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버티란 말, 더 실적 내란 말 이젠 잊으시길

[현장실습생 故 홍○○ 님을 추모하며] 청소년유니온 백종현님의 편지글

등록 2017.04.27 13:58수정 2017.04.2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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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마이스터고 현장실습생들의 반복되는 죽음과 사고를 막고자 올해 3월 LG유플러스고객센터(LB휴넷) 특성화고현장실습생대책회의를 전국의 시민사회운동단체, 노동조합 등이 함께 꾸렸습니다. 7대선언운동과 3대요구 카드뉴스를 시작으로 3월31일에 진행된 故 홍○○ 님 추모문화제 낭독한 편지글 등을 연재합니다.

첫번째 편지글은 청소년유니온에서 활동하는 백종현 님의 글로 시작합니다. 본인 역시 특성화고 졸업생으로서 겪었던 어려움과 문제, 고민들을 담은 편지입니다. - 기자 말

▲ 청소년유니온 2016년 송년회 모습 ⓒ 청소년유니온


청소년의 노동조합 '청소년유니온'의 대표로 활동 중인 백종현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홍○○ 님. 저는 한 특성화고의 졸업생으로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비록 같은 학교까지는 아니었지만, 홍○○ 님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누군가가 홍○○ 님의 괴로움을 공감하고 이야기 들어주었더라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거 같다는 생각에 너무 죄송했습니다. 현장실습 제도가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저항하지 않고 함께 싸우지 못했습니다. 특성화고 졸업생의 한 명으로서 사과드립니다.

많이 힘드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콜센터의 일, 그 중에서도 가장 험한 말을 많이 들어야 하는 해지방어팀의 일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짜증내는 고객들, 실적을 재촉하는 상사들...저였다면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게 무서웠을 거 같습니다. 매일 새벽에 가까운 시간에 집에 갈 때마다 매번 일을 그만두고 싶으셨을 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일을 그만두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홍○○ 님과 같은 학교를 다닌 게 아니어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특성화고에서는 실습을 그만두도록 하지 않으니까요. 학교의 입장에서 현장실습은 사실상 취업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실습을 그만두는 걸 그대로 보고만 있진 않았을 겁니다. 당장 저희 학교만 해도, 업체에서 불합리한 일을 겪은 학생들을 보호해주기는커녕, 반성문을 쓰게 하고 징계를 주었습니다. 심지어 그 학생의 실습기회는 가장 마지막에 주어졌습니다.

홍○○ 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실습생들께서 그만두지 못하고 버티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학교에서 단 한 명이라도 괴로움에 공감해주고 같이 문제를 해결해주려 했다면 이렇게까지는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았으리란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기사를 통해 보았을 때, 홍○○ 님은 굉장히 열심히 일을 하셨던 거 같습니다. 고졸취업자로써 대기업에 입사해서 좋아하셨단 얘기를 들었고, 거기서도 굉장히 일을 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홍○○ 님에게 그리고 지금 일을 하고 계실 많은 실습생 분들에게 현장실습 업체는 단순히 생계유지 수단이 아니라 지금의 자부심이고 미래의 꿈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괴로우셨을 겁니다.

삶을 걸고 있는 일자리에서 고통받고 억압받는 상황을 견디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이 일터가 자신의 자부심이기에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하지?"란 두려움도 있었을 겁니다. 다른 곳에서도 사정은 나아지리라 볼 수 없었을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고졸취업자가 겪는 현실은 차별과 무시로 가득 차있기 때문입니다.

홍○○ 님께서는 어떤 일도 잘못하지 않으셨습니다. 홍○○ 님이 회사에서 겪은 문제는 결코 홍○○님이 능력이 없거나 태도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홍○○ 님뿐만 아니라 모든 현장실습생들에겐 잘못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불행한 일을 겪은 건 현장실습과 고졸취업에 대해 어떤 대책도 만들지 않은 이 사회의 잘못입니다.

▲ 4월22일 대학로에서 열린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노조할 권리 쟁취! 우리일터 새로고침 4.22 대행진'에서 lg유플러스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망 해결촉구 선전전을 하고 있는 백종현 활동가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현장실습 문제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불평등한 우리 사회가 무참히 저지른 살인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제 주변 친구 어쩌면 저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입니다. 임시방편의 개선이 아니라, 직장에서의 학력차별 문제, 고졸취업자의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홍○○ 님, 더 버터야 했다는 말, 실적을 더 내라는 말은 다 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도 더 이상 듣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홍○○ 님, 그리고 많은 현장실습생이 겪은 비극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죽음의 행렬을 멈추어야만 합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우리사회가 줄 수 있는게 더 이상 괴로움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실습생의 문제를 실습생의 손으로 직접 해결해야 할 때입니다. 청소년노동당사자단체로서 청소년유니온은 그 길에 적극 동참하고 앞장서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많은 분들이 목소리를 모아주셨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LG유플러스고객센터특성화고현장실습생대책회의입니다. 올해 초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업무를 하는 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현장실습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시민사회단체, 노조 등이 모여 꾸려진 대책회의입니다. 현재 LG유플러스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등을 촉구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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