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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까칠'하지 않은 <까칠남녀>, 그래도 난 응원한다

[TV리뷰] 페미니즘의 목소리에 힘 싣는 <까칠남녀>, 그 한계와 가능성

17.04.16 17:12최종업데이트17.04.1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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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까칠남녀>는 이전까지 국내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기획이었다. 하지만 기대치에 비해 아쉬운 모습을 다소 보이며, 프로그램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 EBS


A: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 사는 게 나을까, 여자로 사는 게 나을까?
B: 여자. 왜냐하면, 남자는 군대에 가야 하지만 여자는 군대에 안 가도 되잖아.
C: 난 남자. 남자가 받는 혜택은 이~만큼인데 (양팔을 활짝 벌리며) 여자는 요만큼….
B: 아니, 남자가 받는 혜택이 뭐가 있어?
C: (황당) 아니, 어마어마하게 많지…. 화장실 갈 때 몰카나 죽음의 공포 느낀 적, 없잖아.
B: 에이, 그건 혜택이라고 할 수 없지.

어디선가 많이 본 대화 전개이다. 누군가에게는 실제로 해보았을, 누군가에게는 온라인에서 접해보았을 대화. 어떤 경로건, 이런 대화는 일단 시작되기만 하면 대화 참여자 모두를 워리어로 만드는 마법을 발휘한다. 이런 민감함 때문에 '성별 논쟁'은 오프라인에서는 대개 쉬쉬 되거나 '예민한' 주제로 여겨져 기피되곤 했다. 그런데, 어느 공중파 프로그램이 이를 이야기하겠다고 나섰다.

바로 3주 전부터 시작된 EBS의 심야 프로그램, <까칠남녀>이다.

획기적인 기획, 미흡한 구성

지난 3월 27일 첫 전파를 탄 EBS <까칠남녀>. 1화의 주제는 '제모'에 관한 얘기였다. ⓒ EBS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 역할에 대한 갈등을 이야기하는 국내 최초의 젠더 토크쇼"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11시 30분, 여성 패널 3명(박미선, 서유리, 은하선)과 남성 패널 3명(서민, 봉만대, 정영진)이 고정으로 출연하고, 여성학자인 손희정씨와 이현재씨가 번갈아가며 자문 역할로 출연한다.

글 서두에서 말한 대화는 실제 <까칠남녀> 1회에서 나온 대화를 조금 수정해 실은 것이다. 이런 논쟁적인 이야기를 하다 보니 <까칠남녀>는 방송 3주 만에 세간의 관심을 받는 '핫'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1화에서는 '여성의 털'이라는 쉽게 인지되기 어려운 여성에 대한 억압부터, 2화에서는 당장 생활 속 문제인 '피임', 그리고 3화에서는 중장년층까지 아우를 수 있는 주제인 '졸혼과 가사노동'을 얘기하여 회차마다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폭넓은 스펙트럼의 젠더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시청자의 사연을 받고, 실제 털을 깎지 않는 여성(1화)과 졸혼 경험자(3화)를 섭외하는 등 주제를 다루는 방식 또한 다양하다. 패널들의 발언 또한 EBS 방송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솔직하고도 가감이 없다. 이처럼 프로그램의 주제 선정부터 패널 구성, 그리고 진행방식까지 <까칠남녀>에는 제작진의 "까칠"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노력이 투영되어있다.

그러나, 그 노력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실제로 이 주제들이 적절하게 논의되고 다루어졌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더욱이, 젠더 문제는 <까칠남녀>가 방송 오프닝에서 보여준 "내가 까칠한 게 아니야, 세상이 기울어진 거지"라는 말처럼 애초에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의 문제이기에 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는 더욱 큰 정도의 엄밀함과 섬세함이 요구된다. 아쉽게도, <까칠남녀>는 아직 이를 해내지 못하고 있다.

우선, 편집이 시청자의 집중력을 흩트릴 정도로 성기다. A에 관해 이야기했다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로 B에 관해 이야기하고, 곧이어 C를 이야기하는 식이어서 호흡이 오락가락하며, 대부분은 그저 남녀 양쪽의 견해를 들어보는 식으로만 논의되고 끝나버린다. 다양한 문제의식과 이야깃거리들이 던져짐에도 불구하고 각 이야기가 제대로 봉합되지 못한 채 방송이 진행되다 보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꽤 답답하다.

이는 <까칠남녀>의 방송 시간이 40분밖에 안 되고, 그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하려는 탓이기도 하다. 예컨대 1회의 경우, 오프닝→패널 소개→X의 방→오늘의 이야기(여성성과 남성성에 관한 이야기)→남녀차별 고민 사연→여성의 털→이가현씨와의 인터뷰→마무리 토론→오늘 이 시간의 마무리, 까칠한 톡! 까톡→클로징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이 단 40분 안에 이루어졌다.

일부 남성 패널의 발언, 정당한 '의견'으로 볼 수 있나

EBS <까칠남녀>의 패널 중 한 명인 정영진은 적극적으로 남성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런 패널도 '기능적'으로 프로그램 내에 필수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어떤 주장들은 여성 시청자들에게 편협하게 다가와 불편함을 야기한다. ⓒ EBS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소화해야 하다 보니, 맥락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한 채 튀어나오는 일부 남성 패널들의 발언들은 시청자들이 더 큰 불쾌감을 느끼도록 한다. 특히 정영진과 봉만대의 발언들은 잦은 빈도로 성차별적이고, 여성의 상황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주며, 일부는 여성 혐오적이기까지 하다.

<까칠남녀>의 한계는, 이런 발언과 태도가 얼마나 문제적인지 제대로 짚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화'와 '토론'이라는 핑계로 '동등한' 수준의 의견으로 포장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때가 잦다. 일부 커뮤니티나 SNS 등에서 이 남성 패널들의 잘못된 인식들이 남성 시청자들에게 '논리적인 의견'으로 수용되어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도 무척 우려스럽다.

자세한 예를 들어보자. 1회에서 패널들은 '성인이 된 남동생의 밥을 누나에게 차리라고 하는 것은 성차별인가?'라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는 어느 분의 사연에 대한 토론으로, 이 사연에서 어머니는 밤에 혼자 귀가하는 누나를 남동생보고 데려오라고 시켰다. 이 상황에서 정영진은 여성과 남성 모두가 같은 양의 일을 했으니 누나에게 남동생 밥을 차리게 시키는 것은 성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각자 같은 양의 일을 했다고 해서 그게 '평등'은 아니다. 어떤 일을 동등하게 배분받는 것이 평등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배분받은 일이 질적으로 같은 차원의 것이어야 한다. 둘 다 할 수 있는 일을 반반씩 나눈 것이라면 평등한 일의 분배지만, 이 경우는 그게 아니다. 이 사례에서, 밥 차리는 것은 남녀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여성인 누나에게만 맡겨졌다. 후자의 경우는 밤길에 여성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위협을 덜 받는 남성이 데리러 나가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두 일은 '동등'한 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방송에서는 이런 식의 비판이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넘어갔다. 정영진은 "여성은 젖을 줄 수 있으니 돌봄노동에 최적화된 신체구조를 갖고 있다", "남성은 소를 잡을 수 있으니 남성 셰프들이 많은 것이다" 등의 발언들을 이어갔다. 이쯤 되면 <까칠남녀>의 까칠함이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지 물음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의 차이... 이건 틀린 거야!

<까칠남녀>의 클로징 멘트는 다음과 같다.

"오늘 이렇게 까칠한 이야기들을 해보았는데 사실 저희 프로그램에 정답은 없습니다. 서로 이야기 나누고, 또 소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저희 다음 주에 더 까칠하게 찾아오겠습니다!"

'정답이 없다'라. 과연 정답이 없는가? 정답이 없는 주제라면 이에 대해 아무 말이나 해도 괜찮은가? 이 방송에서 진행된 것이 소통이었는가? 최소한 봉만대와 정영진의 발언 중 어떤 것들은 명백한 '오답'이라는 사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주장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임을 분명히 짚어주는 것이야말로 '까칠함'을 표방하는 <까칠남녀>라는 프로그램이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아닐까.

<까칠남녀>의 포맷이 '까칠한' 남과 여가 출연해 문제에 대해 동등한 위치에서 '토론'하는 것이라면, 토론에서 나오는 의견들의 수준도 어느 정도 같아야 한다. 만약 젠더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라고 말했으면, 이런 발언들에 대해선 명확한 비판이 응당 이뤄져야 한다.

명확한 비판과 방향성이 실종된 채 그저 여성과 남성의 입장을 병렬적으로 보여주는 식의 진행은 도리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인 젠더문제에 대한 남녀의 이해와 소통을 가로막을 수 있다.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는 이들에게 이런 식의 진행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에 대한 이해를 해오기는커녕 오히려 젠더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 나아가 여성들에 대한 반감을 키울 수 있다.

EBS <까칠남녀> 방송 이후 서유리에게 가해진 폭력만 봐도, 현재 대한민국 남성 시청자들의 전반적인 젠더 감수성이 어떤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 EBS


얼마 전 <까칠남녀>의 시청자게시판에 가해진 욕설도배 사건이 이를 방증한다. 13일 이른 오전, 어느 네티즌이 총 46페이지에 걸쳐 "생리충아 니 애미 강간당한 거 사진 올림", "열 받지 보지 X아 느개미 창녀촌 리더 니애미 조두순에게 강간당한 X아" 등의 욕설들로 시청자 게시판을 도배했다. 그저 한 개인의 특이행동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남성 위주의 커뮤니티나 SNS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담화가 오고 간다. 1화가 끝난 이후, 패널인 서유리의 SNS를 향해 '메갈 X' '워마드'라며 심한 비난과 욕설이 쏟아진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욕설들과 행동에는 여성들, 특히 여성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이들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가 박혀 있다.

프로그램 이름이 <까칠남녀>임에도 불구하고 '까칠함'이 부족한 아이러니. 여성 패널들은 남성 패널들의 수준 이하의 발언들에 대해서 까칠하게 대응할 때보다는 부드럽게 돌려 말하며 반박할 때가 더 많다. 특히 박미선의 탁월한 진행능력은 '남성들을 기죽이지 않으면서도' 할 말을 유려하게 전달하는 데에서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그러나 놀랍게도 시청자 게시판에는 여성 패널들이 너무 '공격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남성 혐오적'이라며 항의하는 글들이 숱하다.

여성들은 늘 남성들에게 부드럽고 조신하게 이야기하라고 요구받아왔다. 실제로도 여성들은 오랫동안 이에 충실하게 이야기해왔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건 너무 공격적이지는 않게,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며 설득하라고 말이다. 상대방이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상태에서조차, 여성에게 차분히 이야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적이다. 여성 억압이 존재하는지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여성들이 억압당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충분치 않은 '까칠함'인데, 이조차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격적'이라고 평하는 남성 시청자의 간극이 이를 보여준다.

이처럼 <까칠남녀>에 대한 여성과 남성 시청자들의 반응은 양극단으로 갈린다. 재미있게도 그 반응들은 <까칠남녀>에 대한 비난으로 귀결한다. 남성 시청자들은 <까칠남녀>가 너무 여자 입장만 대변하는 "성차별적" 프로그램이라 말하고, 여성 시청자들은 너무 성차별적인 발언들이 많이 등장해 프로그램을 보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까칠남녀>는 "세상에 이유 없는 까칠함은 없다"며 "차별에 화난 남녀들의 용감한 토크쇼"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동시에 문제적인 발언들은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까칠남녀>를 본다

EBS <까칠남녀>의 티저 광고의 한 장면. 은하선씨는 프로그램 내에서 적극적으로 '까칠함'을 내세우는 편이다. 프로그램이 전반적으로 보다 더 '까칠'해진다면, 이 프로그램의 가능성도 더 커지지 않을까. ⓒ EBS


결국, 이 프로그램이 내게 던진 가장 큰 질문은 이것이었다. 대중운동으로써의 페미니즘이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나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가? 이 프로그램에 국한에서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면, <까칠남녀>는 어느 정도 수준의 이야기를, 어떤 태도로 던지려 하는가?  결국, <까칠남녀>라는 프로그램의 핵심은 어느 정도 수준의 '까칠함'을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달려 있다.

이들의 '부드러운 까칠함'은 물론 일종의 타협이며,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데도 앞으로 더욱 까칠해질 수 있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포장이기도 하다. 정영진과 봉만대는 실망스러운 수준의 젠더감수성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출연진이 젠더감수성을 갖춘 여성주의자들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남성들이 가진 인식이 재고되어야 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기존 남성의 입장을 대변해줄 패널들이 필요하다.

단,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밝히는 분명한 단호함이 뒷받침되어야 이 프로그램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까칠남녀>의 패널 구성을 보면, 제작진 역시 이러한 역할을 인지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남성 패널 3명 중 1인인 서민 교수는 적극적으로 여성 패널의 입장에 공감하려고 한다. 박미선-서유리-은하선-서민 4명의 패널이 하나의 견해를 대변하고, 그 반대편에는 정영진-봉만대 2명의 패널이 앉아 있는 셈이다. 자문 역의 전문가까지 힘을 합치면 5:2이다. 제작진이 어느 쪽 목소리에 조금 더 방점을 찍어 균형을 맞추려는지가 보인다.

앞에서 이야기한 <까칠남녀>의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이 의의를 가지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까칠하지 않음에도 까칠하다고 느끼는 이들과 대화하기.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이들의 믿음에 균열 내기. 최근 페미니즘의 외연은 놀라울 정도로 확장되었지만(그 덕분에 <까칠남녀> 같은 프로그램도 생기지 않았나!), 그 이면의 갈등은 더욱 심화하였다.

사람들은 이제 페미니즘과 '이퀄리즘'을 나누고, '한국 페미니즘'과 '외국 페미니즘'을 가르며, 페미니스트들을 '꼴페미', '페미나치'라는 식으로 비하해 이들을 낙인찍는다. 그러던 와중에 등장한 <까칠남녀>라는 프로그램이 나는 무척 반갑다. 앞서 지적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젠더 문제를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조명하고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내일(17일)의 주제는 '김치녀'라고 한다. 글에서 적은 우려들이 증폭되어 나타나리라는 걱정이 앞서지만, 동시에 이런 주제가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논의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다니 기대감이 크기도 하다. <까칠남녀>의 '까칠함'이 앞으로 어떻게 발현될지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나는 당분간 <까칠남녀>의 시도를 응원하며 '본방사수'하려고 한다.

까칠남녀 페미니즘 박미선 서유리 은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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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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