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귀 무덤 앞에서 잠시 울다

2015년 한국 학계에 발표된 곳, 쓰시마 가와치

등록 2017.04.24 11:41수정 2017.04.2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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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타하마(小茂田浜)신사 입구에는 온통 벚꽃이 만발했다. 서서히 떨어지는 꽃잎 아래에 노란 민들레가 눈길을 잡았다. 봄의 정취를 이곳에서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요 며칠 서울에서 미세먼지와 황사로 고생하던 기억은 뒤로 하고 공기 맑고 깨끗한 쓰시마의 자연에 빠져본다.

일본 쓰시마 봄 풍경 ⓒ 김수종


산소 힐링의 섬, 쓰시마는 이래서 마음에 드는 곳이다. 신사의 안팎을 둘러 본 다음, 뒤편의 해변을 잠시 걸었다. 이곳 해변에서 매년 가을 활쏘기를 하는가 보다. 넓은 터에 바다가 멋지게 보이는 곳이다. 저 멀리 아주 키가 큰 외국인 한사람과 일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산책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일본 쓰시마 신사 입구의 봄 풍경 ⓒ 김수종


나도 사진을 찍고 있는 중이었고, 나에게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해서 한 장 찍어 주었다. 그랬더니,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라고 했더니, 옆에 있는 외국인이 "나도 서울의 제기동에서 왔다"고 했다. 내가 "한국인도 아닌데, 왜 서울에서 왔냐?"고 했더니, "제기동 감리교회에 와 있는 산타의 나라 핀란드인 선교사"라며 들고 있는 한국성경책을 내게 보여주었다.

일본 쓰시마 벚꽃과 민들레 ⓒ 김수종


조금 웃기는 일이라 옆에 있는 일본인에게 "어떻게 한국에 선교사로 와 있는 핀란드 사람을 아시냐?"고, 그랬더니 "나는 이즈하라항구 남쪽 구타(久田)에 있는 교회 목사"라고 했다. "핀란드 출신 선교사와는 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가끔 서로 한국과 일본을 내왕하면서 만난다"고 했다.

아무튼 재미난 일이라 3인이 기념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일본인 타츠이시(立石)목사의 명함을 받았다. "다음에 오면 교회를 한 번 방문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신사 앞에서 3인 일본 쓰시마 ⓒ 김수종


"제 교회 인근에 한국인 목사님이 계시는 작은 교회도 있으니, 꼭 방문해 주세요"라고 하여 "다음 달에 반드시 가겠다"고 했다.    

사실 쓰시마에 교회가 있다는 것은 별로 상상을 못했다. 원래 기독교인이 많지 않은 이유도 있다. 오가면서 신사와 절은 몇몇 군데 방문했지만 십자가가 서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은 없었다. 아무튼 조만간 한번 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인근에 있는 쓰시마 제일의 명산 중에 하나인 '시라타케(白嶽)'로 이동했다. 길을 가다 보니 어린이날인 5월 5일이 가까워서 그런지 마을 입구에 남자아이의 성장과 출세를 상징하는 잉어 모양의 헝겊을 장대에 매달아 밖에 걸어두는 '고이노보리(鯉のぼり)'가 보인다.

일본 쓰시마 고이노보리 ⓒ 김수종


일본에서는 어린이날이 1년에 두 번 있다. 여자 어린이들의 무병장수와 행복을 빌기 위해 해마다 3월 3일에 치르는 일본의 전통축제인 '히나마쓰리(雛祭り)'가 여자 어린이날이라면, 5월 5일은 남자 어린이날이라고 보면 된다.

고이노보리는 8세기 나라시대부터 행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창포나 쑥을 처마에 매달아 두거나, 벼슬아치들의 관에 창포를 장식하는 등 액막이 행사로 치러졌다. 이후 여러 시간이 흐르면서 남자 아이들을 위한 날로 굳어져 에도시대 중기부터 전국적인 행사로 발전했다.

예전 중국에서는 잉어(鯉,고이)가 황하를 거슬러 올라 상류의 등용문에 오르기만 하면, 용이 된다고 믿었다. 일본에서는 남자아이가 용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집 밖에 잉어 모양의 깃발을 달았다. 집안에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라는 뜻으로 사무라이 인형을 장식한다.

일본 쓰시마 고이노보리 ⓒ 김수종


지역에 따라 사무라이 인형을 장식하는 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갑옷과 투구 장식을 하기도 하고, 대나무 잎이나 떡갈나무 잎으로 싼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잉어인형이나 장식의 수는 보통 식구 수와 비례한다.

가정별 행사 외에 지자체 단위로 수백 또는 수천 개의 잉어모형을 공중에 매달아 대대적인 행사를 하기도 한다. 가정 내 행사 비용은 조부모가 손자를 위해 부담하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 하니마쓰리에 쓰는 인형은 통상 외조부모가 외손녀에게 선물한다. 

아무튼 대형의 고이노보리는 마을과 집 마당에도 간간히 보이지만, 마트에서도 어른 손바닥 만 한 작은 것들을 팔고 있다. 집안에 장식용으로 팔리는가 보다. 이런 저런 풍경을 구경하는 사이 차는 시라타케 초입에 닿았다.   

일본 쓰시마 시라타케 앞에서 맑은 하늘을 보다 ⓒ 김수종


산 입구 주차장 바로 앞에 민박집이 보인다. 등산객들을 위한 민박집이다. 이런 곳에 사람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숙소가 귀하고 외진 곳이라 생각보다 방문객이 많은가 보다. 혹시나 우리도 방을 구할 수 있나 해서 안으로 들어가서 주인장에게 물어보았다.

큰 방이 6~7개 정도 되고, "단체로 오는 등산객 30명 정도는 숙박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숙박을 할지도 몰라 우선은 명함을 한 장 받아두고는 "조만간 한번 숙박을 하겠다"고 신고를 해두고 나왔다. 참 하늘이 맑고 좋은 날이다.

일본 쓰시마 시라타케 앞 민박집 ⓒ 김수종


날씨가 좋아 우리 세 사람은 등산화도 신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산길을 올랐다. 물론 30분 정도만 올라가서 느낌만 보기 위해서였다. 생각보다 하산하는 한국인 등산객들이 많다. 5~10명 정도 팀을 이루어 이곳을 트레킹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일본 쓰시마 시라타케의 작은 폭포 ⓒ 김수종


계곡 입구에 작은 폭포가 있다. 쓰시마에서 보기 힘든 폭포를 구경한다. 더 올라가니 다양한 안내판도 보인다. 산에 살고 있는 동식물에 대한 자료판도 있다. 여름에 계곡 트레킹과 함께 시라타케 등반을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드는 산이다. 해발 519m 정도니까 마음먹고 3~4시간 정도면 등반이 가능할 것 같다. 다음 달에는 무조건 도전이다.  
 

일본 쓰시마 역시 삼나무가 좋은 시라타케 ⓒ 김수종


자! 이제 쓰시마 북섬으로 이동하자. 숙소가 있는 사스나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이곳은 벌써 완연한 봄이라 논에는 모를 심은 곳도 보인다. 모를 심기 위해 준비하는 농부의 멋진 모습도 보인다. 농기구도 우리의 것과 너무 비슷하다. 저 멀리 소 3가족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풍경도 보인다. 우사 밖에서 유유자적하는 소가 있다니 놀랍기도 하다. 

일본 쓰시마 논에서 일하는 모습이 우리와 비슷하다 ⓒ 김수종


북으로 올라가는 길 북섬 초입에 있는 사카(佐賀)의 마트로 갔다. 저녁에 먹을 몇 가지 반찬과 요리거리는 물론 도시락과 술과 안주까지 샀다.

일본 쓰시마 모를 심은 논 옆에서 유유자적하고 있는 소 3마리 ⓒ 김수종


나는 도시락에 문어와 횟감을 샀고, 고 선배는 튀김을, 경희 선생은 라면과 과자를 조금 샀다. 천천히 마트에서 나와 사스나를 지나 렌터카를 빌려준 김삼관 사장의 사무실이 있는 가와치(河內)로 갔다. 차가 아무래도 조금 낡은 것이라 다른 차로 바꾸어 줄 것을 요청했더니 순순히 아주 새 차를 내 주셨다. 

그리고는 근처에 "임진왜란 때 조성된 귀, 코 무덤이 있다면서요?"라고 물었더니, 바로 "차에 타라"고 말한다. 멀리 가는가 했더니 사스나 방향으로 100m 정도 가서는 '돈짱(どんちゃん)'이라고 하는 식육점 앞에 차를 세웠다.

일본 쓰시마 조선인 코, 귀 무덤 ⓒ 김수종


안쪽으로 10m를 걸어가, 돌무덤 앞에서 서더니 "여기가 바로 귀, 코 무덤이다"라고 했다. "현재 쓰시마에는 여기와 사카(佐賀)의 엔쓰시(円通寺) 인근에 하나 더 남아 있다"고 했다.

일본 쓰시마 코, 귀 무덤을 알려 준 재일동포 3세 김삼관 사장 ⓒ 김수종


"지난 2015년에 한국의 학계와 언론에 발표가 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라고 했다. 고 선배와 나, 경희 선생은 잠시 인사를 드리고는 기도를 했다. 일단 이곳을 알게 되었으니, 내일이라도 다시 와서 잠시 '추모 행사라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돌아서 나왔다.

정말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팠다. 아무런 표지석도 안내판도 없는 곳에 조선인 귀, 코 무덤이 있다니, 425년 전 임진왜란의 기억과 슬픔이 다시 한 번 가슴 속을 사무치게 하는 현장이다.   

# 쓰시마 #일본 #귀 무덤 #코 무덤 #시라타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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