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

삶의 롤모델과 함께했던 모터쇼 관람

[노총각이 노총각들을 위해 쓰는 일기 29]

등록 2017.04.21 11:37수정 2017.04.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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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차를 보는 것과, 모터쇼에서 관람하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 김종수


"잉 모터쇼요? 그, 그것도 서울까지 가서요?" 보름 전이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형님께서 난데없이 모터쇼를 보러 서울을 가자고 권유하심에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인 적이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즐기시는 부지런한 선배다웠다. 반면 총각은 일 그리고 가끔 친한 지인들 만나는 것 외에는 관심 있는 게 별반 없다.

특히 일삼아서 멀리 나가는 것은 즐기지 않는다. 정말 어쩔 수 없거나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재작년 여름 혼자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를 만나러 부산에 갔다 오자 친구들이 "웬일이냐?"고 놀랐을 정도다. 좀처럼 본인만의 영역권을 잘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모터쇼가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것을 총각도 잘 알고 있다. 각종 뉴스나 모임 게시판 등에서 자주 접했다. "구태여 직접 갈 필요가 있을까요? 사진이나 자료는 인터넷에 풍성한데…" 총각의 말에 형님은 "아무리 좋은 정보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만 못해"라고 답했는데 그 말이 문득 피부에 와 닿았다.

현재 'S'사 자동차대리점 부장으로 있는 형님은 일찌감치 모터쇼 티켓을 구매하셨고 가까운 지인이나 손님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구태여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늘 즐거운 것은 적절히 베풀고 사는 생활 방식은 충분히 본받을만하다고 느꼈다.

어쨌든 어지간히 어디를 안 돌아다니는 총각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거렸고 형님을 비롯한 지인들과 모터쇼를 관람하러 서울로 향했다. 총각의 올해 첫 객지 나들이였다.

고마운 기억, 배우고 싶은 삶의 롤모델

최근 들어 자주 보게 되었지만 형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근 10년 만이었다. 지난해 여름경 출근을 하려고 자동차 문을 여는 순간 유리창에 끼어있는 명함을 발견했다. 모 자동차 판매소 광고 명함이었다. 신기했던 것은 명함에 테이프로 붙어 있던 10원짜리 동전이었다. 쉽게 명함을 버리지 말고 한 번 더 쳐다보라고 붙인 듯싶었는데, 총각에게도 이 전략은 잘 통했다. 총각 역시도 평소 같았으면 무심결에 버릴 수도 있었지만 10원짜리 때문에라도 한 번 더 쳐다봤고 거기서 낯익은 이름과 사진을 발견했다.

"어 형님이시네?" 당장 반가운 마음부터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형님은 총각의 사회 초년병시절 많은 도움도 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들어간 첫 직장에서 총각은 늘 헤매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첫 사회생활이기도 하거니와 지극히 내성적인 당시 성격상 사람도 쉽게 사귀기 힘들었다. 무시도 많이 당했고 그로 인해 심리적으로도 많이 위축되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지인으로 만난 형님은 늘 먼저 다가와 친근하게 대해주셨고 도움이 필요할 때 손길도 내밀어주셨다. 이후 사업을 시작하면서 형님을 생각하면 늘 고마웠다. 당시 형님은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상황이었는데 별반 도움도 되지 않는 사회초년병을 차별 없이 배려해줬다. 어찌 보면 진작에 찾아뵈어야 도리이지만 먹고사는 데 급급하다는 핑계로 연락을 하지 못하고 지냈다.

명함을 챙기자마자 형님에게 전화를 했고 다시금 연락이 됐다. 형님은 여전히 10년 전과 똑같았다. 비록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연거푸 실패를 맛보며 경제적으로는 예전 같지 않으셨지만 늘 긍정적이시고 노력하는 모습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외려 사업에 완전히 실패하시고 어려움에 빠지던 상황에서 바로 다음 날 인근 광고사에 직원으로 들어가셨다는 말을 듣고 "역시 형님이시구나"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어려운 상황에 절망하기보다는 자존심을 굽히고 다시 시작하는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총각이지만 이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꼭 다시 재기할 것이라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형님은 현재 자동차 영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도 꾸준한 운동으로 몸 관리를 하시고 여러 가지 이벤트를 만들어 고객들과 마음을 나누는 모습은 총각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본래 예전보다 위치가 나빠지면 마음이 급해지기 마련인데 형님은 차분히 자신을 다잡아가며 다시금 한걸음씩 나아가고 계셨다. 총각이 배우고 싶은 삶의 롤모델이다.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던 모터쇼 현장

주차할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빡빡하게 들어찬 수많은 차량과 북적거리는 분위기에 절로 '아이쿠'소리가 날 때만 해도 총각은 무미건조하기만 했다. 오랜만의 수도권 나들이가 조금 새롭고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건물 안에서의 식사가 나들이 기분을 살짝 느끼게 해줄 뿐이었다. '도대체 뭐 볼 것 있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거지?' 반복적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보면서 총각의 고개짓도 갸웃거림을 거듭했다.

소문난 잔치에 빈 그릇만 잔뜩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기대되는 표정으로 입장티켓을 흔들며 발걸음을 옮기는 형님을 보는 순간 묘한 기대감도 살짝 교차됐다. 이미 예전부터 몇 차례 모터쇼를 관람한 적 있는 형님이 아무 이유 없이 저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역시나였다. 그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렇게 많이 올리는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 전시장 내부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총각의 입은 자신도 모르게 벌어졌다. 넓은 행사장 안을 빡빡하게 채운 홍보박스와 주변을 돌며 흥미롭게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바깥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얼마 전 차를 구입하기는 했지만 총각은 자동차에 큰 관심이 없다. 주변 다른 남자들은 수시로 신차에 관심을 보이고 일부분만 보고도 차종을 맞출 만큼 매니아가 많지만 총각은 자동차회사도 변변히 모를 만큼 무관심한 편이다. 새 차를 산 데에는 일 때문에 어디를 돌아다닐 때 깔끔한 이미지를 풍기려는 이유가 컸다. 휴대폰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지만 보기에 나쁘지 않고 기본 기능만 잘되면 다른 것은 별반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모터쇼 현장에서는 잠시나마 생각이 달라졌다. 워낙 멋지고 화려한 차가 많았던지라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기저기 내부를 살피고 안에 직접 들어가 운전하는 시늉도 해봤다. 총각 같은 사람도 이럴 진데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겠는가. 적어도 볼거리에서는 지루할 게 없는 이벤트였다.

지방에서 자동차에 별반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던 총각에게 모터쇼라는 무대는 신세계였다. 평소에 한꺼번에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차종을 최신 시설 속에서 다양한 음향, 영상과 함께 같이 보니 뭔가를 즐기는 기분이 들었다. 같이 오기로 했다 마음을 바꾼 지인들에게 동영상과 사진을 보내주니 "나도 따라갈 걸"하며 후회하는 반응도 들려왔다. 역시 잠깐의 귀찮음보다는 움직이는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지 않은가.

시간이 지나니 추억도 만들고 싶었다. 낯을 가리는 성격상 사진도 잘 찍는 편은 아니지만 자동차 안에 들어가 포즈를 취하고, 지인들과 함께 나름 용기를 내서 사진도 수차례 찍었다. 당시에는 부끄럽고 민망했지만 이후 집에 와서 사진을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모두가 달라. 다른 이들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낌을 받아보는 것에 비할 바는 아냐" 만사가 귀찮은 간접경험 의존자 총각에게 형님이 넌지시 메시지를 줬고 다른 어느 때보다도 공감이 갔다.

집으로 돌아온 총각은 2017년 다이어리 표지에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속담을 크게 적었다. 10여 년 만에 만난 형님은 여전히 총각의 롤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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