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간 금과 은 만진 손, 생각보다 곱다

[인터뷰] 배고파서 시작한 전통공예... 전통공예가 황갑주

등록 2017.04.19 19:45수정 2017.04.21 07:5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작품을 설명하고 계신 황갑주 선생님, 옥 보타이가 눈에 띈다. ⓒ 설혜영


4호선 숙대전철역에서 한 골목만 들어가면 독특한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지럽게 느껴지는 골목을 자세히 살펴보면 뜬금없는 스테이크 식당가 골목이 펼쳐지고, 일제 강점기 가옥들을 군데군데 볼 수 있다.


갑자기 나타난 미군부대 담벼락이 어색할 수도 있다. 심상치 않은 골목분위기가 느껴지는 남영동 공설시장, 남영아케이트 건너편 건물 2층에 황갑주 선생님의 작업실이 있다. 목에 걸려 있는 옥공예 보타이가 눈에 띄었다.

"서울시 지원은 금이나 은 재료를 사는 것 이외에는 한 푼도 못써. 전문위원들이 잘 하고 있나 시시 때때로 보고 간다고, 내가 만들었던 걸 확보하면 그걸로 문화재가 남게 되니까 작업을 하지. 1년에 한 번씩 남산 한옥마을에서 전시회도 개최하고, 도자기, 나전칠기, 전통공예 10개 분야 작품들을 합동으로 전시회를 해."

서울시는 전통공예 전시회를 매년 연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사라지기 쉬운 전통공예 제작을 지원하고 예술작품들을 알리기 위한 행사다. 황갑주 선생님도 이 사업에 공모해 1천만을 지원 받아 작업을 했다. 요즘 금 한 냥이면 250만 원 정도인데 선생님이 작업하는데 필요한 원자재가 금, 은류이다 보니 개인의 힘만으로 작업을 한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황갑주 선생님은 한국 귀금속전승공예 장인이다. 올해로 귀금속공예에 입문한 지 63년이 되었다. 선생님은 한국귀금속보석기술협회를 만들고 초대명예회장을 맡으셨다.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장려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익산 보석박물관에는 선생님이 백제 무령왕릉에서 나온 은탁은잔을 재현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a

선생님이 작업하신 공예품 ⓒ 설혜영


a

작업실에 전시되어 있는 사리함과 사리병등 전통공예 작품 ⓒ 설혜영


"전통을 하려면 전통에 맞는 걸 해야 한다. 풍류도 즐길 줄 알아야 되고 창도 네댓 개는 해야 한다. 문화원에서 1년 반 동안 창을 배웠다. 지난 회갑전에서 사철가를 완창했다. 완창 하는데 8분 걸렸다. 전통은 전통에 맞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금은세공에서 전통공예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선생님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65년부터 틈틈이 김정섭(중요무형문화재 35호 조각장)에게 금속공예전통기법과 조각기술을 전수받았다. 전통은공예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82년부터 90년까지 김충현, 김창섭 서예가에게 서예를 사사하고, 홍신표 한국화 화가한테 문인화를 배우면서 백제와 고려시대 유물복제와 조선시대 장신구 노리개, 장도, 비녀, 반지 작업을 하게 되었다.

- 후대를 키우고 계시는가?
"못 키운다. 배고파서 할 수가 없다. 내가 돈을 대줄 수가 없다. 보조대가 있어서 일이 많을 때는 불러서 같이 한다. 전문적으로 작업할 때 데려다가 써야지. 어렸을 때는 조각까지 같이 했다. 만들고, 광내고, 모래 맞추고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다. 이제는 한 사람이 와서 못한다. 디자인만 해서 세공사에게 부탁을 하면 그게 자기 작품이라고 하는 시대다."

돈을 대줄 수가 없어서 후대를 키울 수 없고, 가끔 공동 작업을 하면서 기술을 전수해줄 뿐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걸렸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박수근, 이중섭 화가도 모사품 일명 쫑쫑이 그림을 그린다고 홀대받는 삼각지 화랑거리에서 작업을 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a

작업중인 은비녀를 보여주고 계신 황갑주 선생님 ⓒ 설혜영


제2의 고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선생님의 삶은 용산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청파동에서만 50년을 사셨다는 선생님께 동네이야기도 들어보았다. 청파동 주물공장 굴뚝과 만초천 굴뚝에 대한 기억도 말씀해주셨다. 지금은 복개되어 버린 만초천의 옛 모습이 살아 나왔다. 만초천을 여쭈니 대뜸 개천이라고 칭하시는 데서 느껴지는 익숙함이 당장 5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개천, 옛날에 개천의 중지도(용산에 중지도라니 중지도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였다)에 얼음공장에 있었다. 청파동 세운슈퍼 앞에 만초천이 흘렀는데 그 가운데 나무 심어놓은 곳이 중지도였다. 거기에 설렁탕집, 술집들이 있었다. 뚱뚱이 할머니 설렁탕집에 자주 갔다. 지금도 주변에 대포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는 친구들이 술을 먹다가 술값이 떨어지면 내 이름 대고 거기서 술을 한잔 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 선생님 사업가로도 많은 활동을 하셨다면서요?
"금은방. 금도매도 했다. 남대문, 명동에서 43년 사업을 했는데 기술자 50명을 데리고 있을 정도로 사업이 잘됐다. 그 때 당시 롯데, 코스모스 백화점 주문을 받아서 했다. 가방 들고 지방에서 장사하는 사람까지 두고 일을 했다. 서울담당 제품이 나오면 보석반지가 한 바가지가 나올 정도였다. 한일회담 이후에는 일본 사람들이 깃대 들고 관광을 왔다. 그때 없어서 못 팔았다."

a

선생님이 작업하신 전통 공예품 ⓒ 설혜영


- 판매 상품과 예술품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상품과 작품은 100퍼센트 다르다. 똑같은 건 안 한다. 이것(은 사리장엄구를 가리키며)은 두 번째 만든 건데 첫 작품은 7~8년 전 1300만 원 받고 팔았다. 이걸 똑같이 만든다고 해도 여기에 새겨진 조각은 다르다. 문화재급은 10개까진 만들 수 있다. 주문을 받아도 똑같이는 만들지 않는다. 이 작품을 뺑 둘러서 야생화, 밑에는 인동당초 문양과 우리나라 8군자를 새겼다. 전부 우리 걸로만 했다."

- 전통공예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배고프고 가난해서 시작했다. 6남 2녀인데 내가 셋째다. 큰형님이 상업학교에 가고 둘째형님은 공업학교에 갔다. 이제 내가 중학교를 가야 하는데 갈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16살 때 순천에서 입문했다. 내가 기술 적응이 빨라서 먼저 들어온 사람들을 앞질렀고 사장이 전남 구례에 처음 금은방을 내는데 나를 파견시켰다.

1년 반 장사시키더니 다음에는 벌교에 보냈다. 이러다가 사장한테 이용만 당하겠다 싶어서 서울로 올라와서 신세계 백화점으로 왔다. 순금, 백금, 보석을 했다. 보석을 다루는 일이라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았는데 내가 그렇게 보였던지 일거리가 따라 왔다. 4년 만에 독립했는데 그 때가 23살이었다. 나중에 순천학교에서 7회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60년 넘는 작업을 한 선생님 손에 눈길이 갔다. 선생님 손을 좀 보여주시라 청했다. 남성의 손이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아담하다. 작업 도중 약품이 닿아서 굵어진 손톱이 눈에 띌 뿐 생각보다 곱다. 부지런한 손이다.

a

선생님의 작품인생을 함께 해온 연장 선반 ⓒ 설혜영


a

황갑주 선생님 작업실의 연장통 ⓒ 설혜영


1960년 우리나라에서 자수정이 발견되었다. 이후 80년대에 선생님이 자수정 생산업체로 국가 지정을 받았고 정부 정책 사업으로 한국공예품 종합판매장을 운영했다. 88서울올림픽 홍보와 외화벌이를 위해 자수정 생산품을 가지고 일본 백화점을 돌며 판매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때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셨다.

"공예품 보석 쪽으로 전문 생산업체 지정서를 받았다. 일본 유명백화점 돌아다니면서 대한민국전을 했다. 전두환 정권 때였는데 미스코리아와 일류가수 조용필, 김수희랑 같이 500평 건물을 얻어서 이벤트 행사, 공연을 했다. 그 때 김수희가 열창, 삼창을 하다가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

작품 설명을 듣다가 쓰임을 알 수 없는 보기 드문 물품을 발견했다. 은 표주박이다. 양반들이 은표주박을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물을 먹었다고 설명해 주신다. 그러면서 우리의 전통이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말씀하신다.

"옛날 사람들은 멋을 알았다. 노리개로 화려하게 치장을 잘했다. 여성 적삼단추는 매듭으로 해버려 없어져 버렸다. 배자단추도 사용 안 한다. 다행히도 남자들 마고자 단추는 아직 남아 있다."
a

작은 반지에도 선생님의 아호인 "저전"이 새겨져 있다. ⓒ 설혜영


a

도안을 끝내고 작업에 들어갈 예정인 은입사 쟁반 ⓒ 설혜영


"용산박물관이 개장하면 기증할 거야."

고희전을 계획하고 하루하루 작품 활동 중이시라는 선생님은 작품을 구상하느라 요즘도 바쁘다고 하신다. 이제 쉬실 만도 한데 선생님의 작품활동은 끝이 없다.

"귀금속에 대한 모든 감정, 평가 자격증은 모두 따 놨다. 진품명품에 나간 게 계기가 되어 진품명품팀에서도 금이나 은에 관해서는 나한테 감정해간다."

고희전을 준비하는 요즘 지난 작품 정리 작업도 한창 진행 중이다. 선생님은 청춘이 담긴 작품 300점을 용산자연사박물관에 기증하려고 준비해놓았다고 하신다. 하루 빨리 용산박물관이 개장되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전통의 멋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인터뷰 #황갑주 #전통공예 #용산 #귀금속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사회의 대안적 개발을 모색하고, 생태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불평부당한 사회를 민의 힘을 믿고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AD

AD

AD

인기기사

  1. 1 '특혜 의심' 해병대 전 사단장, 사령관으로 영전하나
  2. 2 "윤 대통령, 달라지지 않을 것... 한동훈은 곧 돌아온다"
  3. 3 왜 유독 부산·경남 1위 예측 조사, 안 맞았나
  4. 4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5. 5 총선 참패에도 용산 옹호하는 국힘... "철부지 정치초년생의 대권놀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