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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고 싶은 일 하려면, 이걸 따져야

[서평] 윌리엄 맥어스킬 <냉정한 이타주의자>

등록 2017.04.21 08:01수정 2017.04.2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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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도와서 세상을 더 좋게 만들겠다는 생각은 좋은 생각이다. 선의와 열정까지 있다면 더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선의와 열정만으로는 남을 돕는데 한계가 있다. 자칫 잘못했다간 타인에게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나름 기발한 아이디어와 선의, 열정이 결합되었지만 남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처참한 실패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대표적인 예가 바로 플레이펌프(Playpump)다.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식수가 부족한 지역이 많다. 근대화된 시설에서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지역은 우물에 의존해야 한다. 지하수를 퍼 올리기 위해서는 펌프질이 필요하다. 중년 남성 트레버 필드는 이것을 보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돌리면서 타는 회전 놀이기구인 뺑뺑이를 활용해서 우물물을 퍼 올리는 기구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플레이펌프다. 이 기구는 어린이들이 뺑뺑이를 돌리면 물이 길어진다. 그는 관련 비용은 플레이 펌프에 광고를 붙여서 충당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플레이펌프는 사람들에게 많은 호평을 얻었고, 실제로 아프리카에 보급도 되었다. 부시 대통령의 영부인도 플레이펌프 사업을 지지했다. 주민들에게 물도 제공하고 아이들에게 즐거움도 제공하니 좋은 사업이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플레이펌프 사업은 처참하게 망하고 말았다.

구매력이 부족한 아프리카 시골 마을에 광고를 할 기업도 없었고, 플레이 펌프의 효율이 수동 펌프보다 나빴던 것이다. 아이들은 플레이펌프를 타다가 지치고 말았고, 주민들은 평범한 수동펌프가 더 낫다고 답했다. 결국 플레이 펌프는 주민들의 외면을 받아 흉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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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이타주의자 ⓒ 부키

플레이펌프의 사례가 보여주듯, 남을 돕겠다는 마음만으로는 남을 돕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가능하면 남을 돕는 방법 중에서도 효율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 남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읽을 만한 책이 바로 <냉정한 이타주의자>다. 이타주의도 더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사람이 쓴 책이다.

저자인 영국의 철학 교수 윌리엄 맥어스킬은 효율적 이타주의를 주장한다. 효율적 이타주의는 '내가 가진 능력으로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를 자문하고 증거와 신중한 추론으로 그 해답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기부할 곳이나 진로를 선택할 때 효율성을 검토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부는 다른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위대한 행위다. 하지만 어떤 기부는 다른 기부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가령, 개발도상국의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서 기부한다고 치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현금이나 교복을 지원하는 것도 방편이다. 하지만 면밀한 검토를 통해 다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학생 교육에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다른 지원을 하는 것이 낫다.

'학교에 출석하는 학생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경우 1000달러당 출석 기간을 겨우 0.2년 늘릴 뿐이다. 교복을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투입 비용 1000달러당 7.1년을 늘려 약 35배나 큰 효과를 보였다. 한편 기생충 구제 사업은 1000달러당 총 139년을 늘려 그보다 20배 많은 성과를 냈다. 남을 도우려 할 때 돈을 '잘' 쓰는 것과 '가장 잘' 쓰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77P

위 사례의 경우, 아이들을 아프게 하는 기생충을 구제하는 것이 책을 주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기부이다. 책은 우리가 기부를 하고 싶다면 목적에 맞게 예산을 집행하고, 투명성이 보장된 효율적인 곳에 기부하는 편이 좋다고 말한다.

단순히 나의 감정이나 선의가 아닌 효율을 검토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숫자를 하나하나 따지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선행의 본질이 흐려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선행이 선의뿐 아니라 냉정한 판단에도 기반해야 정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기부뿐 아니라 진로 선택에도 효율적인 기준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과 직업을 선택할 때 윤리적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으면 일찍 공익 분야로 뛰어들라고 권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진로가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조직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쌓고 전문 분야에서 훈련한 뒤 참여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힘닿는 데까지 최대한 남을 돕고 싶다면 행동의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선행이 타인의 삶을 어떻게 개선시킬 수 있을지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자원봉사에 지원하거나 직업을 선택하거나 윤리적인 소비를 실천할 때는 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시간과 비용은 얼마나 들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그들의 삶을 얼마나 개선시킬 수 있을까?' -65P

또한 저자에 따르면 남을 돕고 싶지만 이타적인 분야에 적성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직장에서 전문성을 쌓는 것이 낫다. 꼭 직접 몸으로 하지 않아도, 고소득 직종에서 돈을 벌어서 기부하는 것도 남을 돕는 좋은 방법이다.

'남을 돕는 데 유용한 기술을 익히지 못했다면 기부를 위한 돈벌이가 특히 좋은 방법이다. 고소득 직장을 버리고 남을 돕는 일에 직접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는데,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면 계속 고소득 직종에 종사하면서 기부를 많이 하는 편이 낫다. 1970년대에 브라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학계를 떠나 미술상으로 변신한 프레데릭 물더가 그 예다. 그는 미술상으로 명성을 쌓으면서도 자신의 경력을 활용해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은 변치 않았다. (중략) 그는 여전히 미술상으로 활동하며 해마다 소득의 10~80%를 기부하고 있다.' -240~241P

저자는 이렇듯 책의 모든 부분에서 효율적 이타주의를 강조한다. 올바른 방법만 알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면서, 효율적 이타주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울 것을 주문한다. 효율적 이타주의에 기반한 선행, 기부와 진로 선택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요점이다.

저자가 말하는 효율적 이타주의에 대해 반감을 갖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개개인의 선의 역시 중요한 가치다. 다만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볼 내용이 있다. 세상을 더 좋게 바꾸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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