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에서 특별한 장례가 열린다

30일 완도 청산도서 옛 초분 장례 시연

등록 2017.04.25 10:43수정 2017.04.2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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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슬로길(서편제길)에 활짝 핀 유채꽃길을 따라 여행객들이 싸목싸목 걷고 있다. 지난 4월 20일 풍경이다. ⓒ 이돈삼


남도의 봄이 유채꽃으로 노랗게 물들고 있다. 유채꽃을 생각하면, 완도 청산도가 먼저 떠오른다. 청산도는 사철 언제라도 멋진 섬이다. 유채꽃과 어우러지는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 때맞춰 슬로걷기축제도 열리고 있다.

'슬로시티' 청산도는 샛노란 유채꽃이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돌담길도 정감 있다. 구들장 논과 다랑이 논은 애틋하다. 흡사 시간이 멈춘 것처럼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황홀한 해돋이와 해넘이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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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상서리의 돌담길. 흡사 시간이 멈춘 것처럼,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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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슬로길을 찾은 여행객들이 노란 유채꽃이 핀 서편제길을 따라 솔방솔방 걷고 있다. 지난 4월 20일이다. ⓒ 이돈삼


청산도는 나에게 어느 섬보다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자연 풍광도 풍광이지만, 초분(草墳) 덕분이다. 지금은 보기 드문, 아니 볼 수 없는 초분 장례를 청산도에서 몇 차례 봤다. 생각하지 않았던 우연한 기회였다.

초분은 초가로 만든 임시 무덤을 일컫는다.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는다. 볏짚으로 가묘를 만든 다음 3∼4년 뒤에 매장을 하는 장례 풍습이다. 땅 위에 쓴 가묘를 초분, 나중에 뼈만 간추려 매장하는 장례를 본장이라 한다. 오래 전, 섬 마을에서 많이 행해졌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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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주민들이 지인의 할머니를 모실 초분을 만들고 있다. 지난 2007년 3월 5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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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로 만든 임시 무덤인 초분. 청산도 출신 지인의 할머니를 모신 초분이다. 2009년 5월에 찍은 모습이다. ⓒ 이돈삼


10년 전쯤이었다. 청산도 출신의 지인이 할머니 상을 당했다. 발인하기 전날, 완도항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청산도로 조문을 갔다. 조문을 하는 중, 초분장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말로만 듣던 초분이었다.

내친 김에 장례식장에서 밤을 지새웠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초분 장례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까지 나는 초분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혐오스럽다, 무섭다, 비위생적이다, 번거롭겠다 등등.

그날 저녁 장례식장에서 몇몇 지역주민들과 얘기를 나눈 다음에야 선입견을 조금 없앨 수 있었다. 초분은 바닷가 사람들의 특수한 여건이 반영된 고유의 풍습이었다. 바다 한가운데서 뭍과의 통신수단이 없던 시절, 부모형제의 사망소식도 모르는 가족이나 이웃을 위한 배려라는 것이다.


게다가 초분은 극진하고 위생적인 장례라고 했다. 육탈을 한 다음 깨끗한 뼈만 선산에 가는 것이 조상에 대한 예의이고, 더 위생적이라는 것이었다. 망자를 가까이 모셔두고 가끔 뵐 수 있어, 효도의 또 다른 방법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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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분을 쓰기 위한 준비. 크고 작은 돌을 깔아 평탄하게 만든 덕대가 만들어져 있다. 이엉과 용마름, 새끼줄도 보인다. 지난 2009년 5월 11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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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주민들이 초분을 쓰고 있다. 덕대 위에 깔아놓은 멍석으로 관을 감싸서 동여매고 있다. 2009년 5월 11일이다. ⓒ 이돈삼


초분 장례는 뭍의 장례 방식과 많이 달랐다.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굴착기나 삽 같은 도구를 볼 수 없다. 대신 볏짚으로 엮은 이엉과 초가의 지붕마루에 덮는 ㅅ자 모양의 용마름, 멍석과 약간의 새끼줄이 준비된다.

초분 장례는 땅 바닥에 크고 작은 돌을 고루 펴는 것으로 시작됐다. 사체가 모셔진 관보다 조금 넓은 면적이다. 이것을 청산도에서는 '덕대'라 한다. 그 덕대 위에 솔가지를 꺾어 올린다. 솔가지는 관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솔가지가 깔린 덕대 위에 멍석을 펴고 관을 조심스럽게 안치한다. 이어 멍석으로 관을 감싸고 든든하게 동여맨다. 관을 감싼 멍석 위에 다시 솔가지를 올린다. 솔가지는 병해충을 막아주는 일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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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주민들이 임시 무덤인 초분을 쓰고 있다. 덕대 위에 관을 올리고 솔가지를 얹은 다음 이엉을 두르는 모습이다. 지난 2009년 5월 11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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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분을 쓰는 주민들이 관 위에 이엉과 용마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2009년 5월 11일이다. ⓒ 이돈삼


관을 안치하는 작업이 끝나면 초가를 올린다. 관을 중심으로 해서 사방으로 이엉을 몇 겹 두른다. 이엉 위에는 용마름을 올린다.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촘촘하게 두른다. 그 다음 새끼줄로 단단히 고정시킨다.

새끼줄을 위에서 아래로 또 옆으로 교차시키고, 비스듬히 돌려 촘촘하게 엮는다. 새끼줄 끝에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묶어 놓는다. 덕대를 만드는 일부터 큰 돌덩이를 매달아 묶기까지 과정이 2시간 남짓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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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분의 마무리 작업. 이엉을 두르고 용마름을 올린 다음 새끼줄로 초분을 고정시키고 있다. 2009년 5월 11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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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초분. 유가족이 솔가지를 꽂은 초분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2009년 5월 11일이다. ⓒ 이돈삼


이 초분은 3∼4년 뒤에 해체해 본장을 한다. 관을 뜯어 유골만 고르는 '씻골' 과정을 거쳐 땅에 묻고 봉분을 만든다. 초분 장례는 초분과 본장, 두 번의 장례를 치르는 이중장(二重葬)인 셈이다.

본장은 뭍의 일반적인 장례 풍습과 비슷하다. 씨줄날줄로 엮어놓은 새끼줄을 자르고, 몇 겹으로 덮어놓은 초가 이엉을 다 걷어내는 과정을 거칠 뿐이다. 이 초분 장례를 두 번, 그리고 본장을 또 두 번 청산도에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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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주민들이 초분의 본장을 위해 3년 전에 만든 초분을 해체하고 있다. 지난 2012년 5월 6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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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장을 위해 초분을 해체하자 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2012년 5월 6일이다. ⓒ 이돈삼


여행객들이 지금은 보기 드문 초분 장례를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청산도 슬로걷기축제의 특별 프로그램으로 준비되는 '초분 시연'이다. 축제 마지막 날인 4월 30일 일요일 서편제길의 '봄의왈츠' 세트장으로 가는 길목에서다. 시연 시간은 오전 8시 30분과 10시 두 차례다.

초분을 만든 경험이 많은 지역의 어르신들이 직접 시연한다. 초분을 만드는 전 과정을 보여준다. 유채꽃 만발한 '슬로시티'의 섬에서 천천히 걸으며 느림과 쉼을 체험하고, 초분 시연까지 보면 청산도 여행이 한층 실속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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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분 시연. 재작년 청산도 슬로걷기축제 때 모습이다. 청산도에서는 올해도 슬로걷기축제 마지막 날인 4월 30일 여행객들 앞에서 초분을 시연할 예정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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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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