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엄마를 '래퍼'로 만든 그림책

[다다와 함께 읽은 책] 백희나 <알사탕>

등록 2017.05.16 17:39수정 2017.05.1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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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나다. <구름빵>, <선녀탕>, <삐약이 엄마>를 쓴 믿고 보는 작가 백희나. 신간 <알사탕>을 들고 집으로 가는 길, 아이처럼 설렜다. 빽빽한 사람들 틈속에서,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펴보고 싶지 않았다. 찬찬히 천천히 느리게 읽고 싶었다. 백희나 책은 그래야 하니까.

'혼자 노는 것도 괜찮다'면서 구슬치기를 하는 동동이. 구슬을 사려고 들어간 문방구에서 알사탕을 들고 나온다. 근데 뭐지? 알사탕을 먹을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소파가 하는 말이 들리고, 8년 동안 같이 지낸 반려견 구슬이와 대화도 하게 되는 동동이. 알사탕 같이 생긴 풍선껌을 불자 돌아가신 할머니 목소리도 들린다. 아빠 수염처럼 까칠한 알사탕을 먹으니 아빠의 속마음도 들린다. 어? 그런데 투명한 알사탕은 아무리 빨아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동동이가 먼저 말하기로 했다. 저 멀리 보이는 친구에게. "나랑 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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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사탕> ⓒ 책읽는곰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감동을 오롯이 느끼기도 전에 아이들이 읽어달라고 조른다. 일곱살 둘째 녀석은 <삐약이 엄마> 굿즈 베개까지 들고 나온다. '백희나' 이름이 같다면서. 녀석, 눈치가 제법인데... 아이들을 양 옆에 끼고 천천히 다시 읽기에 돌입한다.

소파의 말, 강아지의 말이 들릴 때까지는 읽기 좋았다. 그런데 헉. 이건 어떻게 읽어주지? 아빠가 하는 말로 한 면이 빽빽하게 채워진 페이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다.

아이들에게 점수 한 번 따볼까. 얼마전  종영한 케이팝스타에서 1등을 한 래퍼 오빠들에게 빠져 있는 둘째 아이를 위해 이 부분은 특별히 랩 하듯 읽었다. 있는 박자감, 없는 박자감 긁어모아 숨찬 랩을 시작했다.

숙제했냐?...구슬이산책시켰나? 똥은잘치웠냐?...손은닦았냐?...글씨가이게뭐냐?...리모컨은?똑바로앉아라...화장실가지라마,문꼳닫아라...꼽꼽씹어라.입다물고...밥다먹고말해라...바지뒤집어놓지마라...일기장알림장챙겨넣어라.책읽어라...만화책말고...
박자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괜히 했나 싶은데, 애들은 재밌다고 난리다. 숨은 차지만 힘이 난다. 숨 넘어갈 듯한 랩이 끝나자 애들은 배꼽을 잡고 웃는다. 아싸, 엄마사랑 레벨 1 획득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뿌듯한 마음도 잠시. 아이들이 그 부분만 또 읽어달란다. 잘 하지도 못하는 랩을 한 번 하는 건 좋았는데, 두 번 하려니 민망하고 난감하다. 엄마가 망가질수록 아이들은 웃는다. 여러 번 랩을 하며 생각한다.


'근데 이 아빠가 하는 말은 주로 내가 하는 말인데... 왜 여긴 아빠가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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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사탕> 속 한장면 ⓒ 최은경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그림책에 엄마가 등장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왜 그런지 물었더니, "엄마가 없는 것 같아. 아빠랑만 둘이 사나 봐" 한다. 아... 그런 거야? 그땐 그냥 흘려 듣고 말았는데... 오, 대박. 남편 말이 맞았다. 이유가 있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백희나가 말했다.

"지구상의 어떤 가족이 그렇게 엄마·아빠·형제·자매가 다 모여 오손도손 살겠어요. 아이하고 부모 중 누가 없으면 '결손가정'이라고 표현되는 것이 싫었어요. <구름빵>의 4인 가족을 이상적인 가정처럼 그린 게 미안했고,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가정을 그려보고 싶었죠. 어떤 모습의 가정일지라도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완벽한' 가정이잖아요." - 한겨레 인터뷰에서

그랬구나. 생각해보니 갓 낳은 달걀을 먹은 고양이 니양이가 병아리를 낳게 되고, 당황스럽지만 병아리의 좋은 엄마가 되려 한다는 내용의 <삐약이 엄마>도, 아이가 아파도 어디 도움을 구할 데가 딱히 없는 직장맘을 대신해 엄마 노릇을 해주는 이상한 엄마 이야기를 담은 <이상한 엄마>에서도 으레 있어야 할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없어도 괜찮았다. 없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이게 다 작가의 의도된 설정이었다니 놀랍다. 백희나 작가가 4인 가족을 이상적으로 그렸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이런 작가의 마음씀이 고맙다.

작가의 이런 세심한 배려때문인지 '혼자 놀아도 괜찮다'던 동동이가 달라졌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사랑 받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 동동이가 알사탕처럼 단단해졌다. 동동이를 피한다고 생각했던 반려견 구슬이의 속마음을 알게 되고, 잔소리와 다르게 동동이를 사랑하는 아빠의 진짜 속마음도 알게 되면서 동동이는 씩씩해졌다. 친구에게 다가가 먼저 같이 놀자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그런 동동이가 대견하고 고맙다.

그래도 동동이 아빠를 비롯한 엄마아빠. 아이를 사랑하는 속마음은 자주 자주 말해주시라. 굳이 이상한 사탕 같은 거 먹지 않아도 알 수 있도록. 충치가 생겨 치과에 가게 되면 무척이나 속상하니까. 그리고 돈도 많이 드니까. 아흑.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알사탕

백희나 글.그림,
책읽는곰, 2017


#백희나 #알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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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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