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카제 불었어도 쓰시마는 예외였다

원나라와 싸웠던 곳에 일본군 추모 신사가 있네

등록 2017.04.20 10:22수정 2017.04.2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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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금)~16일(일), 2박 3일 동안 선배님들을 모시고 일본 쓰시마에 다녀왔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봄이라 벚꽃 구경을 비롯하여 녹음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섬의 풍광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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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시마항구에서 차 한잔 ⓒ 김수종


14일(금) 오전 5시 15분 KTX열차를 그림 그리는 김경희 선생과 함께 서울역에서 부산역으로 향했다. 7시 50분에 부산역에 도착하여 로드 디자이너(road designer) 고광용 선배와 만나 10분을 걸어 부산항에 닿았다. 8시에 발권을 하고 잠시 쉬면서 식사를 한 다음 9시 20분 배편으로 쓰시마 남섬의 이즈하라(厳原)항구로 출발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이제 멀미를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멀미로 고생을 많이 해서 처음 한두 번은 꼭 멀미약을 미리 먹었지만, 이제는 적응이 되었는지 약을 먹지 않고도 편안하게 배를 타는 것이 가능해졌다. 건강해진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약간 어지러운 경우에는 억지로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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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시마벚꽃 진다 ⓒ 김수종


배는 정확히 두 시간을 달려 이즈하라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까지는 20분 정도 걸렸다. 벌써 완연한 봄이라 사람이 많다. 4월부터 10월까지는 언제나 만석으로 배가 오가는 것 같다. 벌써 숙소는 물론 식당, 렌터카 등이 부족하여 어려움이 많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3명이고, 내일 한사람이 더 와서 4명이 이번에 여행을 같이 하게 되었다. 항구에 도착하니 북섬의 가와치(河內)에서 렌터카 사업을 하는 김삼관 사장이 차를 가지고 와서 편안하게 차를 빌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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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시마에서 점심일본 쓰시마 ⓒ 김수종


시내 산책을 잠시 하고는 바로 점심을 먹기 위해 작은 뷔페(buffet)식당으로 갔다. 생각을 해보니 이곳 쓰시마에는 뷔페식당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본토에 가면 초밥, 불고기, 샤브샤브, 오코노미야키(お好み焼き). 몬자야키(もんじゃ焼き) 등등 정말 온갖 '타베호다이(たべ放題, 무한리필)가 천지인데 말이다.

아무튼 이곳 가게는 처음이다. 지난번에 한번 왔었는데 손님이 많아서 입장도 못했다. 이번에는 조금 빨리 와서 그런지 그냥 3명이서 편하게 앉았다. 나는 닭의 간, 토마토, 요구르트, 감자, 닭튀김, 계란, 빵 등을 먹고 주스와 커피까지 한잔했다.

식사를 마치고는 바로 앞 약국에 잠시 갔다. 경희 선생이 발바닥에 붙이는 파스를 하나 구한다고 해서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없었다. '친구 따라 장에 간다'고 나는 얼떨결에 집사람에게 주려고 다리와 발에 부치는 피로회복용 파스를 한통 샀다.

1000엔에 샀는데, 사고 나서 생각을 해 보니 조금 비싼 것 같다. 나중에 할인마트에 가서 사도 되는데 성질 급하면 늘 후회하고 산다. 다음 날 할인마트에 가서 보니 똑 같은 것이 700엔 한다. 이런 분통 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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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시마와카타 마을 ⓒ 김수종


이제 차를 타고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무조건 섬 서쪽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차도 사람도 거의 없고 도로도 좁은 '아리아케산(有明山)'을 크게 둘러서 섬 중앙에 있는 '와카타(若田)' 마을로 갔다.

정말 봄이다. 산은 온통 연녹색을 드문드문 밝기에 따라서 뿌려 놓은 듯 요란하다. 삼나무와 편백나무 위주의 침엽수가 많은 곳이지만, 중간 중간에 동백과 벚나무 등이 있어서 색이 남다르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바라보니 창밖 풍광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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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시마와카타 마을, 우리와 비슷한 풍경이다 ⓒ 김수종


와카타 마을은 그냥 우리 시골 풍경과 비슷하다. 작은 개천을 따라 농가들이 보이고, 중간에 밭이 많다. 논은 적고 밭은 많지만, 산지가 많은 쓰시마에는 밭도 생각보다 크지는 않다. 이번에 다시 확인한 것은 들짐승들이 많은 곳이라 농지는 어디를 가도 펜스(fence)로 둘러싼 울타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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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시마정말 농지는 전부 펜스로 그물망이 있다 ⓒ 김수종


작고 귀한 농지에 산짐승들이 마구 드나들면 피해가 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정말 곳곳 어디를 가도 농지는 대부분 펜스로 막아두었다. 마을 풍광을 조망하다가 고 선배가 이곳 안쪽에 벼루마을이 있다고 하여 계곡 안으로 차를 몰아서 들어갔다.

"예전에 벼루마을 표지판을 보고 들어갔는데, 아무 것도 못 찾고 돌아 나왔던 기억이 있다"고 했지만, 일단은 무작정 들어가 보았다. 길 옆으로 집이 십여 채 있었지만, 들어가서 물어보려고 해도 다들 밭에 나갔는지, 대답이 없는 집들뿐이다. 그래서 그냥 마을 깊숙한 곳까지 갔다.

하천이 끝나고 작은 보가 보인다. 걸어서 보의 위까지 올라가 보니 물이 거의 없다. 이곳도 봄 가뭄인가 보다. 새가 날고, 두릅나무에는 잎이 올라온다. 산도 점점 푸르러진다. 벚꽃은 천천히 떨어지고 잎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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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시마벼루마을 안쪽의 보, 물이 거의 없다 ⓒ 김수종


이제 다시 마을 초입으로 길을 돌려 잡는다. 벼루 마을이라고 했는데,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이상하여 이번에는 보이는 집을 전부 가가호호 방문했다.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초로(初老)의 부부를 발견하고는 물어보았다.    

"진입로에 벼루 마을이라는 글씨가 보이던데, 도대체 어디죠?"
"아! 벼루마을, 저기 옆집이 예전에 벼루를 만들었으니 거기 가서 물어보세요."

감사 인사를 하고는 옆집으로 갔다. 한참을 문을 두드리며 인기척을 보냈더니 어르신 한분이 나오셨다.

"벼루 마을 안내판을 보고 왔습니다"라고 했더니, "이런 죄송한. 예전에 계곡 안쪽에 좋은 돌이 나와서 그것을 가공하는 가내공장이 3~4곳 있었는데, 우리 집이 지난 2014년에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어요"라고 했다. 이런! 아쉬움, 안타까움. 벼루 마을 안내판을 이제는 '옛 벼루 마을'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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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루 마을의 마지막 공장 집일본 쓰시마 ⓒ 김수종


하기야 벼루를 만들어도 요즘은 붓글씨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판로도 문제일 것 같았다. 아무튼 별로 재미없는 곳에 갔다가 왔다. 이제 다시 차를 몰고 봄꽃 구경을 더 하면서 서쪽 바닷가에 있는 '고모타하마(小茂田浜)신사'와 나란히 있는 '겐코 옛 전쟁터(元冠の役古戰場)'로 갔다.

고모타하마신사는 쓰시마 도주 '소 스케쿠니(宗助国)'와 부하 장병을 함께 합사한 곳이다. 1274년 원나라의 일본 원정으로 쓰시마는 전체가 침략 당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지명이 나오는 곳은 사스우라(佐須浦)뿐이다. 그 이유는 사스우라에서 도주 소 스케쿠니가 전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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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시마신사에서 ⓒ 김수종


당시 해안선은 여기에서부터 500미터 상류에 위치하고 있었고, 소 스케쿠니는 원군에 맞서 싸우다가 숨졌다. 매년 11월 12일은 원의 원정을 잊지 않기 위해 이곳 신사에서 대제를 지낸다.

대제에는 우선 가마를 인 행렬이 입장하고, 뒤에는 씨족신을 받드는 사람들이 선조 때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투구, 갑옷, 창 등을 몸에 찬 무사의 모습으로 입장한다. 아울러 몽골군과 맞서 싸우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바다를 향하여 활쏘기를 하는 '메이겐기(鳴弦儀)'행사가 열린다.

서기 1274년과 1281년 두 번에 걸친 몽골군의 침략으로 이곳 쓰시마와 이웃한 '이키섬(壱岐島)'은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1274년 10월 5일 몽골군 대장은 9백 척의 군선과 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곳으로 쳐들어왔다.

당시 쓰시마 도주 소 스케쿠니는 병사들을 이끌고 인근의 '히지키탄'에 진지를 구축했다. 지금처럼 간척이 되지 않았던 그 옛날 사스우라(佐須浦)는 현재보다는 더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만이었다. 전투는 10월 6일 오전 4시경에 시작되어 오후 9시까지 싸웠으나 병사들은 모두 전멸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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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시마신사의 본전 ⓒ 김수종


전투 이후 소 스케쿠니의 묘지라고 불리는 곳은 시모바루(下原)의 '오쿠비즈카(お首塚, 머리무덤)'와 가시네(樫根)에 '오도즈카(お胸塚, 몸 무덤)'이다. 최고 수장의 무덤이 두 곳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전투가 치열했다는 뜻이다. 당시 소 스케쿠니는 86세의 노장이었다.

아무튼 1274년 1281년 각각, 원나라가 일본을 침공했을 때 원군의 배를 전복시킨 폭풍우인 '가미카제(かみかぜ,神風)'가 불었어도, 쓰시마는 피해가 심각했었나 보다. 전쟁의 기억은 쓰시마 곳곳에 아직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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