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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사회에 나가야 할 아가에게

[초보 엄마 육아일기] 포기해도 괜찮아

등록 2017.04.21 13:20수정 2017.04.2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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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의 압박과 상사의 모욕에 시달려 하늘나라로 간 분의 기사를 읽으며 남의 일같지가 않았다.

대학생때 방송일을 해보고 싶어 프리뷰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모 방송국 사회고발프로그램에 가본 적이 있었다. 찍어온 테이프들을 보면서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겪을 정신적 고통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 일을 하고 얼마 뒤 그 프로그램 막내작가분이 투신했단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래도 난 방송작가로 일하고 싶었다.

이후 불행히 나도 온갖 멸시와 모욕을 겪으며 방송국 난간에 서봤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난 겁쟁이여서 아찔한 높이를 보곤 내려왔다. 아마 그분들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이 있었다.

"늬 부모가 그따위로 가르치디? 어떻게 너네 부모님을 이런 널 직장에 보냈니?"

말로만 듣던 내 부모 욕을 들으니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쌍욕도 부지기수로 많이 듣고, 밤샘 노동을 참아냈지만 그런 말은 참아내기가 힘들었다. 어떨 땐 원고를 갈기갈기 찢기며 종이 세례를 맞기도 했다.

물론 내 경우엔 일을 잘못한 게 있었다. 부족했던 날 가르치느라 고생했던 선배들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 모욕들이 맞는 행동이라곤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누군가 잘못을 했고, 화가 나더라도 적정선을 지키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 이게 뼈가 되고 살이 될 거야. 저렇게 독하게 구는 사람 밑에서 견디면 나중에 더 일 잘하게 돼.'

흔히 화를 냈던 사람들이나 그걸 본 주위 사람들은 위로한다고들 하는 말이다. 내겐 뼈와 살이 아니라 칼과 대못을 가슴에 박는 말들이었다. 그건 아랫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일 뿐이다. 그때 난 내가 한없이 땅 밑으로 가라앉아 어느 곳에도 설 곳이 없는 사회부적응자로 느껴졌다. 그 사람들 말이 다 맞고, 내가 바보처럼 생각되어 그냥 기죽어서 살았다.

남들은 말한다.

'그냥 그만두면 되지. 뭘 그렇게 혼자 심각하냐.'

그 당시에는 '진짜 못해먹겠네' 하곤 그만둬 버리고 나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첫 직장이었고 여기서 그만두면 다 알음알음 일하는 곳인데 소문이 안 좋게 나면 어쩌나 같은 별별 생각들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난 그저 버텼다. 내 자신 입장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루하루 지옥처럼 그냥 기계처럼 일했다.

지금은 무려 7년여라는 시간이 지났다. 어떤 사람들은 힘든 건 다 지나가면 다 추억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추억과 함께 고통스런 상처를 남겼다. 아직도 아이와 놀 때, 남편과 시간을 보내는 일상적인 순간에도 불쑥불쑥 아팠던 말들이 생각나 움츠러든다.
  
만약 그때로 돌아가서 힘들어 울고 있을 나에게 말해줄 기회가 생긴다면……. 다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하기엔 고통이 너무 크다. 다시 되돌리고 싶지도 않지만 그때로 가게 된다면 그냥 너무 힘들면 포기하라고 하고 싶다.

포기한다 해서 실패는 아니니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되는 것이니. 그렇지만 그만두는데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나도 용기가 없어 하지 못한 일이니까. 쭉 꿈꿔왔던 일을 막 시작했는데 포기를 한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일 것이다.

일하면서 쓴소리를 들을 때면, 속으론 아주 작게나마 '저 말에 흔들려선 안 돼. 내가 하고 싶던 일을 저 사람들에게 휘둘려 그만둘 순 없어'란 생각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곤 했다. 이것이 큰 힘이 되진 않았다.

몇몇 프로를 바꿔서 일하다보니 진짜 좋은 선배를 만나기도 했고 또 일하는 여건이 편한 곳도 있었다. 그렇게 힘든 곳만 있는 게 아니었다. 포기하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라, 다행히 날 반겨줄 곳도 있었다.

아직 먼 훗날 이야기지만 내 아이도 직장을 다니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아이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본조건이라도 갖춰진 여건에서 일할 수 있길 바라지만, 그렇지 못 할 수도 있다.

'넌 남의 평가와 기준으로 정해질 사람이 아니야.
누구보다 널 사랑하는 엄마가, 그리고 가족들이 있으니 힘들면 언제든 와서 안겨도 돼.'

내 아이에게 이 생각을 확실히 가질 수 있게 거듭 말해주고 싶다. 이보다 더 힘이 될 말들을 해주고 싶지만, 엄마로서 해줄 좋은 응원의 말들을 계속해서 생각해봐야겠다. 막상 시련이 닥치면 아이는 엄마의 조언들이 생각나지도 않을 테지만, 은연중에 맘속에서 세뇌되어 아이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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