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증세 논의... 또 담뱃값만 올리나

문재인·안철수 후보, '증세' 대신 '재정개혁'... "장기적으로 효과 보기 어려워"

등록 2017.04.26 14:27수정 2017.04.2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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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안철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대선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 후보는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 단계적인 접근 방침을 세웠다. ⓒ 국회사진취재단


참여정부는 몇 년간의 논의를 거쳐, 지난 2006년 비전2030이라는 국가복지정책을 발표했다. 2030년을 바라보고, 전 국민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는 복지국가의 기틀을 수립한 참여정부의 '역작'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름' 없는 '차'였다.

사실상 재원 확보 방안이 없었다. 당시 참여정부는 비전2030을 발표하면서, 재원 확보 방안은 '국민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식으로 뭉뚱그렸다. 기름 없는 차가 폐기장에 들어가는 것처럼 '비전2030'은 그렇게 잊혔다.

공약 실현 위한 돈, 문·안은 재정개혁 이후 '단계적 접근' 강조

복지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훌륭한 복지 정책도 돈 없으면 '휴지 조각'이다. 증세는 여러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주요 해법이다. 그런데 지지율 1,2위를 달리는 문재인과 안철수 두 후보는 복지를 말하면서 '증세'보다는 '재정개혁'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증세 없는 복지'를 외쳤던 모습이 겹쳐진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제출한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마련 답변서를 보면, 두 후보 모두 증세보다 지출 절감 등 재정 개혁에 비중을 두고 있다. 오히려 보수 성향인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5년간 362조 원 증세를 말하고 있다. 

문 후보 쪽은 재정지출 절감(18조4000억)과 기금여유재원활용(3조), 융자사업 이차보전 전환(1조) 등 재정 개혁을 통해 22조4000억 원을 확보하겠다고 답했다. 공약 시행을 위한 예상 재원(35조6000억 원)의 62.92%에 달한다. 세법개정을 통한 재원확보는 6조3000억 원,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다.


안 후보도 매년 세수초과징수분(7조3000억)과 국세비과세 감면 정비(11조1000억), 세출구조조정(9조9000억 원) 등 기존 재정체계를 활용해 28조3000억 원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공약 이행을 위한 예상 재원(40조9000억)의 69.2% 수준이다. 신규재정조달(공평과세) 비율은 30.8%(12조6000억)였다.

두 후보는 모두 세출 구조조정을 우선 검토하고 이후 증세를 검토한다는 단계적 접근 방안을 강조한다.

홍종학 문재인캠프 정책본부장은 "재정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각 분야별로 예산을 제대로 쓰는지 따져 보겠다는 것"이라면서, "전체적으로 망가진 시스템(지출구조 등)을 바꾸고, 시스템을 잘 갖춰 새로운 방식의 세정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이배 안철수캠프 정책실장은 "세금에 대한 입장은 단계적으로 접근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면서 "세출구조조정을 통해 예산낭비를 막고, 실효세율을 올리고, 그럼에도 부족하면 명목세율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출 구조조정 박근혜 실패, "장기 효과 보기도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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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은 증세없는 복지를 주장했지만, 지난 2015년 담배 가격을 인상했다. ⓒ jTBC


두 후보가 강조하는 세출 구조조정의 경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생긴다. 세출구조조정 등 재정개혁은 박근혜 정부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5년 949개의 유사 중복 재정사업을 394개로 통폐합했다. 하지만 세수 확보 효과는 미미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5년 10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재정사업 통폐합 이전 예산은 21조1664억 원이 투입됐고, 통폐합 이후에도 21조897억 원이 나갔다. 통폐합에 따른 세수 절감은 766억 원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사업 종료에 따른 자연 감소분이 대부분이었다는 게 안 의원의 주장이었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세출을 줄이는 것은 집권 1~2년차에서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면 효과가 당장 나타날 수는 있다"면서도 "그 이후에도 세출을 줄인다면 사회간접자본(SOC)등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한 지출도 줄어드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지속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세출 구조조정이 진정한 효과를 거두려면 결국 고정적인 지출 예산을 줄여야 한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교육 예산의 절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저출산에 따라 학생 수는 줄고 있는데, 학교 예산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형곤 21미래교육연합 대표는 지난 2015년 열린 국가예산세출조정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초등학생 수가 지난 2005년 402만에서 10년만에 129만명 줄어든 273만명이 됐지만,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2000년 22조에서 2015년 39조5000억으로 늘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고치지 않아 세금을 낭비한 사례로 볼 수 있고, 세출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려면 교부금법을 바꿔 수요가 있는 만큼 교육 재정을 써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교육 예산을 줄이는 일은 쉽지 않다. 교육세를 줄일 경우, 당장 지방 교육청이 반발하고, 교육에 민감한 국내 환경상 강력한 반대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 교육 예산을 줄이려면 법을 고쳐야 하는데, 국회 논의에서 여론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담뱃세 등 조세 저항 적은 간접세 인상에 눈 돌릴 수도

역대 정부의 차선책은 간접세 인상이었다. 부가가치세와 개별소비세 등 간접세는 직접세에 비해 조세 저항이 상대적으로 적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5년 담뱃세를 대폭 인상해 세수 증가 효과를 톡톡히 봤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담배 가격이 오른 2015년 담배 판매로 걷은 세금은 10조5340억원이었다. 담배 가격이 오르기 전인 2014년(6조9372억원)에 비해 51.3% 급증했다. 2016년에도 모두 12조4000억 원의 담뱃세가 걷혔다. 담뱃세 인상으로 매년 4조~5조 원가량의 추가 재원이 생긴 것이다. 

차기 정부에서도 세수 확보가 여의치 않으면, 담뱃세 인상 카드를 또다시 꺼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담배 가격 인상으로 금연을 유도해 국민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공익적 목표를 내걸고 말이다.

박 교수는 "초기에는 세출 조정을 통해 어느 정도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부터는 세입 부분을 손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이 경우 차기 정부는 담뱃세 등 소비세를 손 댈 거냐, 소득세나 재산세를 손 댈 거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후보가 '증세 문제'에 대해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혁승 경실련 유권자본부장은 "개혁을 하겠다고 하면 개혁 방향에 맞게 세금을 거둬야 한다"면서 "선거 전략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안 하는 것 같은데, 공평 증세를 통한 재원 확보는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야기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공약 #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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