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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지하철 성추행

[서평] 나의 페미니즘 입문서 <82년생 김지영>

등록 2017.04.19 19:47수정 2017.04.1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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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가에 불고 있는 '페미니즘' 열풍이 뜨겁다. 하루가 멀다하고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이 그를 증명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른다. 오히려 페미니즘에 대한 강한 편견을 갖고 있는 '보수적인' 남성에 가깝다. 페미니즘의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기도 전에 페미니즘이 가져온 사회적 문제들, 이를테면 '메갈리아', '워마드' 논란은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삐딱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페미니즘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주요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내 주위에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는 지인들이 늘어났다. 반감과 편견에 사로잡혀 페미니즘을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나조차도 페미니즘을 공부해야만 하는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의 흐름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82년생 김지영>을 집어들게 된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여자니까 태어나선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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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82년생 김지영> 표지 ⓒ 민음사

<82년생 김지영>은 한국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보편적인 차별과 그로 인해 여성들이 느껴야만 하는 공포, 좌절, 혼란, 설움 등의 감정을 그려낸 소설이다. 주인공의 이름인 김지영은 1982년에 태어난 여성 중 가장 많은 이름을 차지하고 있는 이름이다. 김지영은 곧 보편적인 한국 여성을 대변하는 이름인 셈이다.

작가는 김지영씨의 출생부터 결혼 후 출산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삶을 담담한 어조로 관조해나간다. 그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이 땅에 살고 있는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김지영씨는 1982년 4월 1일,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키 50센티미터, 몸무게 2.9킬로그램으로 태어났다. 김지영씨 출생 당시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위로 두 살 많은 언니가 있고, 5년 후 남동생이 태어났다. 방 두 개에 마루 겸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인 열 평 남짓 단독주택에서 할머니와 부모님, 삼 남매 이렇게 여섯 식구가 살았다." - p.23

출생 당시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환경을 묘사한 이 한 문단은, 앞으로 그녀가 한국 여성으로 살며 겪어야 할 숙명과도 같은 고난을 암시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상대적 약자인 여자로 태어났다는 사실, 할머니의 남동생 편애, 그런 할머니와 함께 방을 쓰며 온갖 차별적 언사를 겪어야만 했던 좁은 집까지.

심지어 그녀는 출생조차 환영받지 못했다. 첫째에 이어 둘째 김지영씨까지 줄줄이 딸을 낳았던 어머니 오미숙씨는 시어머니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런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선심 쓰듯 위로한다.

"괜찮다. 셋째는 아들 낳으면 되지."

셋째를 가졌을 때, 또 딸이면 어떡하나 걱정하던 오미숙씨에게 남편은 한 마디 툭 던진다.

"말이 씨가 된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자."

믿었던 남편의 한 마디에 오미숙씨도 기어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녀는 홀로 산부인과를 찾아 셋째 딸을 지웠다. 여자라는 태생적 조건이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었던 사회에 그녀는 그렇게 '던져졌다'.

차별과 멸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여성의 삶

김지영씨는 자라면서 끊임없는 폭력에 노출된다. "원래 남자애들은 좋아하는 여자애를 괴롭힌다"며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그녀에게 가해자를 이해하라고 부추기는 담임선생님, 남자친구와 헤어진 그녀를 '씹다 버린 껌'으로 묘사하며 뒤에서 낄낄거리던 대학 선배, "첫 차부터 여자를 태우면 재수가 없지만 특별히 태워준다"며 선심 쓰듯 말하는 택시 기사까지.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그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녀의 삶을 통틀어 전개되는 폭력의 경험은 여성의 존재가 차별과 멸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대적 약자임을 말해준다.

"태워준다고? 김지영 씨는 순간 택시비를 안 받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가 뒤늦게야 제대로 이해했다. 영업 중인 빈 택시 잡아 돈 내고 타면서 고마워하기라도 하라는 건가.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 p.101

마지막까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할 가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성폭행 당할 뻔한 위기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온 그녀에게 아버지는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며 호되게 야단친다.

소설이라 너무 과장된 것 아니냐고?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옷을 야하게 입고 다니는' 여성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던 일부 보수적인 남성들의 주장을 나는 기억한다. 따라서 소설 속 그녀의 아버지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흐릿하게나마 남아있는 가부장제를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을 포기한 그녀에게 돌아온 말 '맘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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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여성 ⓒ pixabay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 능력을 발휘하던 김지영씨는 좋은 남자친구를 만나 결혼에 성공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를 낳는다. 워킹맘으로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할 무렵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동료 직원들의 노골적인 눈치, "임신했으면 집에나 있지 뭐하러 나오느냐"며 마지못해 지하철 자리를 비켜주던 여대생까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었던 그녀는 결국 스스로 회사를 떠난다. 그녀는 기존의 사회가 요구해왔던 대로 남편에게 내조하고 육아에 충실한 주부의 역할에만 전념한다. 그러나 가정을 위해 자신의 사회적 삶을 기꺼이 포기한 그녀에게 또 한 번의 잔인한 폭력이 가해진다.

어느 볕 좋은 날, 유모차를 끈 채 공원을 산책하던 그녀의 귀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똑똑하게 들었다. 그들이 자신을 '맘충'이라고 부르는 것을. 뜨거운 커피가 넘쳐 손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도 모른 채, 그녀는 유모차를 끌고 무작정 달렸다. 그녀의 뒤로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커피나 마시며 살고 싶다'는 말들이 비수처럼 날아와 그녀의 등에 꽂혔다. 그녀는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절규한다.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 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 p.165

정면으로 마주하기 고통스러웠던 일상의 폭력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집어들었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장을 덮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태어나 겪을 수밖에 없는 폭력에 노출된 일상에 대해 나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기억이 없다. 그 적나라한 폭력의 실체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태생적으로 여성의 삶을 이해할 수 없는 내게도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남성이라는 성별을 한 번도 특권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만, 적어도 남성 중심 사회에서 본의 아닌 혜택을 입으며 살아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적어도 나는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성별 탓에 좌절해 본 경험도 없었고, 버스와 지하철에서 누군가 나를 성추행하지는 않을까 걱정해 본 기억도 없다. 나는 비로소 일상의 폭력에 늘 노출된 채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여성들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페미니즘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페미니즘의 본질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해소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정작 페미니스트들조차도 페미니즘을 뚜렷하게 정의내릴 수 없다고 말한다. 같은 기치 아래 모인 사람들이라고 해도 저마다의 또 다른 소수의견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극단적 페미니즘을 페미니즘의 본질로 규정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내가 이해한 페미니즘은 성별을 떠나 개별적 존재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김지영씨에게 정당한 보상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그러나 보상과 응원이라는 단어도 결국 약자나 피해자에게나 적용되는 표현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상대적 약자이자 피해자에 가까운 게 현실이지만, 그러한 현실의 극복이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적 아닐까.

따라서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주장한다. 김지영씨에게 보상과 응원이 아닌, 동등한 스타트라인과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우리 사회의 차별적 시선을 거두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한편으로 남성과 여성을 양분하며 남성을 적대시하고 극복 내지는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하는 극단적 페미니즘 역시 페미니스트들이 스스로 경계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저, 민음사, 2016.10.14,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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