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청문회' 된 2차 토론, 승자는 KBS와 또 누구?

[대선 게릴라칼럼] "참 의미 없는 토론"이었던 2차 TV 토론 관전기

등록 2017.04.20 11:44수정 2017.04.2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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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대선후보들 '서서 토론'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생방송 토론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대선 토론은 사상 첫 스탠딩 토론으로 진행됐다. ⓒ 국회사진취재단


안철수 : 문 후보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홍준표 : 문 후보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유승민 : 문 후보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심상정 : 문 후보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사회자 : 문재인 후보 시간 다 됐습니다.
문재인 : ?

어느 트위터 사용자의 KBS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 관전평이다. 맞다. 19일 생방송 된 토론회는 지지율 1위 '문재인 청문회'를 방불케 했다. 여기에 사회자의 발언을 하나 더 추가해야 옳다. 후보들에게 질문·답변 시간과 상관없이 9분을 주는 '시간 총량제'를 도입한 KBS는 이 토론회의 숨겨진 승자였다. 그리하여, 존재감이 전혀 없었던 사회자는 이러한 유행어를 남겼다.

"홍준표 후보님, 시간이 많이 남으셨는데요."

방송 전 각 캠프가 촉각을 세웠던 '스탠딩 토론'은 KBS가 카메라로 '미디엄 샷'만 보여주면서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였다. '도대체 토론은 왜 서서 한 거냐'는 반응 일색이었다. 너도나도 "문 후보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를 연발했고, 소외(?)됐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홍 후보는 "대북송금"이든 "주적", "햇볕 정책"이든 하고 싶었던 색깔론을 난사했다. 물론 초반부터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이 안보 몰이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러자 마치 10년 전 토론회인 듯,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참여정부와 국민의정부 10년의 평가를 홀로 짊어져야 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까지 홍준표 후보가 처음 거론한 '국가보안법' 이슈에 숟가락을 얹으며 '문재인 때리기'에 동참했다. 그 자리에 파면된 대통령과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의 평가는 온데간데없었다. 질문 공세에 시달리던 문 후보로서는 매서운 '검증쇼'를 치러낸 셈이다.

"참 의미 없는 토론을 한다."

토론 말미, 홍 후보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일각에서 "TV 토론이 향후 지지율 변화를 견인할 것"이란 보도가 파다했지만, 이날 KBS 토론은 지난 SBS 토론과 달리 전반적인 토론 수준 저하로 인해 '정치 피로감'만 더 했다는 반응도 지배적이다. KBS 토론회는 이미 1위 때리기가 예견 가운데 질문과 답변에 대한 사회자의 조율이 전혀 없이 '시간 총량제'만 강조됐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후보들 중 다수는 자기 표가 어디가 있는지, 그 표를 어디서 뺏어 올 수 있는지, 자기 이미지를 어떻게 포장해야 하는지 전혀 분석이 안 된 걸로 보였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제 할 말을 다했고(홍준표), 불리한 4:1 토론에서 평정을 유지하려 애썼고(문재인), 심정적 지지자들의 이탈을 초래하는 듯 보였다(심상정). 26.4%(닐슨 코리아 기준)이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이날 토론회. 최종 승자인 KBS와 함께 자기 표를 확실히 챙긴 후보는 누구였을까.

'문재인 청문회'의 주인공 문재인

2017 대선후보 KBS 초청토론의 한 장면. ⓒ KBS


"나라를 이렇게 망쳐놓고 언제까지 색깔론으로 정치를 할 겁니까."

지난 토론에서 온화한 미소로 일관했던 문재인 후보는 홍준표 후보의 집요한 색깔론 공격에 종종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토론이었다. 문재인 외 4명 모두가 문재인을 연호했고, 문재인만 바라봤다. 특히 홍준표·유승민 후보는 사상 검증을 하려는 듯 민주정부의 대북송금 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압권은 유승민 후보의 "북한이 우리 주적이냐"는 질문이었다. 문 후보의 "그런 규정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은 아니다"라는 답은 그나마 기존 극우나 보수와 결을 달리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이 색깔론에 좀 더 단호하게 대처했어야 했다는 반응들이 적지 않았다. 반면 안철수 후보의 극렬 지지자들에 대한 질문에 '무시'하는 투로 넘어간 것에 대한 지적도 일었다. 그러니까, 보수 후보들의 철 지난 이념 공격에 대해 좀 더 확실하고 화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과 이전부터 지적됐던 매끄러운 토론 실력에 대한 아쉬움이 더해졌다. 동시에 설핏 네거티브 공세에 짜증이 나는 듯한 반응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론 선방이라 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이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지적한 것도 문재인 후보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 후보와의 격차가 다시 벌어지고 있는 만큼, 1위에 대한 공격은 매서웠다. 그러나 모든 후보들의 파상 공세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것 자체로 동정표와 지지층 결집을 끌어낼 만했다. 토론 직후 이뤄질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에 흔들림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스트롱맨' 홍준표는 '나이롱맨'?

"내 이정희 보는 것 같네. 주적은 저깁니다."

막말은 그대로인데, 수위와 톤이 조금 내려갔다. 그럼에도 홍준표는 홍준표였다. '대북송금'부터 '국가보안법'까지, 마치 시계를 10년 전으로 되돌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든 것도 홍 후보였다. 급기야 독재자라는 뜻의 '스트롱맨'을 연호하다 심상정 후보에게 "나이롱맨"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KBS가 만들어 놓은 룰의 수혜자도 홍 후보였다. 아무도 그에게 질문을 하지 않으니 시간이 가장 남았다. 그 시간을 문재인·안철수 공격에 맘껏 할애했다. 문재인 후보에게는 "노무현 대통령이 640만 달러 안 받았다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겠습니까"라는 색깔론 질문을 퍼부었고, 안철수 후보에게는 '박지원 상왕론'을 제기했다.

막말이나 색깔론, 토론 수준을 떠나서 아마 이날 토론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자기 지지층을 결집시킨 후보를 꼽으라면 단연 홍 후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막말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토론 말미, 안 후보가 "설거지가 여성의 몫이라고 하셨습니다. 여성 비하 아닙니까?"라며 홍 후보의 인터뷰 발언을 문제 삼았고, 심 후보도 "여성을 종이라고 보지 않고서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사과하십시오"라고 몰아 붙였다. 결국 홍 후보는 "세게 보이려고 그랬습니다", "집에서 설거지한다"라 웃음으로 무마했다. '스트롱맨'이 '나이롱맨'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성난' 안철수는 없었다, 그러나 존재감이...

2017 대선후보 KBS 초청토론의 한 장면. ⓒ KBS


"나이키 운동화에 나이키가 있습니까."

홍 후보가 논란이 됐던 벽보 포스터에 대해 묻자 안 후보는 이런 예를 들었다. 이 말은 지난 17일, 이 포스터 작업에 참여했다는 광고인 이제석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었다. 대개 이런 식이었다. 지난 토론에서 보았던 '성난' 안철수는 없었다. 경직된 모습도 많이 줄었다. 시작부터 "왜 3번은 없느냐"며 농담을 던질 만큼 유한 모습을 준비한 듯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준비해 온 질문과 답변을 뱉어내고야 말겠다는 모범생 스타일은 이날 토론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표를 뺏어 와야 하는 문 후보와의 토론이 대표적이었다. 작심한 듯 문 후보에게 '적폐세력'에 대한 표현을 묻는 듯했지만, 기이하게도 항변과 질문을 유승민 후보에게 돌렸다. 유 후보는 "지금 저보고 물으시는 거예요? 문재인 후보를 디스(비판)하시면서... "라며 황당해했다. 문 후보는 이에 "국민을 적폐세력이라고 이렇게 제 이야기를 오독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이런 게 적반하장"이라는 안 후보의 답이 궁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로, 보수표를 가져와야 하는 안 후보는 유 후보에게도 날 선 공격을 받았다. '유치원 발언' 등 안 후보의 아킬레스건으로 등극한 교육문제에 대해 유 후보는 "안 후보는 혹시 자제분이 얼마나 한국에서 교육받았나"라며 학제개편이나 교육부 폐지에 관해 물었다. 안 후보의 자세한 설명에도 "잘 이해가 안 된다"며 문 후보까지 가세했다. '문재인표'와 '보수표'를 동시에 가져와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안 후보의 난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태세 전환 유승민, 북한 주적 질문이라니  

"북한이 우리 주적이냐."

이전 토론에서 봤던, '교수님' 유승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초반부터 전술핵 배치나 사드, 북핵 문제에 대해 강하게 치고 나갔다. 경제 일변도로 나갔던 지난 토론과 달리 안보외교통일 문제에 유달리 센 목소리로 일관했다. 지난 토론에서 호평을 받았던 자신감의 일환이었을까. 아니면 그 호평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데 대한 조바심이었을까.

일각에서 '보수의 희망'이란 평가까지 받았던 유 후보는 이날 홍 후보의 색깔론과 '강성보수', '안보전문가' 사이를 갈팡질팡했다. 그의 입에서 "북한이 우리 주적이냐"는 문 후보를 향한 질문이 나왔을 때, 소셜미디어 등 실시간 타임라인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지난 토론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를 고수했던 유 후보는 이날 작정한 듯 강성 보수 이미지를 어필했다.

그의 지지층이나 정체성이 '스트롱맨' 홍준표 후보보다 안철수 후보와 겹친다는 것은 이미 정설에 가깝다. 그런 유 후보가 색깔론에 가까운 공격형 토론으로 이미지를 확 바꿨다. 결과적으로, 유 후보에게 이런 태세 전환은 독일까, 약일까. 

'군계일학' 심상정, 왜 진보정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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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대선후보 KBS 초청토론의 한 장면. ⓒ KBS


"도대체 대북송금이 몇 년 지난 이야기입니까. 매 선거 때마다 대북송금을 아직도 우려먹느냐고 국민들이 실망할 겁니다."

심상정의 칼날은 한층 더 매서웠다. 경상도 출신 남성 후보 넷을 매섭게 몰아치는 유일한 여성 후보 심상정은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홍 후보에게는 "나이롱맨"이라는 별명을 선사했고, 문 후보에게는 "국가보안법 폐지할 거냐"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여야 가리지 않는 진보정당 후보의 모두 까기 전략이었다.

하지만, 토론에서는 승리했을지 모르지만, 그 승리가 유의미한 지지율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문 후보에 대한 매서운 공격에 당장 '범진보'에 해당하는 문 후보 지지층이 반발하는 중이다. 심 후보의 지지율 변화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한편으로, '모두 까기'에 열중한 만큼 자신의 정책이 무엇인지, 왜 "할 말은 하는" 후보 심상정 외에 '왜 진보정당인지'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심 후보까지 문재인에게 집착할 필요가 있었는지 묻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심상정 후보의 활약한 분명 군계일학이었지만, 향후 토론회에서 '모두까지' 외에 자신과 진보정당의 긍정성을 어필할 수 있는 전략을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7대선 #심상정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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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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