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정한 예술가가 맞습니까?'라는, 촌스럽지만 필요한 질문에 대하여

[주장] 내가 예술가가 맞는지 고민하는 개인과 국가에게 바치는 글

등록 2017.04.19 11:24수정 2017.04.1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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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란 무엇인가'. '토토가 세대'라면, 아이돌 H.O.T. 출신 문희준이 자신을 '아티스트'라 일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중들에게 얼마나 오랜 기간 얼마나 가혹한 조롱과 비아냥속에 살아야 했는지 기억할 거다. 이후엔 '낸시 랭'이 등장해 역시 비슷한 이유로 욕을 들어먹었다.

나중에 문희준은 '락커 자격증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한다. 정말 오죽 갑갑했으면 그런 말까지 했을까 싶다. 하지만 진짜 락커 자격증이 있대도 문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다. 홍대 미대 대학원 졸업장을 가진 낸시 랭도 욕 먹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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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투표 유도 퍼포먼스를 하는 아티스트 낸시 랭 씨. ⓒ 낸시랭닷컴


그럼 대체 예술가는 뭔가. 한 번 꼼꼼히 따져보자. 요리 솜씨가 좋은 분들이 계시다. 그 솜씨가 워낙 훌륭해 식당 좀 제발 차리라고 돈다발 싸들고 뒤를 쫓아다니는 이들마저 있을 만큼 정말 실력이 어마어마한 분들이 있다. 우리 이모할머니가 그런 분이신데, 매 끼니 '식사'라기 보다 '경험'에 가까운 밥상을 차려내신다. 하지만 그 분은 그걸로 돈을 벌지는 않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그를 '요리 연구가'라 부르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작업이 돈이 되는가, 내지는 그것이 생계의 중심인가를 두고 예술가이냐 아니냐를 구분해볼 수 있겠다.

이 주장은 실제로도 가장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데, 사실 크나큰 맹점이 있다.훌륭한 글실력 음악실력 그림실력을 가지고도 그것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랑 씨가 대표적이겠다. 그는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을 만큼 실력 있다. 그가 받은 트로피는 그의 실력을 '증명'한다. 하지만 그는 수상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음악만으로 생계를 이을 수 없음을 고백한다. 그렇다면 그는 예술가가 아닌 것인가. 트로피를 경매해서라도 돈이 돼야만 예술가로서의 이랑은 완성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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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부문을 차지한 아티스트 이랑. 출처는 이랑 페이스북. ⓒ 이랑


웃기는 사실은 '작가의 작품이 생계의 중심'인가의 여부로 '예술가인지 아닌지'를 검증하면, 글의 도입에 언급한 문희준이나 낸시 랭이야말로 '참 예술가'가 돼 버린다는 점이다. 실제로 당시에도 이런 얘기들이 있긴 했다. 자기 작품 하고, 그걸로 먹고 사는데 그럼 그게 예술가지 뭐가 예술가냐. 대답은 뻔하다. 문희준은 돈을 많이 벌었고 낸시 랭은 방송활동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 즉 '예술'에 '순수성'이 없다는 거다.

불행히도 이런 촌스런 시각이, 아직도 없지 않다. 이랑 씨가 자기 트로피를 경매해버린 '사건'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고, 개중엔 '시상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와 같이 그나마 토론할 가치는 있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예술의 순수성을 훼손했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아니, 거의 다였다.

예술의 무엇을 어떻게 훼손했단 얘긴가 싶어 이들이 남긴 글을 꼼꼼이 읽어보았다. 흥미롭게도 예술과 가장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들 사이에서, '예술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네들 나름의 대답이 있더라. 그러니까, 예술가란 자기 작품으로 먹고 살되 부나 명성과 같은 데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되며 작품은 아무리 실용예술이더라도 순수예술의 성질을 잃지 않아야 하는 뭐 그런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회사원으로 치면 자기 직장에서의 업무를 생계로 하되 업무에 대한 신실한 마음과 상사에 대한 존경으로 노동에 임해야 한다는…뭐 그런 얘기가 된다. (그런데 써놓고보니 놀리려고 빗댄건데 정말 한국은 회사원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들이 무임으로 노동하는 시간을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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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상에서 수시로 올라오는 사진. 예술가인 척 수고 많으셨습니다. ⓒ 강동희


나는 이 한심한 리그에 동참할 의향이 없다. 하지만 예술가에 대한 정의는 영화 비평을 여러 언론에 써온 나 역시도 알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예술가'인지에 대한 정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아무리 최고은법을 만들어도 예술가로 인정되지 아니하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나는, 단어의 정의를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되고 정확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사전'. 찾아보니 무용 음악 문학 등의 예술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이란다. 그러니까, '쓰면' 작가고 '그리면' 화가고 '부르면' 가수고 '추면' 무용가인 거다.

'오늘도 예술가인 척 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낙서가 인터넷에 두고 두고 회자되는 건 그 낙서가 과연 내가 진정한 예술가가 맞는지, 나 자신을 예술가라 불러도 좋은지에 대한 수많은 무명 예술인들의 불안을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이 사회에서 예술가로 인정받기란 참 애매하고 어려운 일이다.

이에 나는 감히 예술의 정의를 이렇게 정리해보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일용직 노동자다. 그러나 '진정한 일용직'이 맞는지, 내가 '일용직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지 같은 건 따져 물어본 적 없다. 하루간 열심히, 정직하게 일하고 그 하루에 대한 임금을 받으므로 일용직이 맞다.

이렇게, 일용직을 하는 내가 일용직으로 불린다는 사실과, 사전에 적힌 예술가의 의미를 종합했을 때, 우린 '잘 그리든 못 부르든 예쁘게 쓰든 밉게 추든', 당신이 당신의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면 당신은 예술을 하는 사람이 맞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내 길이 맞는지,내가 재능 가진 자가 맞는지, 의심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의심은 불과도 같아 쓰기에 나름이다. 당신은 그 의심을 당신을 더 노력하게 만들고, 더 배우도록 만들고, 작업을 계속하도록 만드는 동력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의심이 들더라도, 누가 무어라 비웃더라도, 절대 작업을 멈추지 마시라. 작업을 계속하는 한, 당신은 예술가다. 내가 일용직을 계속하는 한 일용직 노동자이듯 말이다.
#최고은법 #예술가 #아티스트 #이랑 #낸시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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