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히 예상됐던 부작용, 진행자는 왜 '초시계' 역할만?

[2차 대선 TV 토론 분석] 제대로 토론은 못하고 서 있기만 했다

등록 2017.04.20 08:38수정 2017.04.2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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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TV토론 참석한 대선후보들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두 번째 대선 TV토론에 앞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왼쪽부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번 대선 토론은 사상 첫 스탠딩 토론으로 진행됐다. ⓒ 국회사진취재단


"세 분 토론하는 거 보니까 기재부 국장들끼리 지금 논쟁하는 것 같아요. 대통령은 경제 철학이나 사상이나 통치 철학을 갖고 덤벼야지, 뭐, 수치 하나 갖고 따지고 하는 것, 대통령 역할 아닙니다."

19일 KBS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한 말이다. 다른 후보들의 공약 재원 조달 방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이에 답하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국장급'으로 두루 깎아내리면서 대통령 후보로서의 '격'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홍 후보 본인은 적어도 '교육·경제·사회·문화'를 주제로 진행된 '민생 토론' 과정에서 기획재정부 국장급만큼의 진지함도 보여주지 못했다. 문 후보의 '개성공단 2천만 평 확장' 계획에 대해 "북한 청년 일자리 대책"이라며 숫자보다는 색깔만 따지고 들었고, 안 후보에게는 뜬금없이 "포스터에 왜 당명을 표시하지 않았느냐. 박지원 대표가 실세이기 때문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모두 '교육·경제·사회·문화'라는 주제와는 동떨어진 토론이었다. 그럼에도 이날 토론을 진행한 KBS 박영환 취재주간은 수수방관했다. 각 후보들이 '9분' 안에서 자유롭게 질문과 답변을 할 수 있는 토론 방식으로 인해 충분히 예견되는 부작용이었음에도, 마치 당연한 일이란 듯 이와 관련해 주의를 주거나 개입을 '결코' 하지 않았다.

안철수 후보, 시작부터 왜 전인권씨 이야기를...

이와 같은 일은 특히 '교육·경제·사회·문화' 주제 토론회에서 두드러졌다. 토론 시작부터 첫 공격에 나선 안 후보는 최근 자신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가 '적폐 가수'라고 비난받는 가수 전인권씨를 화제에 올렸다. 이어 "왜 예전에 문자 폭탄이나 막말 같은 것을 양념이라고 했냐"고 문 후보에게 화살을 돌렸다. 앞서 진행됐던 '정치·외교·안보' 토론에서나 다룰 법한 소재였다. 그럼에도 진행자는 이를 제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문 후보에게 "관련된 추가 질문인 것 같다"며 답변을 요구했다.

이처럼 안 후보가 주제와 동떨어진 토론에 물꼬를 트자, 이번에는 문 후보가 최근 실시된 재보선 결과에 대한 평가를 홍 후보에게 요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됐으니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 아니냐"며 이를 재보선 결과가 다시 입증하지 않았냐는 내용이었다. 홍 후보는 당연히 아니라고 맞받았고, 그러면서 다시 '교육·경제·사회·문화'와는 하등 관계없는 토론이 이어졌다. 역시 진행자의 개입은 없었다.


토론에 들어가자마자 이로 인해 '허비한' 시간이 4분 15초. 이렇게 갈 '지' 자로 가는 듯한 토론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노동자 중심의 강력한 경제 정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느냐'는 내용의 문제 제기를 문 후보에게 하면서 비로소 제대로 진행되는 듯했다. 심 후보는 "파견법, 기간제법 등 민주정부 10년 동안 제정된 악법들이 현재의 장시간 저임금 노동 현실을 크게 규정했다"며 "이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면 더 강력한 제안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유승민 후보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유 후보는 국민연금소득 대체율 50% 인상 계획과 관련하여 재원 조달 방안을 문 후보에게 집요하게 따져 물었다. 이어 안 후보에게는 "공약을 살펴보니 5년 동안 200조 원을 쓰도록 돼 있는데,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할 것이냐"며 "재원 조달 방법이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얘기했던 것과 거의 똑같다"고 몰아세웠다.

사실상 증세 말고는 답이 없으니 솔직하게 증세할 것임을 밝히라는 요구였다. 그러자 안 후보는 "나도 솔직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다만 순서가 있다. 먼저 정부 재정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하고, 과세제도를 누진제가 적용될 수 있도록 바꾸고, 그다음 순서가 사실 증세"라고 답했다. 이렇게 토론은 '민생 토론'에서 사실상 매우 중요한 '숫자'를 키워드로 무난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잠시 후 토론은 다시 엉뚱한 방향으로 이탈했다.

유승민 "아니, 문재인 후보를 디스하시면서... "

안철수 "(유승민 후보에게) "일전에 문재인 후보가 본인을 지지하지 않는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들을 향해 적폐 세력이라고 하신 겁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건 국민을 지칭한 게 아니었다, 이런 이런 특정 정치인들을 지칭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정치인들이 '모두 다 부인하고, 그건 허위 사실 유포라고, 고발하겠다'고까지 했습니다."

유승민 "자기를 적폐라고 하는데 인정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안철수 "그래서, 그러면, 정치 세력, 저는 계속 그대로 가겠다, 연대가 없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정치세력과도 지금 손잡지 않은 상황인데, 그러면 유일하게 남는 건 국민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는 문재인 후보께서 국민을 적폐세력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저는 그 해석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허깨비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승민 "지금, 저보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아니, 문재인 후보를 디스하시면서..."

옆에서 듣고 있던 문 후보가 웃으면서 "대신 말씀 좀 잘해 달라"고 유 후보에게 말을 건넸다. 안 후보가 비슷한 질문을 계속 이어나가자 유 후보가 "지금은 경제 시간"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경제 이야기, 교육 이야기하는데, 왜 자꾸 적폐 이야기를 안 후보는 하시나"라는 발언으로 토론 주제와 동떨어졌음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진행자는 사실상 '초시계' 역할에 머물러

모두 진행자가 할 말이었다. 사실상 이날 토론을 심 후보와 함께 주도하다시피 한 유 후보가 진행자 역할까지 대신한 셈이었다. 진행자가 토론 진행을 사실상 방치하는 동안 그렇게 2분 남짓 시간이 다시 흘러갔다. 그러면서도 진행자가 가끔 강조한 부분은 역설적이게도 후보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를 환기시켜주는 것이었다.

이날 '교육·경제·사회·문화' 토론 영상을 다시 확인한 결과 사실상 토론 주제와 무관하거나 거리가 멀었던 토론 시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인권 '적폐 가수' 논란(안철수 vs 문재인, 1분 35초) ▲재보궐선거 평가 1차 공방(문재인 vs 홍준표, 1분 40초) ▲재보궐선거 평가 2차 공방(홍준표 vs 문재인, 1분 55초) ▲개성공단 2천만 평 확장 계획 색깔론 공방(홍준표 vs 문재인, 2분 39초) ▲다시 적폐 논쟁(사실상 안철수 vs 문재인, 유승민 의문의 '개입', 1분 58초) ▲포스터에 왜 당명 표시 안 했냐, 왜 사진 합성했냐(홍준표 vs 안철수, 1분 15초)

이 시간을 모두 합하면 11분 2초. 이날 '교육·경제·사회·문화'를 주제로 토론이 이뤄진 시간이 채 50분도 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유권자들은 적지 않은 시간을 홍 후보 표현을 빌리면 숫자를 따져 볼 수 있는 '기재부 국장급 논쟁'도 보지 못하고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사실상 진행자가 '초시계' 역할에 머무르면서 나온 부작용이었다.

#유승민 #박영환 #문재인 #전인권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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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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