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리단길' 공방 사장님은 왜 절망했을까

2년만에 기존 가게 50% 이상 떠나... 보증금 58%, 월세 24.9% 올라

등록 2017.04.28 20:13수정 2017.04.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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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망원동을 떠돌고 있다. '망리단길'이라는 유령. '망리단길'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아는 주민은 없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망리단길'을 찾아 망원동을 찾는다.

망원동이 유명세를 떨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4년 집중호우로 동네가 잠겨 각종 신문을 장식했다. 지금도 비가 한바탕 쏟아부으면 망원유수지는 물이 차올라 비릿하다. 한강을 끼고 있지만, 수해는 개발의 욕망마저 집어삼켜 망원동을 서민의 동네로 만들었다. 망원시장은 가벼운 주머니를 늘 든든하게 해 줬고, 골목골목 공평하게 퇴적한 시간은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없는 동질감을 부여했다.

카페 생기고 철물점 사라졌다

'망리단길'이라고 일컫는 길의 실제 이름은 포은로다. 망원동 한복판을 남북으로 가르는 포은로는 망원동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도로였다. 하지만 상암동 난지 쓰레기 매립장이 개발되고 월드컵경기장과 망원역이 들어서면서 왕복 6차선 월드컵로가 더 번화했다. 포은로는 망원동의 뒷골목으로 밀렸지만, 스타벅스가 들어선 월드컵로와 달리 주점과 백반집, 미장원, 철물점 등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포은로에는 79개의 가게가 있다. 그중 35개가 최근 2년 사이에 바뀌었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다니면서 포은로에서 만난 40개의 가게 중에서는 22개가 2년 사이 바뀌었다. 2015년 7개, 2016년 11개. 2017년엔 4월 현재 4개, 지금 폐업 중인 가게 6개를 합치면 벌써 10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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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로 지도 ⓒ 조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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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년에 포은로에 새로 생긴 가게 ⓒ 조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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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로에 새로 생긴 가게 오픈 일시 ⓒ 조영권


최근 2년 사이에 새로 생긴 22개 업종은 음식점, 카페, 액세서리, 술집 등으로 나타났다. 대신 사라진 가게는 음식점이 8개로 가장 많고 미용실, 빵집, 금은방, 인형가게, 동물병원, 컴퓨터수리점, 철물점 등이다. 같은 음식점이라도 새로 생긴 음식점과 사라진 음식점은 확연히 다르다. 햄버거, 피자 등이 생겼고 백반집 등이 사라졌다.

철물점은 지역경제 생태계의 부분이자 전체다. 이제 망원동에서는 못 하나를 사기 위해 차를 끌고 대형마트로 가야 한다. 거기서 어디 못 하나만 사겠는가. 달걀도 사고 과일도 사고 양말도 산다. 골목의 다양성은 실종하고, 우리 삶은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철물점 하나가 사라지면 골목상권 전체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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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로에 새로 생긴 가게 업종 ⓒ 조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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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로에서 사라진 가게 업종 ⓒ 조영권


보증금 58%, 월세 24.9% 올랐다

보증금과 월세를 묻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응답자 수도 20명 정도밖에 안 됐다. 망원동 젠트리피케이션 보도가 급증한 탓에 응답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평균을 낼 뿐, 절대 개별적으로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무력했다.

20곳의 응답 결과, 보증금은 58% 올랐고 월세는 24.9% 올랐다. 1년 새 임대료가 21.1% 올랐다는 최근 보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보증금 인상을 고려하면 그 이상이 분명하다. 또 당장은 안 올랐지만, 금세 오르지 않겠냐는 일관된 우려도 유예된 시간을 걱정하기에 충분했다. 옆집이 올랐는데 우리 집은 무슨 수로 안 오르겠냐는 말이다.

공방을 운영하는 A씨의 하소연에는 숫자에 불과한 통계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절망이 담겼다.

"옆집은 방송에도 여러 번 나왔고 손님이 줄을 서요. 장사가 잘 되니 임대료가 올라도 상관없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왜 우리 집도 임대료가 덩달아 올라야 하나요? 5년 전에 500만 원에 50만 원으로 들어왔어요. 그러다 올해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도 70만 원으로 올려 달래요. 보시다시피 저희는 동네 장사예요. 주말에 사람이 많이 온다고 해도 잘 되는 곳은 몇 집뿐이고요. 오히려 사람들 많다고 동네 사람들은 더 안 와요. 더는 버틸 수 없어 가게 내놨어요."

'믿고 맡겨주시면 열심히 발로 뛰겠습니다. 비밀유지는 기본!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포은로를 돌면서 가장 눈에 띈 것은 가게마다 붙어 있는 부동산 업자들의 명함들이다. 하루에도 여러 명의 업자가 찾아와 가게 내놓을 계획 없냐며 돌아다닌다는 게 상인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놀라운 건, 망원동 인근 부동산 업자가 아니라 가깝게는 홍대부터 멀리는 은평, 영등포까지 서울의 모든 업자가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여기 임대료 오르는 거 뭐 때문에 그러는지 아세요? 이거 다 업자들 장난이에요. 사방팔방에서 찾아와서 권리금 잘 받아주겠다며 들쑤시고 다니니 임대료가 안 오르고 배기겠어요? 장사는 안 되지. 임대료는 오르지, 업자들 와서 불 지르고 가지. 그러니 어떻게 버텨요. 이거 막으려면 부동산 업자들부터 어떻게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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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로에서 발견한 부동산 업자 명함 ⓒ 조영권


망원동 젠트리피케이션, 어디까지 왔을까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에 소개된 젠트리피케이션 단계론
- 1단계: 위험을 무릅쓰는 소수의 선구자 젠트리파이어들이 노동계급 및 하층민 거주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함

- 2단계: 젠트리파이어의 주거개량이 확산되면서 비슷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지닌 중산층의 관심을 끌게 됨

- 3단계: 대중매체가 관심을 기울이며 대형 개발업자가 진입하고 부동산 가격 및 임대료가 상승함. 노동계급 및 하층민의 전치가 본격화되고 새로 이주한 중간계급에 의한 환경미화가 눈에 띄게 진행됨

- 4단계: 부동산 투자 급증과 신규 주거공간 건설이 가속화됨. 부동산 시장의 논리가 지배함에 따라 선구자 젠트리파이어들은 영향력과 관심을 잃고 다른 곳으로 옮겨감


망원동 젠트리피케이션은 어디까지 왔을까. 2015년부터 시작된 망원동의 변화는 2016년 4월 모 일간지가 처음으로 '망리단길'을 보도한 이래 수많은 언론과 방송을 장식하며 본격화했다. 그리고 2017년 4월 현재, 기존 가게들은 50% 이상 떠났고 임대료는 20% 이상 상승했으며 수많은 부동산 업자들이 앞다투어 상가 매물을 구하고 있다.

기존 가게들이 다 나가고 임대료도 오를 만큼 오르면, 남는 것은 선구자 젠트리파이어들이 또 다시 옮겨갈 일뿐이다. 결국, 이 악순환에서 피해자는 우리 모두인 셈이다.

'망리단길'이 싫은 이유는 단순히 '경리단길'에서 따온 말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필연적으로 부동산 자본의 욕망이 기생하는 숙주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망리단길'을 대체할 이름인 '망원동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OOO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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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로에서 공사 중인 가게들 ⓒ 조영권


덧붙이는 글 망원동 젠트리피케이션 현황 조사 개요
- 일시: 2017년 4월 11일~12일
- 대상: 포은로 가게 79개 중 40개
- 방법: 일대일 면접
#망원동 #젠트리피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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