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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틀리프 귀화, 생각해볼 문제들

[프로농구] 귀화의 진정성과 국가대표 가치 문제... 김한별 사례도

17.04.26 15:05최종업데이트17.04.2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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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서울 삼성의 외국인 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의 한국 귀화 추진 여부가 최근 농구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라틀리프는 올해 1월 프로농구 정규시즌 기자회견 도중 한국 국적을 얻고 싶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라틀리프가 한국 국적을 얻게 될 경우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팀 출전도 가능하다. 최근 대표팀 전력 강화를 노리는 대한민국농구협회와 KBL이 라틀리프와 귀화를 정식으로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3차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경기. 2쿼터 전자랜드 켈리가 삼성 라틀리프의 수비에 맞서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라틀리프는 2012-2013시즌 울산 모비스 소속으로 한국 무대를 처음 밟았고 올해까지 5년째 국내에서 활약하고 있는 장수 외국인 선수다. 실력도 탁월해 모비스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삼성으로 옮긴 이후에도 올시즌 소속팀을 다시 한번 챔피언 결정전으로 이끌며 우승 청부사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농구팬들은 대체로 라틀리프의 귀화를 반기고 있다. 199cm, 110kg의 라틀리프는 빅맨으로서 큰 키는 아니지만 단단한 체구와 파워를 바탕으로 골밑 장악력이 뛰어난 정통 센터다. 속공에 가담할 정도로 민첩한 스피드와 웬만해서는 지치지 않는 강철 체력도 강점이다. 항상 높이의 열세로 고민해왔던 한국농구로서는 라틀리프의 가세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1989년생인 라틀리프는 시기적으로도 기량이 현재 최전성기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정규시즌 KBL 최다인 35경기 연속 더블더블(득점, 리바운드등 두 개 부문에서 두자릿수 기록)을 달성하는 등 평균 23.6점, 13.2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외국인선수상까지 수상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오히려 정규시즌을 뛰어넘는 괴물 같은 활약을 선보이며 팀을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려놨다. 농구팬들은 태극마크를 단 라틀리프가 국제무대에서도 이런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다.

라틀리프의 귀화 의지가 진지하다는 전제하에, 정식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면 귀화시험을 치르거나 아니면 특별귀화 절차를 밟아야 한다. 단기간에 귀화 절차를 마무리하려면 특별귀화가 유력하다.

협회가 대한체육회에 라틀리프를 특별귀화 대상자로 추천하면 체육회에서 이를 심의하고 다시 법무부에 추천하여 최종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동안 농구 선수 중에서 체육 우수 인재 특별귀화 절차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례는 문태종(오리온), 문태영(삼성), 김한별(삼성생명) 등이 있다.

남자농구대표팀은 6월 일본 나가노에서 열리는 동아시아대회에서 6개국 중 4위 안에 들 경우 8월 레바논에서 열리는 FIBA 아시아컵 본선 출전권을 획득한다. 농구계는 라틀리프가 특별귀화 절차를 통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할 경우 빠르면 8월 아시아컵부터는 대표팀에 합류하는 게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라틀리프의 귀화는 한국농구로서는 긍정적인 면이 많지만 한편으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도 있다. 먼저 귀화의 진정성과 국가대표의 가치 문제다. 국가대표 발탁을 전제로 한 특별귀화 추진은 국내 스포츠에서 유독 농구만 빈번하게 논의되는 사안이다. 이는 분명히 '특혜'의 소지가 다분할 뿐더러 국적과 태극마크를 일종의 '흥정'의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귀화제도의 취지를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 있는 부분이다.

설사 십분양보해서 최근 아시아농구계의 흐름상 귀화선수 영입이 대세라는 주장을 수용한다고 할지라도 그동안 결코 적지 않았던 특별 귀화를 통하여 한국농구 경쟁력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의문이다. 역대 태극마크를 달았던 귀화선수 중 이승준-이동준-전태풍 등은 모두 귀화시험 등 정식절차를 통하여 한국국적을 취득한 케이스였다. 특별귀화를 통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한 선수 중 대표팀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경우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우승에 기여한 문태종 한 명 정도다.

오히려 김한별같이 국적만 취득하고 아예 대표팀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국적 위조라는 희대의 사기극을 일으킨 첼시 리같은 흑역사도 존재한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여 원칙이나 절차를 무시했던 무분별하고 즉흥적인 귀화 정책의 부작용을 보여준 사례다.

라틀리프가 한국 국적을 취득할 경우 국내 농구에서 그의 신분을 어떻게 인정할지도 명확하게 해둬야 할 부분이다. 라틀리프가 한국 국적을 얻게 된다면 KBL에서도 당연히 국내 선수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그의 소속팀이 외국인 선수를 한 명 더 보유하는 효과를 얻게 되어 전력불균형이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라틀리프가 귀화하더라도 KBL에서는 일정 기간 동안은 외국인선수로 분류하거나 쿼터 출전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차별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국적을 얻고 태극마크까지 달게 하려는 선수에게 정작 국내 리그에서는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은 철저하게 집단 이기주의적인 발상이다. KBL은 과거 혼혈 출신 귀화선수들에게도 전력 평준화를 핑계로 '3년마다 소속팀 강제이적'같이 기존 국내 선수들과 차별을 두는 악법을 단행하여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처럼 라틀리프의 귀화는 단순한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 농구계가 이번에도 국제경쟁력이라는 핑계를 내세워 단지 손쉽게 '대표팀에 용병 한 명을 공짜로 써먹겠다'는 안이한 발상만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려 든다면 적지 않은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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