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아바타냐?'고 물은 안철수에게서 닉슨의 실패를 보다

안 후보 측, 사기꾼이 아니라고 강변한 닉슨의 패착 잊었나?

등록 2017.04.23 23:22수정 2017.04.23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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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1차 TV토론 참석한 안철수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대선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내가 MB 아바타입니까?"

23일 밤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던진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참으로 뜬금없다. 안 후보의 질문은 두 가지 점에서 부적절했다고 본다. 먼저 주제와 맞지 않았다. 진행자는 검찰, 국회, 청와대 등 권력기관 개혁이 토론 주제로 제시했다. 그리고 안 후보에게 첫 발언권을 줬다. 그런데 안 후보는 사뭇 토론 주제와 무관한 질문을 문 후보에게 던진 것이다.

안 후보가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 같은 질문을 던졌는지 모르겠다. 화면상으로 볼 때 안 후보의 표정은 꽤 진지했다. 사실 '안철수 뒤에 MB 있다'는 근거를 알 수 없는 음모론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상에서 자주 눈에 띄었다. 안 후보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엔 없다. 적어도 전반적인 인상은 안 후보 측이 이 같은 음모론의 진원지로 문 후보 캠프를 지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안 후보 측 입장과 별개로 국회, 검찰, 청와대 등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은 국민적 관심사였다. 지난겨울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든 시민들은 단순히 박근혜 전 대통령 한 사람의 퇴진만 외치지 않았다. 국민들은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채 권력을 사유화한 청와대, 그리고 정권 입맛에 맞게 사건을 주무르는 검찰 등 국민을 무시하는 권력기관의 행태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이어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외쳤다.

더구나 이번 대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치러지는 선거다. 따라서 후보자 개인의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입장은 참으로 중요한 화두였다. 그런 소중한 시간을 안 후보는 '내가 MB 아바타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며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며 제 무덤 판 닉슨


안 후보의 질문이 부적절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자기 스스로를 'MB 아바타'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안 후보는 리처드 닉슨이 저질렀던 패착을 범했다. 잘 알다시피 닉슨 전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불거지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임했다. 닉슨은 하야 직전 여론으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았다. 이때 그는 TV 연설을 통해 자신을 이렇게 변호했다.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닉슨의 이 말은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나 다름없었다. TV로 연설을 본 이들은 닉슨 하면 얼른 사기꾼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자신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닉슨의 사례에 대해 "상대편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려면 상대편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프레임의 기본원칙을 가르쳐 준다"고 지적했다. 즉, 닉슨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코끼리'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의 인지 습성을 간과했다는 말이다.

안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안 후보는 방송 3사가 동시 중계하는 TV토론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대선 후보를 향해 '내가 MB 아바타냐?'고 물었다. 이를 본 시청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사기꾼이 아니다'고 강변한 닉슨에게서 사기꾼의 이미지를 떠올렸듯, 'MB 아바타냐?'고 물은 안 후보에게서 'MB아바타'를 떠올리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미주 한인매체 <뉴스M>에 동시 송고했습니다.
#안철수 #MB아바타 #조지 레이코프 #닉슨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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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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