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의 저녁 수라상에 올린 명단의 실체는?

[서평] 국왕 혼례의 모든 것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등록 2017.04.14 13:08수정 2017.04.1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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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결혼은 인륜지대사입니다. 일반인들이 시집 장가를 가는데도 이런 문제가 뒤따르고 저런 부담이 생기게 마련인데 하물며 세자나 임금이 가는 장가라면 뭔가 달라도 다를 겁니다.

그랬습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세자나 임금이 장가를 가기까지는 많이 달랐습니다. 세자나 임금이 장가를 가게 되면 제일 먼저 금혼령을 내렸습니다. 아무리 왕조시대였다 해도 세자나 임금 한 사람 배필을 고르기 위해 나라 전체에 금혼령을 내렸다는 자체가 쉬 이해되지 않습니다.


언뜻 생각하기엔 딸이 왕비가 될 수 있다면 별별 수단을 다 썼을 것 같습니다. 왕비가 될 기회를 노리는 것은 물론 어떤 경쟁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딸이 왕비로 간택되는 걸 피하기 위해 숨기고, 감추고, 속이고, 멀리 보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왕의 결혼식 A부터 Z까지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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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 지은이 임민혁 / 펴낸곳 (주)글항아리 / 2017년 4월 4일 / 값 20,000원 ⓒ 임윤수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지은이 임민혁, 펴낸곳 (주)글항아리)는 왕의 결혼식, 왕비가 될 대상을 찾는 간택에서부터 첫날밤까지는 물론 수많은 궁중 여인들 중 그날 밤 왕과 함께 할 여인을 선택하는 방법까지를 속속들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금혼령을 내린다고 해서 조선 땅 모든 여성의 결혼을 금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금혼 대상은 사대부로 국한되었으며, 사대부 중에서도 처녀단자를 제출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 또한 예외로 하여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 대혼의 명이 내려진 뒤로 경외 양반가는 혼가婚嫁로 부산을 떨면서 허둥댔다. 각 가정에서는 자진 신고하기보다는 이를 기피하려는 술책이 판을 쳤다.


딸을 은닉하거나 나이를 늘리고 줄이는 등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여 모면하고자 하는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금혼령이 미치지 않는 지역으로 피해가서 성혼하는 자들도 있었다.' -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56쪽

영조 연간에 반포된 <속대전>에는 "사대부의 여자로서 호적에 누락된 자는 그 가장을 도배(徒配)한다"는 법규가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법률로 제정된 배경이 왕비 간택 때 처녀단자를 많이 받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딸이 왕비가 되는 걸 얼마나 피하려 했으면 법으로까지 그 수단을 강구했는지를 어림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부담과 구중궁궐 속 궁금 피하려

딸이 왕비가 되는 걸 피하려 했던 첫 번째 이유는 경제적 부담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복색을 갖추고, 입궐할 때 탈 가마에 드는 비용도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지방에 사는 처녀라면 미리 상경하는데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혜경궁홍씨의 경우에도 집이 가난해 치맛감은 죽은 형제가 쓸 것으로 하고 옷 안은 낡은 것을 넣어 만들고 다른 결속은 빚을 내서 만들었다고 하니 경제적 부담이 녹록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딸이 왕비가 되는 걸 피하려 했던 두 번째 이유는 궁금(宮禁) 생활의 가혹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평생을 구중궁궐에 갇혀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아는 부모라면 선뜻 단자를 바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역대 왕비의 아비들 중에는 딸이 여자로 살아가며 느낄 수 있는 행복보다는 가문이나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아직은 사리분별력이 야물지 못한 딸을 희생양 삼은 경우도 없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왕의 저녁 수라상에 올리던 명단

왕에게 올리는 저녁 수라상에는 아주 특별한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맛이 있거나 보양을 위한 어떤 음식이 아닙니다. 궁중 여인들 이름이 적힌 명단이었다고 합니다. 

'이 말에서 아주 흥미로운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저녁 수라 때 국왕을 늘 시종하는 내시가 수라상에 명단 하나를 올려놓았다는 사실이다. 이 명단은 그날 밤 국왕의 잠자리에서 시중들 여성들이다. 왕비를 비롯하여 후궁들의 이름을 나열했다고 하지만, 이것이 맞는 말인지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있다. 어쨌든 그 중 한 사람을 낙점하면, 내시는 이 사실을 담당 상궁에게 통보했다. 그러면 상궁들은 채비를 시켜 합방하게 하는 것이다.' -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233쪽

궁중 여인들은 모두가 왕의 여자이던 시대였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국왕의 성욕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생리적 주기 등을 미리 파악한 명단을 올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조선 국왕이 장가를 들기까지는 우여곡절이고, 장가를 든 국왕의 성생활은 구중궁궐 속 비밀입니다. 책에서는 벽이 들은 낮말 같은 기록, 쥐가 들은 밤 이야기 같은 내용들로 왕이 장가를 들어 사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구성하고 있습니다.

요즘이야 남녀가 부부가 되기 위해 올리는 예를 '결혼'한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혼례, 혼인(婚姻)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예식장에서 부부가 될 두 사람이 하객들 앞에서 큰 소리로 하는 서약을 '결혼서약'이라고 하지 않고 '혼인서약'이라고 합니다. 부부가 됐다는 사실을 구청 등에 신고하는 것도 '결혼신고'라 하지 않고 '혼인신고'라고 합니다.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는 걸 '혼인'이라고 한 까닭까지를 이해하게 되면 왕이 장가를 가기까지는 물론 구중궁궐 이불 속에까지 스미어 있었을 시대적 가치와 문화를 어림하게 됩니다.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를 일독하는 것으로 조선 팔도가 들썩거린 국가의 가례嘉禮, 국왕이 짝을 찾고, 혼례를 올리는 과정은 물론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사항이었던 임금의 성생활 일단까지를 은밀하게 엿볼 수 있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 지은이 임민혁 / 펴낸곳 (주)글항아리 / 2017년 4월 4일 / 값 20,000원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임민혁 #(주)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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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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