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

양철지붕 아래의 가난을 이긴 사람들

[필리핀 여행기] 애틋한 사랑을 담은 그들의 미소

등록 2017.04.21 12:15수정 2017.04.2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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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필리핀의 한 도시. 낡은 지붕이 가난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저 지붕 아래 인간의 삶까지 남루한 건 아니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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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필리핀의 작은 섬. 아름답다. ⓒ 구창웅 제공


현대인이 일상에서 모험을 즐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여행에서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다소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여행지에서의 '스릴'을 즐기는 편에 속한다. 그래서일까? 안전성 면에서 훨씬 높은 점수를 받는 큰 비행기보다 작은 비행기가 좋다.

소규모 난기류에도 흔들리고, 대형기에 비해 추락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되는 소형기들 말이다. 여러 차례의 제주도 여행에서도 60인승 정도의 작은 비행기를 탔던 게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필리핀 여행에서도 소형기를 자주 탔다. 필리핀은 대략 7050개 정도의 섬으로 이뤄진 나라고, 각각의 섬들을 이어주는 유용한 교통수단이 작은 비행기와 페리(ferry)다. 필리핀에는 에어필리핀, 필리핀항공, 세부퍼시픽, 동남아시아항공 등 크고 작은 항공사들이 여러 개 있다.

보라카이 섬의 관문인 카티클란에서 수도 마닐라로 이동했을 때는 동남아시아항공 비행기를 탔다. 승객이 채 30명도 되지 않았다. 물론, 비행기 역시 버스보다 작았다. 객석에 앉으면 조종사의 뒷모습이 보이는 소형기에서 내려다본 필리핀의 바다와 육지 풍경은 때론 아름다웠고, 어느 순간은 남루해 보였다.

세부공항에서 칼리보공항까지 날아간 세부퍼시픽 항공기 역시 60~7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작은 비행기였다. 필리핀 어머니와 독일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스튜어디스는 친절한 눈빛으로 난기류의 울렁임을 두려워하는 노인 승객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비행기가 아래위로 요동치는 그때의 상황을 즐기고(?) 있던 건 나 하나뿐이지 않았을까. 당시 흔들리는 창밖으로 보이던 각양각색의 필리핀 가옥 지붕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이질적 단어인 가난과 낭만이 섞인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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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서민들과 여행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대중교통인 트라이시클.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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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거리. 지프니(jeepny)에 올라 각자의 목적지를 향하는 사람들. ⓒ 구창웅 제공




여행이란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시간

여행 또는, 일상에서의 떠남이란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자신의 내부'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체험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바람에 실려 오는 한 점 먼지도, 햇살 아래 조그만 보랏빛 꽃 한 송이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시간을 선물 받는 게 여행이지 싶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를 인용하자면 "언어란 존재의 집"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의 시인은 "언어만이 인간을 문학으로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언어로 존재의 집을 짓는 게 비단 시인이나 소설가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만의 언어로 수백 년 무너지지 않을 성(城)을 축조하고 싶다는 꿈을 아직도 온전히 버리지 못한 존재가 아닐까? 비단 문학청년, 문학소녀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필리핀 비사야제도를 떠돌며 이런저런 상념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던 시간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은 행복했다.

"대체 나는 누구에게 존재를 온전히 확인시킬 수 있을까?"
"세상의 가난과 불행은 어째서 해결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일까?"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이 과연 절대적일까?"

위와 같은 평소에는 하기 힘든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가슴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필리핀 여행만이 아니었다. 동유럽과 중동, 아시아 다른 국가를 여행한 후에도 나는 훌쩍 자라있는 '정신의 키'를 실감하곤 했었다. 평소에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나의 내부'를 제3자의 입장에서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작가 한수산이 장편소설 <부초(浮草)>를 탈고한 후 "곡예사들의 유랑과 새로운 출발에 관해 쓰면서 내 정신의 키가 한 뼘은 자랐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고백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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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판에 복권을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필리핀 노인. 흰 수염과 검게 탄 얼굴에서 그가 살아온 만만치 않았을 삶이 짐작된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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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야시장에선 해마와 전갈 등을 튀긴 독특한 음식도 만날 수 있다. ⓒ 구창웅 제공




가난에 주눅 들지 않은 필리핀 사람들을 기억한다

발리카삭 같은 작고 조용한 섬과 이와는 반대로 사람들로 북적이는 관광지 보라카이, 세부의 해변을 이리저리 헤매 다니던 필리핀 여행이 끝나가던 무렵.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마닐라에 도착해서는 아래와 같은 메모를 남겼다.

"여기는 한때 '동양의 진주'라 불리던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네온사인 휘황한 화려한 신도시 '마카티'에서 택시를 타고 15분만 달리면 거주자의 절반이 매일 끼니 걱정을 하는 거대한 빈민가 '톤도'가 앙상한 뼈를 드러내는 곳. 자비와 긍휼의 구세주가 아니더라도 나 또한 가난한 아이들의 때 묻은 작은 손을 잡아주고 싶구나. 세상과 삶이 불공평하다는 걸 누가 모를까? 그러나, 어쩔 것인가? 한국 역시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서의 삶과 철거민촌의 생이 공존하는 땅. 지구는 생겨나면서부터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별이었던 것을."

다시 생각해본다. 지구가 만약 '불평등과 불합리의 별'이라면 우리는 어떤 힘으로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지. 답은 간명할 것 같다. 바로 '서로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아닐까.

필리핀을 떠돌 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서민들이었다. 낡은 버스와 트라이시클을 몰던 기사들, 관광지 거리에서 구운 소시지와 복권을 팔던 장사꾼들, 검게 탄 등에 무거운 물건을 올려 힘겹게 나르던 일꾼들…. 그들은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삶을 이어가면서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의 웃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미소는 남루와 빈한함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아껴줄 식구와 이웃을 향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랬다. 어떤 참혹한 가난도 사랑을 이기지 못했다. 이게 필리핀 여행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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