 바람을 안산과 수원으로 실어날랐다가 1995년 영업운행이 중단된 한국 최후의 협궤철도인 수인선은 2012년 수도권 전철로 화려한 부활을 했다. 엄밀히는 인천-수원 간의 수요가 협궤 철길에는 맞지 않아 큰 철길로 옮긴 것이지만, 대표적인 폐선의 재탄생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또 앞서 말한 광주선의 '푸른길 공원' 부지를 광주 2호선의 노반에 활용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또 최근 이설된 동해남부선의 해운대-청사포 간의 노반을 활용해 해운대 트램을 만드려하는 부산시의 사례도 있다. 이렇듯 폐선이 다시금 시민의 발이 되는 경우는 국내에 아직 많지 않지만, '도시재생'이 트렌드가 된 최근 앞으로 보여지는 장면이 되지 않을까.

각양각색 '폐선 활용법', 미래의 활용방안은 어떨까

폐선의 활용법은 이렇듯 다양하다. 다양한 체험시설을 많들어 많은 시민들이 찾는 명소로 만드는 경우도 많고, 공원 등 시민들을 위한 문화시설로 개방되기도 한다. 더욱이 폐선은 폐선 직후 흉물로 변하는 경우가 많고, 여수 여천역이나 양주 송추역은 사용되지 않는 역 건물이 비행 청소년들로 인해 몸살을 앓았던 전례가 있어 폐선 이후 사용방안을 잘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개통되는 철도의 수만큼 많은 수의 철도가 폐선되거나 이설되어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할 것이다. 폐선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폐선의 활용방안에 대해 더욱 많이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제 2의 연트럴파크'가 되느냐, '레일바이크'가 되느냐, 아니면 '가서는 안 될 곳'으로 전락하느냐는 폐선 이후의 정책이 얼마나 잘 짜여졌느냐에 달렸다.
#철도 #폐선 #공원화 #대중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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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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